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성민 엠텍비젼 사장(2)

사진; 창업 초기인 2000년 어느 날 사무실에서 제품 개발 회의를 하고 있는 창업 초기 주역들.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맨 왼쪽과 왼쪽 두번째는 창업 멤버로 현재까지 엠텍비젼에서 근무하고 있다.

(2)대기업을 나와 홀로 벤처를 설립하다

 1988년부터 시작된 LG반도체 연구원 시절. 이때 나의 주요 임무는 CCD 이미지 센서 및 카메라 IC 개발이었다. 당시의 반도체 산업 자체가 메모리 산업 위주의 성장을 하고 있었지만 회사 내에서 비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만들어진 부서였다. 1997년에는 CCD 센서뿐만 아니라 카메라 IC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만한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는 자체 개발한 부품들로 PC 카메라를 100% 국산화하는 결실을 맺어 당시 회사 내에서 신선한 바람을 불러왔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너무 편중되어 있는 가운데 비메모리 반도체의 사업 성공 여부는 심각한 논란의 대상이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메모리만큼의 사업성이 없기 때문에 개발을 활성화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7년 12월 내가 팀장으로 있던 카메라 IC 개발팀은 청주 사업장의 임원회의에서 카메라 IC의 기술과 사업성에 대해 발표를 할 기회가 있으니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새벽부터 세찬 눈발이 날려 한치 앞을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동안 연구해온 것을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청주로 향했다. 다급한 마음에 미끄러운 눈길임에도 불구하고 과속까지 해가며 청주를 향해 액셀러레이터를 밟았지만 약속 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한 상황이었다.

 다급해진 마음에 빠른 속력으로 커브길을 도는 순간 앞에서 달려오는 덤프 트럭과 정면 충돌을 했고, 덤프 트럭 밑으로 차가 처박히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차는 많이 부서졌지만 천운이 따랐는지 사람과 장비는 다치지 않았다.

 교통사고의 충격을 뒤로한 채 임원 회의에 들어가 카메라 IC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찾았으나, 그리 큰 반응은 얻을 수 없었다. 이후 1998년 3월 나는 카메라 IC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사내 벤처를 제안했다. 이미 카메라 IC에 대한 연구는 성과가 나오고 있었고, 사업성 또한 분명하다는 판단으로 성공 여부를 확신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당시 외환 위기 후 대기업 빅딜 등으로 사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급격한 구조조정 등으로 혼란상태가 지속하면서 끝내 사내 벤처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내 벤처 및 비메모리 반도체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돼 10년 8개월간 정들었던 직장을 뒤로하고 나왔다.

 퇴직 후 석 달 동안은 많은 시행착오와 번민의 시간이었다.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 직장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카메라 기술로 사업을 한다고 큰소리쳤었는데 과연 사업성이 있는가 ?’ ‘전 직장도 부정적이었고 사회도 부정적인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사업을 하려고 하는가?’ 하는 자조 섞인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나만큼 이 분야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으며, 언젠가는 모든 기기에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의 역할을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겁없이 엠텍비젼의 간판을 세우며 직원 한 명 없는 나 홀로 벤처를 설립했다.

 대책 없이 대기업을 나왔던 그때, 나 홀로 간판을 세운 그때는 엠텍비젼이 국내 최고의 팹리스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