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의 책]미쳐야 미친다

정상우 YES24 대표/ ◇미쳐야 미친다/ 정민 지음, 푸른역사

마니아가 뜨는 세상이다. 어딘가에 미친 듯이 몰두해서 자기 만의 독특한 경험과 세계를 갖고 있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까지 하다. 지금이야 이런 광기(狂氣)가 개성으로 받아들여지고 각광을 받기까지 하지만, 18세기 조선시대에 그들은 이해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림에 미치고, 시에 미치고, 매화에 미치고, 벼루에 미치고 심지어 담배에 미쳤던 그들의 이야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미쳐야 미친다’ 속에는 제목이 주는 강렬한 느낌 외에도 뭔가가 있다.

저자는 미친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맛난 만남’ 그리고 ‘일상 속의 깨달음’이라는 또 다른 주제를 통해 아직은 소수자, 경계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었던 당대 지식인들의 내면 세계를 담아냈다.

인생을 단번에 변화시키는 ‘멋진 만남’의 이야기 속엔 우리에게 익숙한 다산 정약용이 있다. 다산은 강진 유배 시절 만난 한 제자의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더벅머리에 둔하고 의기소침했던 소년 황상에게 정약용은 부지런하기만 된다는 따뜻한 가르침을 했고, 그 만남을 통해 황상은 멋진 문장을 남기며 평생 스승을 가슴에 모시게 된다.

등잔불로 국화 그림자를 연출하며 함께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경험한 정약용의 그림자 놀이와, 비너스 상 둘레로 램프를 돌리면서 평상시 볼 수 없었던 조각상 구석구석의 요철의 섬세함을 음미했던 로댕의 그림자 놀이는 ‘일상 속의 깨달음’을 이야기한다. 그림자놀이와 연기놀이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 이야기지만 일상을 보다 관심 갖고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처럼 저자는 먼지 쌓인 과거에서 오늘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던 당대 지식인들의 눈에 띄었던 업적만이 아니라 숨겨진 지혜와 깨달음을 글과 행적을 통해 잘 녹여냈다. 기획성 있게 만들어진 책이 아니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마다 적어 놓은 글을 묶어낸 것이라 내용이 일목요연하지는 않다. 하지만, 한문번역과 생생한 장면 재현이 책 읽는 맛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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