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유전자 시대의 적들

◇유전자 시대의 적들/존 설스턴·조지나 페리 지음/유은실 옮김/사이언스북스 펴냄

“인간의 유전체 지도는 온 인류의 것이다. 그 누구도 독점하거나 악용해서는 안 된다”

21세기 생명공학(BT) 시대의 핵심 기반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도전 중 하나로 수년 간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인간 유전체 계획(HGP:Human Genome Project)’을 둘러싸고 벌어진 과학자·정치가·기업가들의 경쟁과 암투를 그린 ‘유전자 시대의 적들’을 집필한 존 설스턴이 인류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미국·영국·프랑스·일본·중국을 비롯한 18개국 연구진과 민간 기업들이 다국적 컨소시엄을 구성해 추진해온 이 프로젝트는 지난 2000년 6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영국의 토니 불레어 수상이 인간 유전체 지도 초안의 완성을 발표하면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지난해 4월 국제 인간 유전체 염기 분석 컨소시엄이 인간 유전체 지도의 완성(99.9%의 정확도)을 발표, 우리 인류는 본격적인 유전자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언론에 보도된 외적 화려함과 달리 이면의 진행 과정에서는 많은 과학적·정치적·윤리적 시행착오를 거듭해왔다. 미완성 상태의 유전체 지도 초안이 2000년에 발표된 것이나 유전자의 특허권과 유전 정보 공개를 둘러싼 논쟁들은 이런 경쟁과 암투의 산물이였다. 특히 미국을 위시한 몇몇 국가들과 셀레라 지노믹스 같은 기업들의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논리에 휘둘려 인류 공통의 유산이 되어야할 인간 유전체 지도와 유전정보가 자칫 일부 집단에 의해 독점되는 수렁에 빠질 뻔했다.

200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인 존 설스턴은 과학 전문 저술가인 조지나 페리와 함께 쓴 이 책에서 인간 유전체 계획을 둘러싼 각 이해집단 간의 경쟁과 암투를 솔직하게 풀어놓으면서 앞으로 인류가 생명공학을 어떠한 방향으로 올바르게 이끌어 나가야 할 지에 대한 깊은 통찰과 교훈을 보여준다.

인간 유전체 계획에 직접 참여했던 존 설스턴은 특히 유전 암호에 대한 기업의 지배가 모순일 뿐 아니라 과학과 인류의 발전에 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는 이러한 논의를 세계화와 독점적 이윤 추구 같은 폭넓은 주제로 확장하면서 첨단 유전자 시대의 영악한 적들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이른바 ‘인간 설계도’로 불리는 인간 유전체 지도와 유전 정보의 모든 내용을 인터넷에 공개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온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린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말하려는 핵심은 “인간 유전체의 염기 서열은 모든 이의 것이므로 누구든지 그것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가 인간 유전체 계획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인간 유전체의 염기 서열을 분석한다는 아이디어가 형성된 과정, 인간 유전체 계획이 18개국이 참여하는 국제적 재정 지원 계획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을 상세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다. 이어 현대 과학에서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과학자의 위상과 과학자와 정치·윤리의 관계, 국제 연대와 협력 체계의 미래, 지식·정보의 사유화가 가진 모순과 문제점 등을 입체적으로 고찰한다.

김종윤기자@전자신문, jy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