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양대 NT 사업단장이자 유기박막재료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이해원 교수는 “당장의 산업화에만 급급해 원천기술 확보에 소홀한다면 반도체 무역적자는 날로 늘어날 것”이라며 “대학의 연구자들이 차세대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이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노과학기술은 아직 일개 국가가 독점적으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나노과학기술의 발전 여하에 따라 기존의 산업과 미래의 첨단 산업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양대 화학과 이해원 교수(50)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중국의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장기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한양대 특성화 NT사업단장이며 국가지정연구실(NRL)인 유기박막재료연구실을 책임지고 있기도 하다.
이 교수는 나노기술이란 말이 유행을 타기 전인 1999년부터 유기박막재료연구실을 통해 나노의 세계에서 테라(Tera)를 창출하는 연구를 해 왔다.
그는 지난해 원자현미경을 이용해 미세가공속도를 기존의 초당 수십 마이크로미터 수준에서 초당 수 밀리미터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이 성과는 기존 속도를 100배 이상 향상시킨 연구 성과다. 원자현미경을 이용한 극미세가공기술은 반도체 제조공정에 활용할 경우 테라급 반도체 제조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존 반도체 제조방식이 회로를 사진 인화하듯 기판에 찍어서 가공하는데 비해 원자현미경을 이용하면 더 세밀한 선 폭 제작이 가능해진다. 원자현미경에 붙어 있는 탐침을 이용해 기판에 직접 패턴을 새겨넣기 때문이다. 이 공정이 상용화되면 수조 원 규모의 반도체 생산 라인 설립에 들어가는 비용도 대폭 낮출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원자 현미경을 이용한 미세 가공은 일반적인 광을 이용한 가공에 비해 높은 해상도의 패턴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느린 속도로 인해 넓은 면적이나 양산 공정에 적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이 교수는 원자현미경 기술의 단점을 보완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결과가 바로 실리콘 기판 위에 수 나노미터(nm) 두께로 균일하게 유기물 박막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단순히 탐침을 이용해 패턴을 얻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탐침이 움직이는 속도를 증가하게 하는 기판 개발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였다.
그는 실리콘 기판 위에 수 nm 두께로 균일하게 유기물 박막을 입히고 이 표면을 20nm 이하 지름의 탐침 끝으로 가공했다. 그 선 폭이 불과 40nm정도였다. 원자 하나의 크기가 0.2nm 이니 거의 분자 단위의 배열이 된 셈이다.
“이 정도의 가공속도로는 상용화에 적용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기존 기술의 100배를 능가하는 성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 교수는 속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탐침을 여러 개 사용하고 이를 복합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공정 기술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그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연구 방법을 생각한 것은 그가 화학과 전자공학 백그라운드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나노기술 연구자들이 화학이나 물리, 전자공학 등 한 방향에서 접근하는 것과 달리 그는 화학과 전자공학을 접목해 물질의 특성을 모두 파악한 후 연구에 착수했다.
“많은 연구자들이 물질의 특성에 대한 파악 없이 단편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화학, 물리, 생물, 전자공학 등 나노기술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심해 다양한 각도에서 복합적인 연구에 나서야 합니다.”
이 교수는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을 융합하는 기술분야에도 높은 관심이 있다. 노인성 치매와 같은 난치병을 일으키는 DNA구조를 찾아내고 이를 진단할 수 있는 나노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혈액 내에 존재하는 극미량의 물질들이 특정표면에서 서로 인지되는 원리를 이용해 이상 징후를 감지해 내는 분자센서 개념이다.
“꼭 해내고 싶은 분야라 열심히 하고 있지만 쉽지 않습니다. 그동안 많은 연구 노력을 기울였는데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는 연구의 어려움을 솔직히 토로하면서도 성과를 거두겠다는 강한 의지도 내비쳤다.
기술을 연구하는 것 못지않게 그가 중요시하는 것은 나노기술에 대한 대국민 홍보다. 일반인들에게 나노기술이 가져올 새로운 미래와 영향에 대해 알기 쉽게 홍보하는 역할이 과학자의 사명이라고 강조하는 이 교수.
이 교수는 이번 나노코리아2004에 나노체험관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나노기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행본을 만드는데도 적극 참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극한의 기술을 사람들에게 체험하게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나노기술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나노와 함께하는 생활을 묘사한 그림을 펼쳐보이며 나노의 세계를 설명하는 이 교수.
그는 나노를 알고 싶다면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나노코리아2004 나노체험관에 들러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직 원자현미경을 이용한 가공법을 반도체 제작에 이용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당장의 산업화에만 급급해 원천기술 확보에 소홀한다면 반도체 무역적자는 날로 늘어날 것입니다.”
몇 년 안에 상업화되지 않아도 원천기술을 확보해 기반을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 교수. 그는 대학의 연구자들이 차세대 원천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이를 기다리는 인내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나노 원천 기술 확보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etnews.co.kr
*한양대 유기박막재료연구실
유기물 분자를 기판에 장착해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분자조립체는 나노 수준의 초고집적회로, 분자전자소자 등 미래의 정보·전자기기에 다양하게 응용이 가능하다.
한양대학교 유기박막연구실은 유기물 박막의 분자수준 제어 및 분자적 특성평가를 바탕으로 나노미터 수준에서 분자들의 패턴형성과 나노구조물 제조에 연구를 하고 있다. 유기박막연구실이 연구하는 분야는 전세계적으로도 관련 분야 연구자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분야다.
이 연구실은 분자조립체 및 포토레지스트를 대체하는 분자레지스트의 특성제어와 응용을 목표로 한다. 연구실은 △자기조립 단분자막의 표면구조 분석 △선택적 표면 개질 △표면·계면의 흡착 메커니즘 규명 △초고감도 분자레지스트 합성 △나노감지센서용 초 감응 분자 합성 △나노구조물 제조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원자힘현미경(AFM) 리소그래피(Lithography) 시스템을 이용한 유기물 초박막 나노구조물 제조 및 관련된 리소그라피용 하드웨어 개발 능력은 세계적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탄소나노튜브를 장착한 탐침을 이용한 초고속 AFM리소그라피 시스템과 개선된 탄소나노튜브의 선택적 흡착을 통한 나노구조물 제작 연구에도 주력하고 있다.
분자조립체란 유기·무기분자 및 거대 분자들이 원자나 분자 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조직적으로 배열된 구조를 말하며 구성 분자들의 기능적인 특성과 종류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갖는다.
분자조립체에 관한 연구를 통해 분자간 상호작용, 표면과 계면에서의 분자 특성을 이해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특성 평가해 이들이 구성하는 분자를 특수한 목적에 맞게 설계·합성할 수 있다.
분자의 기능적 특성과 배열된 구조적인 특성에 따라서 분자 전자소자나 감지소자의 제작에 활용될 수 있다. 또 나노 리소그라피 공정의 분자레지스트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노입자의 표면을 기능성 분자조립체로 입히면 새로운 분자적 표면특성을 갖는 나노입자로 변형이 된다.
특히 반도체나 금속표면 위에 잘 배열된 초박막의 상태로 만들어진 분자조립체는 나노 수준의 초고집적회로, 분자 전자소자, 생체소자, 바이오센서 등과 같은 극소형·고기능성 소자개발에 응용할 수 있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연구실에서는 최근 나노기술과 바이오기술을 응용해 노인성 치매와 같은 난치병을 일으키는 DNA 구조를 찾아내고 이를 진단하는 나노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특정 질병을 일으키는 DNA 구조가 보통 것과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유사한 분자를 합성해 기판 위에 선택적으로 부착한다. 이 후 그 구조와 잘 결합해 평면구조를 만들 수 있는 분자를 이용해 3차원 구조의 분자센서로 활용하는 것이다.
연구실은 이런 기술을 개발해 궁극적으로 혈액을 타고 몸속을 돌아다니며 치료를 할 수 있는 나노로봇 실현을 기대하고 있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