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서정욱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이사장(11)

(11) 크리스마스에 시작 된 CDMA 대장정 

사진설명: 1995년 필자(왼쪽서 세번째)가 KMT시험평가센터에서 상용시험 관계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유리창 뒤편에 CDMA교환기가 보인다.

1993년 12월24일. 연일 야근으로 지칠 대로 지친 관리단 사람들은 모처럼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케이크 상자를 들고 퇴근할 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무자비한 짓을 해야 했다.

“CDMA전쟁은 95년 말까지 끝내야 한다. 이용자 요구사항은 CDMA 대장정의 출사표다. 12월31일과 1월1일은 불과 하루 사이지만 해가 바뀌니 1년이기도 하다. 오늘 출사표를 공포하면 우리는 1년을 앞당겨 대장정에 오를 수 있다. 이 전쟁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모두 들었던 케이크 상자를 놓고 요구사항을 발송하느라 밤새워 팩스를 돌렸다. 한 업체에서 전화가 걸려와 “산타클로스가 요구사항을 선물했으니 CDMA사업에 행운이 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94년 1월, 관리단은 요구사항 설명회를 갖고 1차 보완을 했다. 3월, 자문교수단을 발족시켜 IS-95A를 요구사항에 적용한 2차 보완을 했다. 4월 선경이 KMT를 인수해 CDMA사업에 큰 변화를 예상했으나 관리단을 믿는다며 계속 지원할 것을 약속했다. 5월에는 요구사항을 3차 보완했다. 7월에 1000여 상용시험 항목을 업체에 통보했다.

8월에는 상용시험에 앞서 업체들은 자체 예비시험에 들어갔다. 삼성, 현대, LG 순으로 통과했다. 9월 말 삼성이 제1착으로 상용시험기를 KMT에 설치했다. 이때부터 CDMA전선에는 일진일퇴, 일희일비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다.

관리단과 업체의 관계는 엄연히 갑과 을이다. 그러나 관리단은 업체들이 개발한 CDMA시스템 요구사항을 만족할 때까지 수정·보완하도록 적극 지원했다. 업체들이 그 비용을 부담했다면 엄청날 것이다. 관리단과 업체들은 이처럼 상부상조하면서 늦은 밤에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 기사식당을 찾아가곤 했다. 자장면과 김밥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고정 메뉴였다.

11월에는 LG와 현대가 상용시험기를 KMT에 설치했다. 드디어 CDMA사업은 전면전에 돌입했다. TDX전쟁에 참여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요소 요소에 포진하고 있어 마음이 든든했다. 94년 말 체신부는 장관이 바뀌고 정보통신부로 이름도 바꿨다.

95년 1월에는 LG, 삼성, 현대 순으로 상용시험 주요항목을 통과했다. 관리단과 업체들은 시스템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함을 찾아내 수정·보완하느라 주말과 명절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CDMA시스템은 겨우 완성됐으나 기존 AMPS망과 연동시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주파수 고갈로 통화품질이 최악의 상태에 있는 AMPS주파수 대역에서 CDMA 주파수를 뽑아내는 것은 위험천만한 작업이었다. 정통부에 반납을 전제로 주파수 배정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CDMA사업을 맡고 시스템 실현에 노심초사하면서 한편으로 나는 단말기와 계측기 때문에 속을 태웠다. 계측기는 휴렛팩커드가 협조를 약속해줘 숨을 돌렸지만, 단말기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이었다. GSM이 선점한 이동통신서비스시장에서 CDMA는 상용화돼도 발붙일 곳이 없다고 모두 겁을 냈다. 나는 미국과 유럽의 CDMA단말기 현황을 살피며 앞서 있다는 퀄컴과 노키아의 샘플을 보고 국내개발을 결심했다. 내수시장이라도 보장하기 위해 단일 표준화를 주장하면서 업체들에겐 단말기 개발을 종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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