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장을 시작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 SK텔레콤 사장과 부회장, 과학기술부 장관 등 30여년간 연구개발 외길인생을 걸어오면서 나는 수많은 결단의 순간을 경험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적어보면 1970년 국방과학연구소 창설에 참여해 군 통신장비물자의 연구개발을 맡던 시절이 떠오른다. 진공관 라디오 국산화에다 흑백 TV 면허조립생산을 준비하던 시절이라 고도의 신뢰성이 요구되는 군 통신장비물자의 연구개발은 절망적이었던 시절이다. 기술기반이 없던 나라가 6·25로 초토화되고 계속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통신기술 특히 무선분야는 금기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군 통신장비물자 연구개발에 필요한 인력, 산업 등 가용자원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군의 통신장비는 미군에 의존해왔고, 기술방식이 낡아 미군과 합동작전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내용수명을 넘겨 수리·재생이 힘들어 전쟁이라도 나면 큰일이었다.
통신은 군의 지휘통제에서 중추신경 역할을 한다. 따라서 군 통신장비물자의 연구개발은 국가안보를 위해 시급했다. 야전전화선, 야전전화기, 전지 등을 국산 조달하고 있었으나 품질이 열악하여 군은 애를 먹고 있었다. 그래서 국방과학연구소를 창설은 했는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다.
유비무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연구개발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우선 방위산업에 관심이 있는 젊은 대학원생들을 발굴해 군장비물자의 규격 및 표준, 신뢰성, 가용성, 정비성, 내구성 등에 대한 학습을 시켰다. 특히 미군통신장비를 다루던 아마추어 무선기술사(Ham)들은 시험평가 및 품질보증 기법과 절차를 제정하는 등 군사규격을 국내 최초로 작성한 성과를 올렸다. 마침 과기처의 중소기업 해외연수 계획이 있어 연구소에서는 오규창, 업체에서는 하용진을 미국의 방산업체에 파견시켰다. 한편, 통신 기기 및 부품 업체의 실태를 조사하고 군사 규격 및 표준을 주지시키는 등 방산업체를 지원했다.
1971년. 모 업체가 군에 납품한 차량 무전기와 모 연구소가 정부 출연으로 개발한 휴대 무전기를 평가해달라고 국방부와 과기처에서 각각 의뢰해 왔다. 확인 결과, 박정희 前대통령이 군부대와 과학기술처를 순시하는 중에 무전기 운용시범을 보고, 미심쩍었던지 전문가의 평가를 받으라고 특명을 내린 것이다.
평가해달라는 무전기들을 보니 생산한 업체나 개발한 연구소는 고생한 흔적은 있지만 품격 미달이었다. 심사숙고 끝에 군장비물자 획득에 필수적인 연구개발, 시험평가, 품질보증, 생산조달, 교육훈련, 운용정비, 폐기 등 순기관리(Life-cycle management) 차원에서 평가하며, 군사규격에 따라 시험하기로 결정했다. 그랬더니 업체는 국내 실정을 모르는 처사라 비난하고, 연구소는 무리한 요구라고 항변했다.
운용자(군), 개발자(연구소), 생산자(업체) 간에 합의한 개발 및 생산 규격, 시험 및 평가 등 공인된 기술문서 없이 덤벼든 결과이긴 하지만,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조치였다. 이를테면 섭씨 영하 40도와 영상 70도의 극한 환경에서 동작해야 하고, 진동·요동·침수·모래바람·마모수명 등 가혹한 시험에 견뎌내야 하는 군용 무전기의 시험평가는 가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발도상국의 과학기술자로서 이러한 악역(?)을 고귀한 책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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