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인들에 대한 낮은 처우와 불안정한 신분 등의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연구개발 분야에 몸담기 두려워하는 현상이 가속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장학금과 유학 지원 등의 유인책, 교차지원 축소 등의 입시제도 개선 등 고등학생들의 이과 선택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공계인들은 정부정책이 전반적인 이공계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파악과 배출인력의 사회적 처우 개선 없는 땜질처방이라며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이 비정규직 이공계 양산에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도 높아가고 있다. 국가 경제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연구개발을 맡고 있는 고급 인력들이 연봉 2000만원 미만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며 이공계 기피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열악한 비정규직 이공계 상황과 원인, 이에 대한 대책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지난해 9월 북극해 근방의 플레세츠크우주센터에서 한국의 ‘과학기술위성 1호’가 지상 690㎞ 궤도 상공으로 쏘아올려졌다.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국내 최초의 우주관측 과학위성을 쏘아올린 것이다. 그러나 이 위성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이에 참여한 연구원 26명 중 23명이 계약직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 세상에 드러났다.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국내 굴지의 정보기술분야 연구원에 근무하는 K씨는 S대에서 박사를 마친 인물이다. 그의 직함은 연구원이지만 1년 계약의 임시직이다. 연구개발 과제가 늘어나 이를 수행하기 위해 뽑은 계약직 연구원이다. 그의 임무는 연구개발 과제에 필요한 연구에서부터 과제 연구비 정리 등 잡다한 모든 일을 수행하는 것.
그는 “청년 실업 대란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 연구원에서 임시직 연구원 자리조차 구하기힘들다”고 현실을 토로한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정규직 연구원이 될 길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다”고 말한다.
이 연구소시스템은 아무리 뛰어난 연구원이라도 비정규직이라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도록 되어있다. 정규직으로 근무하려면 연구소를 아예 그만두고 자연인이 됐다가 다시 정규직 공채에 응시해야 하는 구조다.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던 동안의 경력과 연구성과는 정규직 임용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비정상적인 구조로 채용 시스템이 왜곡돼있다.
한 출연연의 인사담당자는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정규직 모집에 응모할 수 없다”며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연구원을 정규직 연구원을 전환하는 것이 채용 구조상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첨단이라는 이공계 연구원 채용시스템이 얼마나 왜곡됐는지는 학교의 경우만 보더라도 극명하게 비교된다. 사립중고교의 경우 기간제 교사를 임용했다가도 1∼2년 후 평가해 정식 임용하는 채용구조를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 연구원 무차별 양산=최근 한국과학기술인연합과 국회싸이앤지포럼이 17개 출연연구소와 이공계 대학의 비정규직 인력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런 상황이 일부 연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고질적인 병폐인 것이 확인됐다.
17개 정부출연연구소의 신규 채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최근 3년간 출연연은 전체 채용 중 비정규직 채용 비율이 85.05%에 이르렀다. 이 같은 수치는 민간부문과 비교해서도 지나치게 높은 비율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출연연의 공공성과 과학기술 자산의 인적 의존성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따르면 비정규직으로 연구활동을 시작하는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율이 2.3%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비정규직 채용이 정규직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경로가 아닌 출연연 고유의(?) 기형적 채용 형태임이 밝혀졌다.
박상욱 한국과학기술인연합 운영위원은 “비정규직 연구원의 대다수는 20대 후반∼30대 초중반의 신진연구인력으로서 학위를 마치고 갓 과학기술계에 진출해 가장 활발하게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이들에게 비정규직의 굴레를 씌워 허우적거리게 만들고 수년 이내에 직장을 떠나도록 방치하는 것은 심각한 인적 자원의 심각한 낭비라 아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인순기자@전자신문, in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