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연구의 시작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금은 차세대 반도체 연구 분야가 장비와 제조공정, 설계 사업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지만 80년대 초반 구미의 전자기술연구소(ETRI의 전신)시절 이렇다할 기반도 없이 미국의 반도체 회사인 VTI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32K급 메모리부터 시험 생산한 것이 우리 나라 반도체 역사의 기원이다.
당시의 시험생산 설비 구축이 얼마나 어려운 사업이었는지는 구미 전자기술연구소 설립 자체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정부의 예산이 워낙 빈곤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으로부터 3000만 달러의 차관을 들여 건물을 짓고 생산시설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다.
지금의 연간 3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ETRI의 모습과는 단순 예산비교로 만도 큰 차이가 난다.
80년대 초 지금은 작고한 한상준 박사(전자기술연구소 초대 소장)를 주축으로 ‘반도체 생산기술에 관한 연구’라는 과제를 만들어 당시 장유길 부소장과 지금은 벤처업계에 전념하고 있는 이진효 대표, 서울대 교수로 재직중인 이종득 박사, 충남대 김도진 교수 등이 주축이 됐다.
전자기술연구소는 83년 64K 롬까지 생산한 뒤 84년 반도체 생산 시설 전체를 LG전자의 모태가 된 금성반도체에 넘기고 일부 연구원들이 업체로 함께 자리를 옮기는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며 현재의 ETRI인 대덕연구단지로 둥지를 옮겨 ETRI의 오늘을 있게 한 주역으로 이진효 대표와 ETRI 기반기술연구소 소속의 강영일 박사, 권오준 박사, 최창억 부장 등을 꼽을 수 있다.
◇국내 반도체 연구의 산실 ETRI=대덕연구단지에서는 다시 반도체 랩을 세우자는 여론에 따라 당시 소장을 맡고 있던 경상현 박사가 이를 받아들여 실험실 규모의 연구가 재시작됐다. 삼성전자와 금성전자, 현대전자 등이 연구에 가세하면서 정부 주도형 메모리 연구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1M에서 16M DRAM까지 밤낮없는 연구개발이 숨가쁘게 진행됐다.
90년대 들어서서는 과제가 세분화되어 대형 국책사업이 없어지고 품목별 연구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반도체 연구의 초창기 멤버로는 ETRI 기반기술연구소의 강영일 박사(60)가 있다. 서울대 출신으로 미국 훼어리디킨슨대에서 석사,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강 박사는 82년 3 마이크론 실리콘 게이트 공정 개발을 시작으로 32K, 64K 롬 개발을 주도했다.
무선통신용 RF 멤스와 질병진단용 바이오 소자를 연구하고 있는 최창억 부장(50)은 당시의 에피소드를 이렇게 회상한다.
“80년대 VTR칩조차 만들지 못하던 시절, 칩을 만들 방법이 없어 일본의 히타찌 제품 2대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는 밤낮없이 분해하고 그대로 베껴 제품을 제작했는데 오히려 성능이 더 좋은 것이었습니다. 이 일로 일본에서 공급하던 칩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최 부장은 경북대 출신으로 이곳에서 박사학위까지 모두 땄다.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는 정희범 고집적 SoC연구부장(47)이 90년대 우리나라 초고속 정보통신 망 구축을 위한 B-ISDN 사업의 일환으로 ATM 교환기에 들어가는 핵심 주문형반도체(ASIC)를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시스템온칩(SoC) 플랫폼 및 관련 IP를 개발하는 정 부장은 휴대 정보단말기용 저전력 멀티미디어 통합 SoC 플랫폼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테라전자소자팀을 이끌고 있는 김대용 부장(51)은 서울대를 나와 미국 텍사스 주립대에서 석, 박사학위를 한 주문형 반도체 및 DRAM, 차세대 반도체 소자 연구의 권위자이다.
또 가시광 발광소자를 실리콘으로 구현하는 기술을 연구중인 성건용 박사(44)가 ETRI의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견인하고 있다. 성 박사는 연세대 출신으로 한국과학기술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코넬대서 2년간 박사 후 연구원 과정을 지낸 소자 전문가이다.
차세대 메모리 사업 중 비휘발성, 플래시 메모리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유병곤 박사(47)는 현재 DVD나 CD에 사용하고 있는 상변화 메모리 연구의 전문가이다. 유 박사는 경북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한 뒤 일본 동경공업대(TIT)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일부 출연연,대학 세계적 수준=ETRI를 제외하고서라도 대전,충청권에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을 비롯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정보통신대(ICU), 충북대, 충남대 등지에 세계 정상급 인력이 다수 포진해 있다.
15년째 표준연에서 잔뼈가 굵은 나노표면그룹의 노삼규 박사는 양자점 기술 국가지정연구실 팀 리더를 맡아 화합물반도체에 기초한 차세대 광통신 및 열영상의 핵심소자인 신개념의 양자점 레이저다이오드나 양자점 원적외선수광소자 응용기술을 연구 중이다. 노 박사는 연세대를 나왔다.
표준연 전자소자그룹 김진태 박사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자소자 연구 전문가이다. 지난 2000년도부터 극미세구조기술개발사업을 총괄하며 나노선 및 결정으로 이루어진 신개념의 전자, 자기소자 개발에 필요한 원천기술을 연구중이다.
또 학계에서는 충북대 최중범 물리학과교수(49)가 일본의 통신업체 NTT와 연구수준에서 쌍벽을 이루는 톱클래스이다.
최 교수는 KAIST의 이귀로·홍성철 교수와 함께 집적도의 한계에 봉착한 반도체 분야에서 전자 1개로 작동하는 단전자트랜지스터(SET)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최교수는 기존 반도체처럼 채널에 수많은 전자를 통과시켜 1비트의 정보를 저장하지 않고 양자점이라는 곳에 단 1개의 전자만을 통과시켜 1비트의 정보를 생성시키는 원리로 작동하는 신개념 반도체를 연구 중이다. 최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KAIST에서 석사, 미국 메릴랜드대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TRI출신인 한국정보통신대 박철순 교수(47)가 초고주파 집적회로를 연구하며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AT&T 벨랩에서 연구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는 박 교수는 서울대를 나와 KAIST에서 재료공학 전공으로 석,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LG반도체(하이닉스로 통합)출신인 충남대 이희덕 교수(38)는 반도체 소자 분야 전문가이다. 학,석,박사 모두를 KAIST에서 딴 이 교수는 92∼93년께 ETRI와 함께 차세대 메모리용 반도체 소자를 연구했다. 현재는 10년 내에 산업체에서 응용가능한 차세대반도체소자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또 KAIST에도 많은 인력이 포진해 있다.
서울대와 미시간 주립대를 나온 윤의식 교수(45)는 반도체 및 전자회로 설계의 권위자로 현재 초정밀미세가공기술(MEMS)을 연구하고 있다. 강상원 신소재공학과 교수(52)는 서울대를 나와 KAIST에서 재료공학으로 석, 박사 학위를 하고 현재 전자재료 및 반도체 물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경종민 전자전산학과 교수(51)는 경기고, 서울대 출신으로 KAIST에서 석, 박사를 했다. 반도체 설계분야의 권위자이다. 현재 고성능집적시스템연구센터와 반도체설계교육센터 소장을 맡고 있으며 마이크로프로세서, 디지털신호처리(DSP) 칩 설계 연구를 수행중이다.
이외에도 우성일 교수(53)가 생명화학공학과에서 촉매 침 표면과학, 전자재료 공정을 연구하고 있으며, 서울대 출신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금속재료공학으로 박사를 딴 신소재공학과 유진 교수(54)가 재료강도학, 전자패키징을 연구 중이다.
◇업계선 대기업 중심포진=ETRI에서 반도체 교육을 받고 업계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로는 LG종합기술원의 부종옥 박사 외에도 하이닉스 반도체 등에 고급 연구인력이 흩어져 있다.
청주의 하이닉스 반도체 시스템 IC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종근 박사(45)는 고주파(RF)와 이미지 센서 등 비메모리 분야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중앙대 출신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또 경북대를 나온 하이닉스 반도체 김대병 부장(47)은 시스템 IC 분야의 선행 소자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중소 업체로는 ETRI출신으로 휴대폰용 마이크로폰 탑재 반도체를 생산하는 알에프세미 이진효 대표(56)가 있다. 한양대를 나온 이 대표는 ETRI 시절 4M와 16M, 64M DRAM 개발의 총괄 책임자를 맡았다.
또 ETRI 출신으로 반도체 설계 회사를 운영하는 아날로그칩스 송원철 대표(50)는 서울대를 나와 KAIST에서 석,박사학위를 했다. 현재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휴대폰용 칩을 생산하고 있다.
이외에 반도체 제품을 개발하는 에티스 권오준대표 등이 꼽힌다.
대전=박희범기자@전자신문, hb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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