“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글 자판을 통해 친 단어가 컴퓨터 화면에 즉시 뜨기 때문에 시각적 교육 효과가 뛰어납니다”
경기도 안양시 전·진·상복지관(http://www.kafi.or.kr)에서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수강생을 대상으로 정보화 교육을 담당하는 이복실 씨는 한글 교육과 컴퓨터 활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며 한글의 우수성을 예찬한다.
수업에 참여하는 주부들이 단순히 구경거리였던 PC를 통해 직접 손가락으로 ‘가,나,다’를 쳐 보면서 흡족해하는 모습에 남다른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
이 복지관에는 월 수 금 매주 3일씩 지긋한 나이의 노인부터 전업 주부까지 십 여명의 비문해자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한글을 배우며 나날이 향상되는 실력에 흡족해 하는 훈훈한 모습이 연출된다.
이처럼 글을 모르는 비문해자들에게 한글은 단순히 한글 그 자체뿐 아니라 인터넷과 컴퓨터를 활용할 줄 아는 정보화 세상으로 이들을 안내해주는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비문해자는 과거 사용돼온 ‘문맹자’라는 단어가 당사자를 비하하는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최근에 등장한 용어이다. 지난 2002년 한국교육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성인 인구의 25.2%가 생활하면서 읽기, 쓰기, 셈하기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격차해소전담기관인 한국정보문화진흥원(원장 손연기 http://www.kado.or.kr)이 올해 PC와 기자재 등을 지원하는 문해 교육장은 전국적으로 92개에 달한다. 특히 진흥원의 문해 정보화 교육 지원 내용 중 눈에 띄는 것이 지난 5월 문해 정보화 교육 교재인 ‘컴사랑 글사랑’을 제작, 보급한 것이다.
‘컴퓨터도 배우면서 한글을 익힐 수 있는 문해교육 컴퓨터 도서’를 표방하는 이 책은 컴퓨터 용어를 감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용어로 바꿔 수록했다. ‘마우스’를 ‘다람쥐’로, ‘커서’를 ‘깜빡이’로, ‘클릭하다’를 ‘딸깍하다’로, ‘스페이스 바’를 ‘사이띄우개 글쇠’ 등으로 표현함으로써 친근감을 더했다.
이 책을 활용해 약 3개월의 교육 기간 동안 △ 컴퓨터는 무엇일까요 △ 컴퓨터로 한글 배우기 △ 인터넷과 동무하기 등 3단계 교육 과정을 거치면 간단한 문서 편집은 물론 인터넷에 접속해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등의 일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홈페이지를 찾는 방법 중에 한글 인터넷 주소를 이용하는 방법이 이들 비문해자들에게도 매우 편리한 수단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특정 홈페이지에 접속하기 위해 우선 한글을 배우고 거기다 영어까지 배워야만 하는 비문해자들로서는 간단한 한글 입력만으로 원하는 사이트를 찾아갈 수 있는 한글 인터넷이 큰 힘이 된다.
안양사회교육센터시민대학(http://www.siminschool.or.kr)에서 비문해자 대상 정보화 교육을 하고 있는 류병호 부장도 “아직 교재 보급 초기 단계여서 수강생들이 한글 인터넷 교육을 받을 단계는 아니지만 앞으로 3단계에 걸쳐 인터넷 활용법을 배우게 되면 한글 인터넷 주소를 적극 권장하겠다”며 “아무래도 수강생들도 복잡한 영어 주소보다 우리말 주소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민대학에서 한글과 함께 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변절자(64) 씨는 “우연히 문해 교육과 인연을 맺게 된 후 월 수 금 주 3회 동안 이 곳에 나와 수업을 듣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며“이 재미있는 걸 왜 진작 배우지 못했을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6·25 때 부상을 당해 오른손이 불편한 변 씨는 특히 “손으로 직접 쓰는 것보다 자판을 통해 한글을 배우는 것이 쉽고 재밌다”며 “수업 시간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IT교육과 한글이 ‘찰떡 궁합’ 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한글의 과학성과 정보화 교육의 뗄 래야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이다.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성된 한글의 원리를 적용해 만든 키보드를 이용해 한글을 가르치면 학습 능력이 향상된다. 글을 모르는 비문해자들이 한 자 한 자 한글을 머리로 익히는 동시에 직접 자판에 두드려보고 화면에 표시되는 글자를 보는 절차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학습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다.
이밖에 한국정보문화진흥원과 정통부는 전국 문해교육기관을 지원하기 위한 ‘컴사랑글사랑(http://ganada.or.kr)’ 사이트를 운영함으로써 우리말과 정보화 교육에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가장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한글과 컴퓨터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해법을 알려주고 있다.
[인터뷰]안양사회교육센터시민대학 김순임씨
“영어를 몰라도 한글로 컴퓨터 관련 단어를 바꿔서 설명해주니까 정말 쉬워요. 더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딸이랑 직접 하기 힘든 이야기도 컴퓨터로 주고 받을 생각입니다”
지난 3월부터 안양사회교육센터시민대학에서 한글과 컴퓨터를 배우면서 나날이 늘어가는 실력에 더위도 잊은 김순임(64) 씨는 이제 한글은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읽고 쓸 줄 안다. 짧은 기간이지만 컴퓨터 자판을 통해 한글을 익히는 것이 효율적이고 무엇보다 재미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 씨와 마찬가지로 이 곳을 찾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비록 나이는 많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정 하나로 뒤늦게 정보화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곧 수업 재미에 푹 빠지게 됐다.
김 씨는 “처음에 한글을 모르고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다는 것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자판을 통해 글을 치면서 진도를 따라가다보니 잘 되더라”며 “이제는 한글로 내가 생각하는 내용을 컴퓨터 화면에 칠 줄 알게 됐다”며 뿌듯해 했다.
그는 또 “컴퓨터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일일이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강사들이 칠판에 자상하게 한글로 풀이된 말을 적어줘 이해가 빠르다”며 “5월부터 접하게 된 교재도 기존 교재에 비해 글자 크기가 크고 알기 쉽게 제작돼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안양사회교육센터시민대학에서는 지난해까지 학기 중 한시적으로 운영돼온 한글 비문해자 대상 정보화 교육을 올해 말까지 상시 프로그램으로 운영, 김 씨처럼 정보화 및 한글 교육을 받고 싶어도 쉽게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정보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김유경기자@전자신문, yukyung@
[미니캠페인]조이스틱(joystick) → 놀이 손
컴퓨터에 각도정보를 입력하는 장치. 360° 회전하는 막대에 의해 주어진 각도 정보를 A―D변환기를 통해 입력한다. 일반적으로 컴퓨터게임에 주로 사용하는 외장형 장치로 글쇠판(키보드)의 역할을 대신한다. 적응속도가 빠르고 실감 있는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기구이다. 조이스틱을 우리말로 바꾸면 ‘놀이 손’이 된다. 그러나 ‘놀이 손’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조이스틱이 일반명사화 됐다. 놀이 손이라는 말 역시 어색하지 않은 우리말로 조이스틱보다는 더 정겹게 들릴 수 있고 게임의 부정직 인식을 해소하는데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