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벤처인 엠텍비젼을 설립했지만 처음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10년 넘게 CCD 이미지 센서 한 분야만을 연구해오던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미지 센서, 카메라 IC 분야를 미래 초고속 성장 분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의 환경과는 달리 직원 한명의 회사에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연구비와 사업 관련 비용을 충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웠다.
결국 나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너무도 확실한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잘 하는 일부터 하면 최소한 나중에 후회할 일은 없을 테니까. 결국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던 중 디지털 카메라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 디지털 카메라는 얼리어답터들만의 전유물이었고,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기계였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복합 컨버전스였다. 지금이야 휴대폰에 카메라, MP3플레이어가 붙고 MP3플레이어에 카메라가 붙는 등의 복합 컨버전스가 보편화되었지만 당시는 그런 용어조차 흔치 않은 시대였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제품에 카메라를 붙이면 된다는 간단한 해답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 해답은 다시 ‘과연 어떠한 기기에 카메라를 장착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몰고 왔다.
이때 전 직장 동료들과 절친했던 지인들이 사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는 1998년 12월 MP3플레이어 개발업체인 디지털웨이에 카메라가 장착된 MP3플레이어를 제안했다. 제안을 하고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기술적으로 전력소모 문제에 대한 해결 부분이 아직 부족했다.
우리의 밤샘작업은 또 다시 시작될 수 밖에 없었다.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작아야 하고, 건전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력손실 또한 적어야 한다’라는 확실한 문제를 놓고 밤새도록 씨름을 했던 때가 바로 이때다. 거의 모든 날들이 밤샘작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두가 가정을 돌볼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때 우리의 가장 소중한 동료직원의 아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뜨는 일이 벌어졌다. 누구 하나 가정을 돌보지 못했던 때라 사장인 나의 책임은 무거웠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각자의 가정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나로서는 내 생각의 불합리성에 대해서 괴로워했다. 일은 해야 하고 가정도 지켜야 하는 우리 세대의 바쁜 삶 속의 불합리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이것이 그때부터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였다.
그후 6개월 여의 개발 기간 후 우리는 결국 MP3플레이어에 외장형 카메라를 장착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함께 고생했던 디지털웨이와 함께 장영실상을 받는 영예까지 안았다. 하지만 MP3플레이어조차 생소한 시기에 카메라가 달린 MP3플레이어는 또 다시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었고 직원들의 눈물과 땀으로 만들어진 엠텍비젼의 첫 작품은 창고에 쌓이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 첫 작품이 현재의 카메라폰의 모습까지 진화하게 될 줄은 당시에는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