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시 판문군 평화리 근처 경의선 봉동역. 개성산업단지의 주소다.
북방 한계선에서 북서쪽으로 4㎞ 떨어져 있어 남측으로부터 판문점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현재 개성산업단지(개성공단) 조성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남과 북 관계자들 모두 반드시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공정을 진행하고 있다.
개성공단 사업이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과거 과거 남북 교류협력사업과 개성공단 조성사업은 의미가 다르다.
남측은 한국 제조업의 공동화와 중국행 엑소더스를 개성공단의 성공으로 막아보겠다 의도로 개성공단을 바라보고 있다. 북측은 나진·선봉지구가 실패하고 신의주 특구 구상이 어려워짐에 따라 국제사회에 개성공단을 통해 경제 도약의 주춧돌로 삼는 한편 개혁개방의 의지를 세계에 드러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다.
◇개성공단, 가장 확실한 윈윈전략=개성공단이 성공하면 남북한 경제 및 남북관계에는 적지않은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남한기업으로서는 개성공단이 생산거점으로 기능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이점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남한 기업의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배후 생산기지를 얻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한 신발, 섬유 등 노동집약형 경공업을 유치해 남한 내 산업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다. 또한 저렴한 북한 노동력을 사용, 국제 경쟁력을 갖춘 상품을 생산해 중국과 러시아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 개성공단에 건설되는 인프라 건설이 통일 후 북한 지역 투자를 앞당기는 효과를 가지게 돼 향후 통일비용을 절약하자는 의미도 찾을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예측은 오히려 쉽다. 남북을 잇는 수송·통신 연계 체제가 확보되고 이를 유지·관리하기 위한 접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현재 개성공단 조성의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는 전기공급의 문제와 용수 문제 등은 해결되면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이는 향후 제2, 제 3의 개성공단은 물론 금강산·평양지역 협력 등을 포함한 남북 협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리란 전망이다.
한편, 북한당국으로서도 무엇보다 막대한 규모의 실물자산을 무상으로 유치할 수 있고 고용증대 를 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생산물품 수출에 따른 국제거래의 신인도 제고 △해외시장에서의 이미지 개선 △대외투자환경의 개선 등의 유무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지난 6월 개성공단의 첫 삽이 뜨고 1차로 입주할 15개 업체가 선정되기까지는 개성공단은 온통 장밋빛이었다. 언론에는 개성공단 입주 예정 업체들이 ‘부푼 기대속 잰걸음’이란 기사를 실었으며 세계경제포럼(WEF) 인사들이 개성공단 방문을 추진하기도 할 만큼 남북 모두에게 경제 재도약의 희망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할 기업들이 ‘바세나르체제’, 즉 전략물자통제체제에 저촉될 우려가 있다는 보도 이후 상황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본지 6월 17일자 1면,3면 참조
이 때문에 일본은 한미 동맹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섣부른 보도를 내보냈으며 미국 상무부에서도 본격적인 제동을 걸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일부 업체들이 전략물자 통제체제에 저촉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정치적 해결을 앞세워 사업을 강행했고 전략물자를 다루는 산자부도 사전대비에 소홀했다. 저누뒷북치기에 급급했다.
이는 통일부 등 관련 부처와 현대아산 등이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안을 검토하고 신중히 추진하는 데 미흡했음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현재는 시범단지 입주 15개 업체 중 7개 업체에 대한 사업승인을 마치고 개성공단 입주를 앞두고 있다.
◇긴호흡 강한 걸음=전문가들은 남북 모두에 개성공단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최대한 실리를 택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황은 다르지만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 중국과 베트남은 외자유치를 위해 각 지역 공무원에 인센티브를 부여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체제 붕괴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현대상선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임금 등 비용 경쟁력 측면에서 중국과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는 상태지만 개성공단은 중국과 대등한 경쟁이 가능하다”며 “만약 개성공단이 중국의 푸동이나 쑤저우처럼 성공한다면 한국의 부산항이나 인천항이 옛 명성을 되찾고 동북아 허브 구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특히 쑤저우 공업원구 등 중국의 경제특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쑤저우 공업원구는 10년전인 지난 1994년 중국과 싱가포르가 35:65의 비율로 자본을 대 시작해 선례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관계자는 “쑤저우 공업원구도 초기에는 서방에 믿음을 주지 못해 서방 자본의 외면을 받았다”며 “개성공단이 서방 자본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개성공단 사업의 성공 여부는 외국 자본에 달려있으며 이는 북핵문제의 해결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정부 당국이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신의주 특구 어떻게 됐나?
지난 6일 북한 신의주 경제특구 행정장관으로 유력한 샤르샹(沙日香)씨가 내한했다. 부산 태생인 그는 표면상으로 ‘친지방문’으로 방한했다고 했지만 방한 기간 내내 금융권 및 재계 인사와 활발한 물밑 접촉을 벌여 신의주 행정장관 내정설을 뒷받침했다.
전문가들은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은 아직 양빈(楊斌)이 맡고 있지만 구속 여파로 신뢰를 잃어 미국 대선이 끝나면 행정장관이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샤르샹 씨의 내한도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행정장관에 내정됐다는 언질을 북한 측으로부터 받고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는 방한 내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나를 장관으로 임명해 주면 열정을 갖고 열심히 하고 싶다”며 장관에 대한 의욕을 강하게 드러낸 바 있다. 샤씨는 지난해 4월 북측에 특구개발 계획안을 제출했고 북측의 임명 통보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라고 전해진다.
샤씨가 등장하기 전까지 신의주 경제특구는 거의 물건너간 것처럼 보였다. 지난 2002년 9월 북한은 신의주의 특구 지정을 전격 발표하고 중국 제 2의 갑부 양빈을 특구 장관에 임명 일약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탈세 등을 이유로 양빈을 전격 연행, 신의주 특구는 시작도 하기 전에 제동이 걸렸고,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중국의 동북 3성 진흥계획과 맞물려 악화 됐다.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중, 대규모 원조를 얻어내는 등 관계 회복의 시도가 없었다면 북한은 고립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정도다. 당시 양빈은 모든 외국인에게 신의주 무비자 왕래를 허용하겠다고 했다가 철회하는 등 북한 실정과는 거리가 있는 의욕을 보이기도 했다.
신의주 경제특구 구상이 본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특구 장관을 누구로 임명하느냐가 아니라 북미관계의 개선 여부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이는 북한의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선결 조건으로 신의주뿐만 아니라 개성공단의 성공 여부도 결국 북미관계 개선에 달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로에 선 북한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인플레와 전력난 등 현안 해결이 필수적이지만 미국과 일본 등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북한이 신의주, 평양, 개성 등 군사, 문화, 경제의 요지를 개방하겠다고 표방했지만 북핵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단 한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이미 개혁개방 정책을 시행하고 남측과 교류 협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으나 미국의 반대로 못하고 있다”라며 “북과 남만이라도 잘 해보자”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미국의 존재가 남북 교류 협력의 가장 큰 관건임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신의주-나주·선봉-개성-금강산 등 4각 개방에 대한 계획을 버리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은 순조롭진 않지만 미래를 향해 나가고 있으며 그 거대한 산맥처럼 우여곡절을 겪은 금강산 관광사업은 매달 사상 최고의 관광객 수와 영업이익을 갱신하며 관광 명소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샤르샹씨의 갑작스런 등장이 말하듯 신의주 경제특구도 완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북한의 경제 개혁개방 및 한국과의 공조 가능성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이에 대해 김연철 통일부 장관정책보좌관은 “현재 상황은 개혁의 진행과정으로 봐야 하고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라며 “그러나 국내 자원 동원을 통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미국과 일본과의 대외관계 개선에 한국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손재권기자@전자신문, gj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