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세계로 나가는 출구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는 입구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터미널’은 세상과 소통하려는 한 남자의 실존적 고뇌를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풀어낸다. 파리 드골 공항에서 11년째 체류하는 이란 출신의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59세)의 실화에서 소재를 가져와 스필버그 식으로 풀어낸 내러티브는 비록 할리우드의 전형적 공식을 답습하고 있다고 해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공항이라는 공간은 일상의 경계선에 놓여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평상시의 리듬에서 벗어난 감정의 고양을 경험하게 된다. 어딘가로 떠난다거나 어딘가에서 돌아온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적 이동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자아의 일탈 혹은 회귀가 숨어 있다.
스필버그는 세계를 공항 속으로 축소시켜서 인간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뉴욕의 JFK 공항 입국심사관 프랭크 딕슨(스탠리 투치 분)은 빅토르 나보스키(톰 행크스 분)의 여권을 인정할 수 없다. 비행 도중 나보스키의 고국인 동유럽의 작은 국가에서 쿠테타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뉴욕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경계선에 서 있는 인물이 된다. 그가 임시로 체류를 인정받은 JFK 공항 터미널에서 9개월 동안 생활하는 이야기가 ‘터미널’이다.
공항 터미널은 나와 세계, 꿈과 현실, 진실과 위선이 만나는 경계지점이다. 그 속에서 나보스키는 스스로 생존법을 터득한다. 톰 행크스는 ‘캐스트 어웨이’의 원시림으로 가득 찬 무인도가 아니라, 하이테크놀로지의 전시장이며 무수히 많은 군중들이 이동하는 공항 터미널을 배경으로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도에서 추방된 뒤 가족들과 떨어져 사는 청소부 할아버지 굽타, 입국심사대의 여직원을 짝사랑하는 남자, 유부남과 사랑의 상처로 아파하는 스튜어디스 아멜리에(케서린 제타 존스 분)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캐릭터가 나보스키와 관계를 맺으며 입체적으로 부각된다. ‘터미널’의 재미는 그런 캐릭터들이 발휘하는 매력에서 비롯된다.
세계 최대의 공항 JFK에서 실제로 촬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필버그는 실제와 똑같은 공항을 세트로 완성하고 촬영했다. 물론 결말은 할리우드식이다. 나보스키 앞을 가로막았던 미국의 거대한 관료주의가 갑자기 인도주의적 시각으로 무장 해제되거나 인도인 굽타 할아버지가 거대한 비행기의 이동을 막으며 1인 시위를 벌이는 신들은 분명히 작위적이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기는 하지만 마무리는 역시 전형적인 할리우드의 보편적 공식을 답습하는 것은 거대 예산이 투입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고질병이다. 이런 방법론으로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찾아낼 수는 없다. ‘터미널’은 실화를 소재로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거짓말을 만들어내며 우리들의 흥미를 자극하기는 하지만 삶의 본질적 고뇌를 관통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제기하는 결말의 화해는 지극히 위장적이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