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나쁜 걸 볼까봐 걱정되죠. 그치만 어쩌겠습니까. 인터넷을 우리보다 잘 하고 감시하려 해도 한계가 있는 걸…”(최모씨·39·서울 하계동)
“우리도 예전에 어느 때가 되면 성인 잡지를 본 것처럼 아이들도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막는다고 해서 못보는 것도 아니고 믿고 맡겨야죠.”(라모씨·40·서울 이문동)
각각 초등학교 3학년, 6학년 자녀를 둔 두 부모는 자녀의 인터넷 이용을 지도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에 믿고 맡기는 편이라고 했다. 자식보다 PC나 인터넷에 대해 지식이 적고 생활도 바쁘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전했다. 사실 이 같은 태도는 자녀를 둔 모든 부모들의 공통점으로 보인다.
지난 5월 KT문화재단의 조사에서 초·중·고교에 다니는 아이들 10명 중 9명이 집에서 인터넷을 이용하는 가운데 초등학생의 14.4%, 중학생 30.3%, 고등학생 49%가 음란물을 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학부모 500명 중 82%는 자녀들이 음란물을 접하는 사실조차 몰랐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관심과 지도가 없으면 청소년들이 사이버 범죄자로 전락하는 곳이 바로 현재의 인터넷이다.
◇‘아차’하는 순간 범죄자로 전락=최근 A군은 파일 공유 서비스를 통해 음란물을 내려받았다. 파일을 보고 난 뒤 지우지 않고 PC를 사용했다. 얼마 뒤 A군은 경찰로부터 음란물 유포 혐의가 있으니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A군은 음란물을 누구에게 보낸 적이 없는데 유포했다는 경찰의 말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황당한 일 같지만 이는 실제 상황이다. 최근 경찰의 음란물 단속 과정에서 한 파일 공유 서비스 이용자는 음란물이 저장된 자신의 인터넷 폴더를 2주간 열어 두었다가 경찰에 적발된 사례가 있다. 이 네티즌은 타인에게 파일을 직접 보낸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내려받을 수 있게 했다는 이유로 음란물 유포가 인정됐다. 인터넷이 편리한 만큼 위험도 따르는 것이다.
중앙대 법학연구소 김연수 전임 연구원은 “이는 노상에서 음란 서적을 파는 것과 똑같은 경우”라며 “남들이 구입 하도록 음란 서적을 차려 놓은 것은 당연한 단속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도박장 개설과 같다는 얘기다.
◇범죄인식 부재=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범죄자가 되는 경우는 또 있다. 사이버 범죄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 부재 때문이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지난해 사이버 범죄 사범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청소년 사범 7명 중 5명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범죄인지 몰랐다’고 응답했으며 나머지 2명도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답해 범죄 인식이 매우 희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당연히 범죄 행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이버 범죄 사범들의 교화를 맡고 있는 정보문화진흥원 양희인씨는 “청소년들은 인터넷을 가벼운 공간으로 여겨 아이템 사기 등을 재미삼아 저지른다”며 “또 익명성을 전제로 하다보니 내가 잡힐까 하고 쉽게 범죄 행위를 행동에 옮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실제 어린 범죄자가 해마다 대거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3만 150명에 달하는 사이버 범죄 검거자 중 20대가 37.1%, 10대가 33.8%로 10·20대가 71% 가량을 차지했다. 직업별 통계에서도 학생이 27.3%를 기록, 무직으로 분류되는 불법사이트 운영자 38.5% 다음으로 높았다.
◇어른들의 ‘기강’이 필요한 때=전문가들은 사이버 범죄 사범에 대해 처벌 차원의 접근보다는 왜 사이버 범죄를 저지르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범죄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사범들을 처벌하는 것은 효과적인 대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문화진흥원 역기능예방팀 김봉섭 과장은 “죄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처벌을 하면 반성전에 반발부터 일어날 수 있다”며 “사이버 범죄 사범에게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려주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오프라인 사회처럼 인터넷에도 어른들의 기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연수 연구원은 “아이들이 잘잘못에 대해 모른다면 이는 어른들이 알려줘야 한다”며 “사이버 윤리와 도덕이라고 해서 다른 게 아니라 일반 사회의 윤리 의식을 강조하면 된다”고 말했다.
사이버 범죄가 일반 범죄와 겉으로는 다르지만 남의 물건을 허락없이 취하는 행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타인을 비방하거나 괴롭히는 행위 등은 ‘해선 안될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은 “인터넷에도 사회 질서처럼 누구나 공감하고 당연히 지키는 규범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종윤차장(팀장), 김유경기자, 조장은기자, 윤건일기자
*자녀 인터넷 지도 6계명:자녀의 ID를 알자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의 학교 생활, 교우 관계 등을 꼼꼼히 챙기지만 인터넷에서의 자녀 활동에는 관심이 적다. 청소년에게 인터넷은 생활의 일부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소장 어기준 http://www.computerlife.org)는 부모가 자녀 지도를 위해서 자녀의 인터넷 ID 및 주소 여섯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메신저 ID=청소년은 대부분 인터넷에 접속하자마자 메신저에 로그인해 친구들에게 쪽지를 보내고 정보와 자료를 교환한다. 친구등록을 해두면 자녀의 인터넷 접속과 종료도 확인할 수 있는 메신저로 직장에서도 자녀의 생활을 지도할 수 있다.
◇게임 ID=인터넷으로 가장 많이 즐기는 것이 게임이지만 중독을 낳고 사이버 범죄 등을 유발시킬 수 있다. 또 게임으로 인한 갈등으로 청소년 가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유사시에 대비해 자녀가 즐기는 게임과 게임의 ID를 알아둔다.
◇채팅 ID=모르는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채팅은 청소년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채팅은 등은 유괴, 성폭행 등 강력범죄의 원인이 된다. 자녀가 이용하는 채팅사이트와 채팅ID는 자녀를 구하는 단서가 된다.
◇홈페이지 주소=미니홈피, 블로그 등의 개설이 청소년에게 유행하고 있다. 청소년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애착을 갖고 그 속에 자신의 생각과 속마음을 털어 놓기도 하므로 자녀의 홈페이지 주소를 확인해 가끔씩 접속해 격려한다.
◇동호회 주소와 ID=수많은 카페와 동호회는 청소년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자녀가 가입되어 있는 동호회의 주소와 ID를 알고 있으면 자녀의 관심 분야와 활동 내용을 파악할 수 있어 자녀를 긍정적인 동호회 활동을 유도할 수 있다.
◇이메일 주소=청소년은 속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편지보다는 이메일을 더 친숙하게 사용한다. 직접적인 대화 외에 이메일을 보조 매체로 활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클린지킴이]오원이 정보문화진흥원 역기능예방팀장
범죄의 예방 만큼 중요한 것이 범죄 사범들에 대한 교화다. 교화는 사범들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를 자각하게 함으로써 사회 질서 유지에 동참시키고 재범을 방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이버 사범을 위한 법적, 제도적인 교화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지난해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서울보호관찰소 남부지소와 협력해 교화 사업에 나선 것이 첫 출발이었다. 지난해 사이버범죄는 총 68445건이 발생했지만 청소년 7명, 성인 4명을 합쳐 단 11명만이 교화를 받았다.
정보문화진흥원 역기능 예방팀 오원이 팀장은 “사이버 사범은 그 원인이 다른데도 일반 사범과 법적, 제도적으로 구분이 안돼 있다”며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사이버 범죄에 대한 개념 규정이 안돼 있다보니 사이버 사범에 대한 구분도 애매한 실정이다. 교화 대상을 선정할 때 보호관찰소에서 사범이 저지른 행위를 자체 검토한 후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오 팀장은 “이 때문에 법조계의 사이버 범죄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엄연히 원인과 배경이 다른 사이버 범죄와 일반 범죄를 구분 없이 동일한 방식으로 교화를 실시하는 것은 윤리의식 제고와 재범방지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보호관찰소에서도 사이버 범죄 사범이 늘고 있지만 법적 근거 부족으로 사범에 대한 교화 프로그램이 전무하다는 것을 문제로 인정하고 있다.
오 팀장은 “올해 진흥원에서는 사이버 사범들을 위한 수강명령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사이버 범죄 교화에 참여하는 곳도 늘고 있어 갈 길이 멀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차근차근 준비해 갈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전국으로 사업을 전개하기에는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사이버 범죄 사범에 대한 무관심의 현주소다.
오 팀장은 “학교, 가정, 사회 각계 각층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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