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는 수없이 많은 개인정보들이 떠다닌다. 디지털사회에서 `개인정보=돈`이다. 그러다보니 남의 정보를 훔쳐 악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정보가 타인의 손에 넘어가 무한대로 수집되고 관리될 수 있다는 것은, 디지털사회가 가진 어두운 단면 중의 하나다.
이처럼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와 재산손실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정부에서는 관련법의 재정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전자신문인터넷은 개인정보보호 관련법을 둘러싼 이슈가 무엇이며, 정부와 시민단체 사이에 어떠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심도깊게 살펴보고자 한다.
◆ `통합이냐, 분리냐 그것이 문제다`
개인정보보호 관련법 개정의 최대이슈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통합이냐, 분리냐`의 문제다. 개인정보보호를 다루고 있는 현행법률은 법체계와 감독기구가 이원화되어 있다. 공공부문은 행정자치부가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개인정보보호법)`로, 민간 부문은 정보통신부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보호법)`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의 개인정보 침해사례가 발생하면 행정자치부 내의 위원회가, 민간부문의 경우는 정보통신부의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가 조정을 맡게 된다.
시민단체들은 이같이 이원화되어 있는 현행 법체계를 하나로 통합할 것을 요구한다. 캐나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보선진국에서 공공과 민간 부문을 아우르는 개인정보보호법을 만들었다는 것이 이같은 주장의 배경이다.
감독기구와 관련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 수준의 권한과 독립성을 가지고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감시를 총괄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프랑스의 `국가정보자유위원회`나 독일의 `연방데이터보호원`, 벨기에의 `개인정보보호원` 등은 조사권과 명령권을 가지고 있어 사건이 접수되면 문제점을 조사해 관련업체나 기구에 시정을 요구한다. 영국의 경우는 형사소추권까지 갖고 더욱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한편 정부는 통합법 마련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행대로 행자부와 정통부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각각 나눠 맡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청와대의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 개인정보보호 기본법을 따로 마련해 3차원으로 개인정보보호 관련 법률을 운용한다는 방침이다.
행자부와 정통부가 독자적인 법률안 제,개정안을 만들어 공청회를 진행하는가 하면, 시민단체들도 나름대로 연구작업을 거쳐 통합법안을 제안하는 등 개인정보보호 관련법은 어디로 갈지 오리무중이다. 통합이냐, 분리냐에 대한 국민적인 여론 수렴도 아직은 부족한 상태다.
◆ 공공과 민간부문으로 나뉘어 행자부와 정통부 입법추진
이미 정통부와 행자부는 법개정을 위한 독자행보를 걷는 중이다. 행자부가 좀더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지난 6월초에 ‘공공기관의 개인정보 보호에 관한 법’개정안을 확정, 국회에 상정했다. 입법 발의된 이번 개정안의 방향성과 관련 행자부 관계자는 "국민의 개인정보를 정부가 남용할 수 없도록 정보보호 원칙과 의무를 강화했다"고 설명한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개인정보를 수집하거나 외부기관에 위탁할 때는 반드시 인터넷에 공지하도록 의무규정을 뒀다. 국가기관이 자신의 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각 정부기관이 개인정보를 보유할 때 행자부 장관에게 통보하도록 했던 기존 법조항을, 행자부 장관과의 협의로 수정함으로써 개인정보 보유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개인정보를 당초 보유목적과 달리 사용하거나 다른 기관에 제공할 경우에는 개인정보보호심의위원회에 심의를 거치도록 했으며, 개인정보 보유 목적이나 보유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는 파기하도록 의무화했다.
한편 정통부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 중에서 개인정보 보호 항목을 분리해 독립된 법률로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통부는 가칭 `민간부문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제정안을 마련해 놓고,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거쳐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 시민단체 주장, "개인정보보호 통합법으로 제정되야"
반면 이같은 행자부와 정통부의 움직임에 시민사회 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차원에서 개인정보보호 기본법 제정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두 부처가 독자법안을 상정, 통합법 추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주장이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자기 부처가 관할하는 기구를 확장 또는 신설하는 방향으로 법률안을 제,개정 함으로써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하다"고 비난했다.
시민단체들은 공공과 민간부문의 구별없이 적용할 수 있는 기본법 성격의 통합 개인정보보호법과 독립적 감독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문날인반대연대,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한국노동네트워크협의회, 함께하는시민행동 등 7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프라이버시법제정을위한연석회의는 개인정보보호법 인권시민사회단체안을 발표하고 공청회를 여는 등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은우 변호사는 "완전히 독립된 감독기구가 피해구제, 의견제시, 국제연대 등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며 "특히 소환 및 진술을 하게 할 권한, 현장 조사권, 자료 수집권, 업무협조 요청권 등을 감독기구가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은 개인정보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확산시킬 수 있는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 총선공약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을 약속한 민주노동당 및 여야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연내에 통합법 제정을 위한 입법작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한편 정부혁신지방분권위는 정통부와 행자부가 임의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나눠 법을 만드는 것에 대해 별다른 제동을 걸지 않고 있다. 각 부처에서 하는 일을 못하도록 막을 수는 있는 명분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팽팽한 대립이 벌어지는 가운데 과연 17대 국회가 개인정보보호 법률 이원화를 밀고 나갈 것인지, 아니면 시민단체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