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에서 근무를 하며 앞날의 행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0년 어느 봄날이었다. 후배와 함께 자리를 하게 된 주말 저녁, 시시콜콜한 인생 얘기로 시작된 저녁자리는 지금까지 서로 마음에만 품고 있던 세계무대의 중심에서 일을 내보자는 의기투합으로 이어졌고 알 수 없는 강렬한 창업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창업을 준비해 온 후배의 제안에 사장 자리를 수락하게 됐고, 회사 설립을 준비했다. 이 때만 해도 기술도, 사업 아이디어도, 자금도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나 무모하고 단순하게 시작한 것일지 모르지만, 회사 설립에 가장 중요한 ‘사람’부터 확보해 시작했으니 가장 잘 준비해 시작한 것일 수도 있다.
설립과정에서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회사의 비전과 원칙을 세워나갔다. 창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점이 ‘회사는 같이 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간다’와 ‘실행할 사람이 같이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이런 생각은 이후 회사 운영에도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원칙하에 공동 창업자들과 뜻을 모아 비전을 세웠다.
첫째, 네트워크 분야의 사업을 하자는 것이다. 필자 및 다른 공동 창업자들도 주로 네트워크 분야의 경험과 능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지만, 네트워크 분야는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이 예상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에 꼭 필요하면서도 점점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둘째, 최대가 아니라 최고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네트워크업계의 거인인 시스코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코도 갖지 못한 차별점과 경쟁력을 갖춘 회사, 우리 분야에서는 세계 1등인 회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셋째, 앞으로 10년 후에 회사의 평가가치를 1조원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당시 1조원의 가치는 특정영역에서 1위를 하는 전문기업의 시장가치를 참조하고 성장성을 반영해 잡은 목표였지만, 파이오링크를 설립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차근차근 그 목표에 근접해가는 것을 보며 막연했던 목표가 점점 더 뚜렷해지는 것을 느끼며 확신을 갖게 됐다.
그러던 2000년 7월, 7명의 파이오링크 창업자들은 주식회사 파이오링크 설립의 역사적인 순간을 맞게 됐다. 비록 공동창업자들이 출자한 종자돈으로 그야말로 허리띠를 졸라매며 회사의 운영을 시작했지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설립 초기에는 서울대에서 제공하는 작은 공간을 활용했으나 실질적인 작업공간이 부족하여 선후배 회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특히 리얼게인은 우리에게 작업공간과 회의실 등을 제공했다. 이 때문에 파이오링크가 첫 시제품을 만들어 낸 역사적인 순간을 리얼게인의 사무실에서 맞이하게 됐다.
제품 매출이 발생하기 전까지 1년 6개월 간 계속해서 용역의 유혹과 제품 개발에 대한 희망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했다. 제품개발을 하자니 운영비가 없고, 용역과제를 수행하자니 제품개발이 진행되지 않고. 우여곡절 끝에 제품개발을 선택했다. 숱한 어려움 끝에 2000년 말, 설립한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첫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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