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사람이다’
최근 도약대에 오른 국내 주요 팹리스 비메모리 반도체업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쓸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메모리에 편중된 구조로 가뜩이나 비메모리 전문인력이 부족한데다 그나마 반도체빅딜 이후 많은 인력이 해외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이들엔 당장 돈보다 사람 구하기가 더 큰 골칫거리다.
IT SOC협회 황종범 사무총장은 “비메모리 반도체업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인력부족 문제가 47%로 자금문제(39%)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비메모리는 사람이 곧 재산=엠텍비젼, 코아로직, 에이로직스, 다윈텍, 리디스테크놀로지, 토마토LSI, 넥스트칩 솔루션, 인티그런트 등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업계를 대표하는 벤처업체들은 최근 대대적인 인력 증강에 나서고 있다. 엠텍비젼이 최근 매출 1000억원 고지를 돌파한데다 나머지업체들도 그 뒤를 따를 예정이기 때문이다. 비메모리는 제품의 종류나 모델이 늘어날수록 핵심 설계, 지원 등 수반되는 인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이들은 필요한 인력을 충원할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무엇보다도 ‘프로젝트 리더급’ 인력 확보가 만만치 않다. 업계 한 임원은 “제품 설계는 문제가 생기면 한 번에 수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 3∼5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인력이어야 한다”며 “좋은 인력들이 지원하고 있지만 예상대로 당장 일을 맡길 수 있는 인력 확보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비메모리 벤처업체 사장은 “그나마 완제품을 설계해 온 경험이 있는 인재들은 모두 대기업에 몰리고 있으며 해외 인력을 유치하려고 해도 ‘기술 유출’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이다.
◇뛰는 산업, 기는 인력=국내 비메모리 벤처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들은 대부분 과거 대기업에 몸담으면서 반도체분야에서 시스템을, 또는 시스템분야에서 반도체 설계를 경험한 CEO가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배출의 문이 좁다는 얘기다. 게다가 IMF의 그림자가 드리운 90년대 후반 구조조정 과정에서 많은 전문인력이 해외로 떠났고, 이후 비메모리 분야 인력이 거의 양성되지 못하면서 인력부족은 예고돼 있었다.
또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는 비메모리 인력 양성사업을 통해 배출되고 있는 인력도 현재의 공백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난 2002년부터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 IT SOC사업단 등을 통해 전문교육이 시행되고 있으나 현재로서는 실제 개발업무에 투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인력양성이 관건=산·학·연 차원의 특단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모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한국 비메모리산업이 인력 문제로 현 수준에서 정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업계 한 임원은 “정부차원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해 실제 완제품 제작을 경험한 설계인력이 조기에 양성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대 조중휘 교수는 “비메모리 반도체는 모든 산업분야에 정립된 프로세스를 칩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업에서 공동 추진이 가능하다”며 “대기업과 벤처기업 등이 같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도 벤처기업의 실무 인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심규호기자@전자신문, khs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