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통신의 영역다툼이 빈번하다.
디지털오디오방송,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디지털TV를 매개로 하는 홈네트워크 서비스 등에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는 수시로 다툼을 벌이고 있다. 대부분의 싸움의 원인은 주파수 허가권을 가진 정보통신부와 통신위원회, 고전적인 방송의 영역에서의 확대를 주장하는 문화관광부와 방송위원회의 시각차에서 시작된다. 정통부와 통신위원회는 주파수 관할권을, 문광부와 방송위원회는 방송사업자 추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마찰은 쉽게 끝날것 같지 않다.
뿐 만 아니다. 정통부와 방송위원회는 정통부가 마련한 통신서비스 사업자 분류 체계등을 원인으로 수시로 다툼을 벌이고 있다. 주파수 교란문제를 둘러싸고 위성 라디오 방송업계와 기존 무선통신 사업자들 간의 갈등도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갈등의 원인으로 부처간 이기주의가 지적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현상에서 비롯된다. 정보통신 기술 발달에 따라 통신과 방송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산업, 기술, 서비스 등의 발전에 따른 통합이 이뤄지고 있지만 이런 현상을 규제할 기구는 아직까지 요원하다.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방송위원회, 통신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많은 규제기구가 있지만 그야말로 규제기구 일 뿐 경제적, 산업적 입장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공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통합적인 규제기구로서는 미흡하다.
현재 디지털화가 이뤄지고 있는 TV는 교육, 방송, 오락, 쇼핑, 정보검색 등을 갖추면서 방송과 통신을 연결한 TV 포탈시대를 맞고 있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등은 이미 일원화된 방송통신위원회 설치했으며 영국과 독일 등 유럽국가는 EU의 통신시장 개방과 방송.통신 융합추세에 대처하기 위해 관계법 및 규제기구 정비방안에 대한 검토를 마쳤거나 진행중이다. 이들 나라의 관계법령과 규제기구 정비는 해당 산업을 통제하는 기구로서가 아니라 산업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경제부처와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미국의 FCC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기구는 표준과 기술개발을 위한 관계법령을 정비하고 산업계 입장을 적극 반영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1997년 유럽위원회 ‘녹서’에 따르면, 융합서비스란 그 동안 구분되어 왔던 둘 이상의 부문들의 속성이 반영되어 등장한 새로운 서비스를 의미한다. 즉, 기존의 방송과 통신의 정의로는 분류하기 어려웠던 서비스 뿐만 아니라, 화상 전화나 화상 회의와 같은 서비스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반면 우리의 미디어 관계법령은 통신을 제외하고 인쇄, 통신, 방송이라는 전통적인 매체 구분론에 따라 도식적인 법제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방송과 통신을 규제하는 기관이 방송위원회, 종합유선방송위원회, 통신위원회,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정보통신정책심의회 등으로 분산돼 있다. 관련 부처 및 위원들간의 역학관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은 항상 내포돼 있다
가까운 미래에 진화된 쌍뱡향 케이블 TV와 위성방송, 지상파방송, 홈네트워크서비스, 텔레매틱스, 유비쿼터스 등 정보가전 서비스가 등장하는 등 어느 영역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새로운 서비스들이 출현함에 따라 규제기관 간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규제기구와 관계법령의 갈등은 산업발전을 억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 방송통신 융합에 대비한 새로운 형태의 규제 기구와 관계법령 정비는 이래서 더욱 절실해진다.
미래에 대비한 규제기구는 모습은 제도적 측면 뿐만 아니라 문화적, 경제적, 산업적, 국제적 측면을 고려한 합리적인 규제정책을 관장할 수 있는 형태가 돼야 한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원적인 규제를 하나로 묶어 관장하는 것은 물론 우리 나라 경제를 관장할 수 있는 미래 지향적인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규제기구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의 ‘관리’와 ‘규제’ 차원을 벗어나 산업 육성이라는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진흥’의 목적을 띄고 논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