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2주년-성장의 조건22]기업경영 분야-인재양성

 21세기 혁신경제 시대, 우수 인재 확보는 국가와 기업 성장의 핵심 요소다. 특히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을 국가 의제로 설정하고 경제 정책을 집중하고 있는 한국은 창의적인 인재를 어떻게, 얼마나 양성하느냐가 2만달러 달성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인재의 수요공급은 불균형이 심각, 깊은 수렁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15세에서 29세까지 청년 실업인구가 40만명에 육박하고 일자리가 없어 ‘취업박람회’를 전전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중소·벤처·공단 지역에 갈수록 사람이 없어 외국에서 생산 및 연구개발(R&D) 인력을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인력 수급의 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데스밸리(Death Valley)’는 ‘죽음의 계곡’이란 지명을 뜻하는 말만은 아니다.

 지난 80년대 미국의 교육 전문가들은 미국대학교육의 위기를 지칭할 때 처음으로 ‘데스밸리’라는 표현을 썼다. 대학에서 배출한 인력은 많은데 기업에서는 사람이 없는 인력수급 불균형 상황이 마치 죽음의 계곡처럼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에 빗대 이같이 표현했다. 오늘 우리의 현실이 이와 비슷한 것은 아닐까.

 ◇인력수급 불균형은 죽음의 계곡=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실업률은 2.4%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의 경제활동 인구 중 약 77만명이 실업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15세부터 29세까지의 청년실업률은 2003년 7.7%를 기록해 전년보다 0.9%P나 증가했다. ‘한 집에 한 명은 실업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인력은 많지만 쓸 만한 인재는 없다”는 것이 기업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산업계는 기존의 대학교육이 산업계에서 원하는 인력수급차원에서 볼 때 양적·질적 수준에서 매우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지난 8월 실시한 ‘기업에서 본 한국교육의 문제점과 과제’ 조사에 따르면 전경련 122개 회원사 중 21.7%(19.8%)가 대학교육의 양적(질적) 문제를 ‘매우 심각하다’고 봤으며 39.2%(57.9%)는 ‘다소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대체로 잘한다’는 의견은 2.5%(1.7%)에 그쳤다. 또 전경련은 이론중심의 공학교육 탓에 대졸 신규 채용자의 교육훈련에 연간 28조원이 소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인력수급 불균형 현상은 국가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고 인력과 기업 등 주요 경제활동 단위의 침체를 야기하고 있다.

 ◇원인은 어디 있나=외형적으로 경제성장속도 둔화와 이로 인한 고용 흡수력 감소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으나 인력은 초과 공급되고 있는 상황을 꼽을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10억원당 취업자 수는 1990년 68.7명에서 2002년에는 41.9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또 30대 대기업과 공기업, 금융업종을 등 주요기업의 채용인원도 1997년 158만1000여 명에서 올해 130만1000여 명으로 27만여 명이나 감소했다. 그러나 우선 대학진학률의 비약적인 증가로 노동시장에서 공급은 수요를 초과한다. 1980년 27.2%에 머물렀던 대학진학률은 1990년 33.2%, 2000년 68%, 지난해 79.7%로 늘어났다.

 내적으로는 한국의 국공립·사립대학이 공급자 위주의 경직된 교육 체계로 인해 산업계의 빠른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인력수급 불균형의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외형적인 교육수준은 높지만 산업계가 요구하는 수요와 괴리된 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양적 팽창으로 배출인력의 질 저하가 심각한 형편이다. 그래서 대기업 및 중소벤처 기업들은 “대학이 불량품만 양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고학력화로 양질의 근무조건을 갖춘 고용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져 있어 ‘마찰적 요인’에 의한 수급불균형 현상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또 △기업의 경력자 선호추세 △중소기업이나 3D업종은 회피하고 대기업만 선호 △가족 의존성 △진로지도 취약 등 사회문화적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책은 없나=전문가들은 데스밸리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 모두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대학은 교육과정을 혁신, 기업의 수요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은 대학 교육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인재 양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

 한국공학교육학회 이병기 회장(서울대 교수)은 “대학교육 혁신을 위해 학생들의 전공 이수학점을 늘리는 대학 교육 강화가 시급하고 대학들도 기업의 요구에 부합하는 커리큘럼을 개발, 산업체와 연계된 프로젝트 교육과 인턴십 등 산·학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해답”이라고 제시했다.

 연세대 공대 윤대희 학장도 “창의적인 고급 인적 자원을 양성할 수 있는 대학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시기가 왔다”며 “연간 8만명인 공과대학 졸업생 정원을 줄이고 고급 엔지니어와 기업 경영자, 법조인 등 다양한 분야의 리더를 양성하는 방향으로 대학이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 전문가는 “기업도 대학에 건물을 기부하는 등 외형적 과시에 치우치기보다는 교육과정 혁신에 적극 가담하고 산·학·연 프로젝트 과제를 대폭 늘리는 등 대학 교육 혁신에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

◆정부정책 어떤 것이 있나

한국의 인력수급 불균형 문제를 처음 지적한 것은 지난 1990년 IMF보고서(한국경제연차협의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는 ‘높은 임금인상과 인력수급 불균형으로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둔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역대 정부는 인력수급 불균형이 국가 경쟁력 확보에 걸림돌이 된다고 인식하고 종합 대책을 내놓곤 했다. 문제는 이 같은 대책이 10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역시 ‘인력 불균형’ 문제는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고 또다시 대학교육개혁과 불균형 해소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과연 이번에는 데스밸리의 탈출이 가능해질 것인가.

 ◇변화의 핵폭탄, 산학협력 중심대학·누리사업=정부가 추진하는 ‘산학협력 중심대학’ 선정사업과 ‘누리 사업’은 산학협력을 강화하고 대학의 변화를 이끌 핵폭탄과 같은 사업이다. 과거에는 대형 정부 프로젝트라도 대학간에 적당한 ‘나눠먹기’식 배분으로 차별이 없었지만 이번 사업은 한 대학에 최소 50억원에서 70억원까지 지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서 차별이 불가피하다.

 산학협력중심대학 사업은 교육인적자원부·산업자원부가 공동으로 향후 5년 동안 2000억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경북대·부산대·한양대 등 산학협력중심대학들은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과 연계해 대학의 교육 및 연구개발 기능을 산학협력체제로 개편하고 공과대학을 중심으로 특성화학과 육성, 계약형 학과제 등을 도입할 예정이다. 또 지역별 전략산업 관련 학부(학과)를 집중 육성하고 교과과정을 이론과 학문중심에서 산학협력방식으로의 전환이 의무화된다. 이를 위해 대학 학칙(규정)까지 제·개정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사업으로 산학협력 모델이 정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누리 사업)은 교육부가 지방대학을 육성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부문을 집중지원하는 사업으로 지역 내 산업과 대학을 긴밀하게 연결하기 위한 정책이다. 이 사업 시작으로 벌써 지방대학 간에는 대학내 학과 간 연계 협력뿐만 아니라 권역별 대학 간 교류협력이 활발해 지고 있으며, 특성화를 위한 학과통폐합과 대학 간 장벽도 허물어질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방대학들은 신입생 정원을 줄이는 등 몸집 줄이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기술인력지도 제정=내년부터 본격 실시될 국가 기술인력지도는 지역 산업계의 인력수요와 이공계 졸업생 현황을 매년 초 샘플링 조사 등을 거친 후 짝짓기를 통해 수요와 공급량을 예측하는 것으로 세계 최초로 처음 시도되는 인력수급 예측시스템이다.

 정부는 이 시스템을 활용, 특정 권역별 웹페이지를 구축해 산업체 수요 및 연도별 졸업생 현황 등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함으로써 업체는 물론, 재학생도 취업을 고려한 전공 선택에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특히 수요와 공급의 격차가 매우 큰 지역은 조기경보를 발동한 후 기능대학을 통해 기술인력 양성 및 공급을, 중장기적으로는 종합대학 등의 인력공급 확대를 요청할 수 있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

 

◆미국과 일본 이렇게 탈출했다

 미국은 20년 전, 일본은 10년 전부터 대학과 기업의 병목현상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정부가 앞장서서 대학 개혁에 나서며 데스밸리 탈출에 공을 들였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앞장서 200여 개 연구중심 대학을 중심으로 과학기술분야 박사의 90% 이상을 배출하도록 했으며 정부 연구비 지원 총액의 90% 이상을 지원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보다 대학교육개혁이 더 절실했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지난 ‘잃어버린 10년’을 제조업 고부가가치화로 탈출했지만 미국 수준의 혁신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오직 ‘인재양성’ 밖에 없다고 보고 대학에 많은 예산을 투자, 개혁에 앞장서고 있다. 때문에 국공립대학 통폐합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미국의 10% 수준인 대학벤처를 양산하기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데스밸리 탈출을 위한 미국과 일본의 공통점은 △교육개혁 프로그램에서 탁월성을 추구하는 정책으로 전환 △대학 커리큘럼 조정 △이공계 대학생의 현장실습강화 △교수채용 및 평가방법 개선 노력 △이공계 대학의 특성화 시도 △산·학·연 교류 형태의 학위 과정 운영에 총력을 기울이는 등 대학 교육의 대혁신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영국의 경우 20여개 업종별로 ‘산업별 협의회’를 구성해 산업별 교육 훈련 수요를 분석하고 종합적인 인적자원 개발계획을 수립해 데스밸리 탈출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