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디지털미디어(DM) 총괄인 최지성 사장은 요즘 세계 IT업계의 집중조명 대상이다. 지난달 초 월스트리트저널이 마련한 D콘퍼런스에서 그는 ‘디지털 르네상스’를 주창,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D콘퍼런스에는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스티브잡스 애플컴퓨터 대표, 칼리 피오리나 HP 대표 등 IT업계의 거목들이 함께 참석했다. 최 사장의 위상이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최 사장이 세계적 시선을 끌게 된 것은 삼성전자 DM부문의 성장세가 여느 기업보다 탁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예리한 식견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평이다. 본지는 최근 최지성 사장을 만나 그가 말하는 디지털 르네상스의 의미와 향후 경쟁력 확보 방안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디지털은 신르네상스 창출의 원동력”=“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달라졌고, 심지어 사용자들의 마인드도 변했습니다. 디지털로 인해 사업기회는 날로 확대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 사장은 디지털이 기존 산업의 패러다임을 급속도로 바꾸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산업계는 ‘신르네상스 시대’를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술개발에 따라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인더스트리도 혁신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다.
“과거에도 첨단 기술은 많이 있었지만 가시적인 측면에서는 불분명했습니다. 이제는 전송기술이나 리코딩 기술 등 각종 기술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기술과 연계되는 제품의 로드맵이 보이는 것이죠.”
최 사장은 이같은 경향의 대표적인 제품으로 TV를 들었다. PC기술이 TV에 탑재되는가 하면, TV기술이 PC에 탑재되기도 해 TV하나로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는 T커머스 시대가 가능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최 사장은 이처럼 기술이 ‘Visibility’를 가질 수 있게 된 배경을 ‘키 컴포넌트 기술의 향상’이라고 분석한다. AV기술과 IT기술,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진화가 일어나면서 디지털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춘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사장은 90년대 중반 한국이 CRT TV부문에서 기술과 시장 양쪽 측면에서 모두 성숙돼 있었지만 세계적으로는 후발 주자였기 때문에 컴포넌트의 대외 의존도가 높았고, 이로 인해 부가가치가 낮아 애를 먹었다고 회고했다.
“CRT에서 플랫패널디스플레이(FPD) 시대로 넘어오면서 선·후발이 역전될 수 있는 구도가 됐습니다. 이익은 물론 제품을 차별화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이익률 10% 달성할 것”=최 사장은 이처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사업전략으로 디지털미디어(DM) 부문에서 10%대의 수익률을 올린다는 전략이다.
“마쯔시타가 시장을 개혁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수익률 6%대입니다. 삼성전자는 10%대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향후 5∼10년은 전망이 밝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경제환경을 제외하고 단지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발전을 토대로 예상한 것입니다.”
최 사장이 이처럼 예측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진전될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판단에서다. TV의 무선화나, 광원의 변화, 발열문제의 해결, 에너지절감, 비용절감 등과 관련된 것들이다.
“대형 TV의 경우 발광 효율이 5%도 채 안될 것이고 아직까지 발열 문제가 있으므로 궁극적으로는 레이저 광원으로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미 일본에서는 업계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최 사장은 이같은 기술 흐름에 우리나라도 발빠르게 대처해야 하지만, 한 국가 또는 한 기업이 모든 일을 떠맡는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한 회사가 준비할 것인가, 국가 차원서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아웃소싱으로 해결할 것인가, 또는 얼라이언스(제휴)로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이제는 한 나라가 기술을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삼성전자가 최근 들어 세계적 기업들과의 합종연횡을 잇따라 추진하는 배경이다.
◇“핵심기술과 유통채널 확보로 승부”=최 사장은 결국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좌우하는 요소는 ‘핵심기술’과 ‘채널 장악력’이라고 강조했다.
“핵심기술에 대한 투자는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소프트웨어가 날로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DM 부문의 인력 7000여명 가운데 60%가 소프트웨어 인력인데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차원에서 충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최 사장은 이와 함께 유통 채널에 대한 투자도 적극 늘릴 계획이다.
“유통채널은 단순히 상품을 판매하는 채널이어서는 곤란합니다. 고객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한편, 상품의 수요·판매·예측을 위한 각종 데이터를 수집하는 비지니스 파트너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나온 것이 ‘CPFR(Collaborative Planning, Forecasting and Replenishment)’의 도입이다. 소니나 마쯔시타도 이 전략을 도입중이다. 삼성전자 역시 미국 유통업체인 베스트바이와 이를 추진하고 있다. CPFR은 공급망관리(SCM)의 확장 개념으로, 유통점에서 ‘무엇이’ ‘얼마나 팔리는지’ 여부를 공급업체와 유통점이 공동으로 예측함으로써 적정 재고를 꾀하는 전략이다. 유통점에서 발주를 받은 후 얼마나 신속하게 제품을 납품하는가가 고려한 SCM과는 다른 개념이다.
최 사장은 미국 뿐만 아니라 유럽의 주요 유통업체와도 CPFR의 구축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
◇“브랜드 파워로 세계 신르네상스시대 리드할 것”=삼성전자 DM총괄에서 담당하는 품목들은 이미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 컬러TV·모니터·기록계 등은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흑백 레이저프린터와 캠코더는 각각 2·3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 사장은 이 같은 여세를 몰아 ‘브랜드’ 파워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고, 나아가 신르네상스 시대를 주도한다는 전략이다.
“디지털TV 시장의 경우 델과 게이트웨이·모토로라 등의 IT업체들이 진입을 선언했으며, 중국의 추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기술과 브랜드력을 갖추고 있어 경쟁력이 충분합니다. 특히 고가의 FPD TV시장에서는 브랜드 경쟁력이 우수합니다.”
최 사장은 구조조정을 끝내고 다시 부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일본 업계에 대한 경계도 빼놓지 않았다.
“DSC·DVD·FPD TV가 일본 전자산업 부흥의 신 3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광학·반도체 분야 등 원천기술과 부품산업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됩니다. 일본 제조업의 저력과 회생 전략을 다시 벤치마킹 할 시점입니다.”
삼성전자의 DM총괄은 지난해 15조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 올해에는 18조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주요 경력
△ 출생=강릉(1951년생)
△ 학력=서울고, 서울대 무역학과
△ 경력=77년 삼성물산 입사, 81년 삼성회장 비서실 기획팀, 97년 반도체판매사업부장, 1998년 삼성전자 디스플레이사업부장, 2003년 삼성전자 DM총괄 부사장, 2004년 DM총괄 사장 겸 디자인센터장
△ 성격= 기획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업무 추진 속도가 빠르다
△ 취미= DVD영화감상
△ 좌우명= 디지털 르네상스 시대를 연다
△ 매출 및 영업익(2003년)= 15조9219억원(영업익=5674억원)
박영하기자@전자신문, yhpark@etnews.co.kr
사진=정동수@전자신문, ds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