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2주년-성장의 조건22]사회·문화 분야-`디지털+∝`가 필요하다

 회사원 A씨는 오랜만에 스키장을 찾았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몸은 전혀 춥지 않다. A씨가 착용한 스마트웨어의 체온조절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 스노 보드를 타고 슬로프를 신나게 미끄러져 내려오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고글 하단부에 비친 전화번호를 확인한 결과, 1주일 이상 기다려 온 주요 바이어의 전화다. A씨는 속도를 늦추면서 왼팔에 있는 통화 버튼을 누르고 헤드셋을 이용해 통화를 한다. 바이어가 선적 가능한 날짜와 가격을 알려달라고 한다. A씨는 즉각 소매에 부착된 키보드로 물품 재고를 확인하고 운송 스케줄과 환율을 점검한다. 무선인터넷을 할 수 있는 웨어러블 컴퓨터를 입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바이어와 통화를 끝낸 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른쪽 소매에 있는 재생버튼을 누르자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 나온다.

 컴퓨터가 인간의 삶에 들어온 것은 불과 60년 정도다. 이 짧은 기간 컴퓨터는 사람들의 일터와 주거 공간에 깊숙이 침투해 우리의 생활패턴과 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런 컴퓨터가 이제는 사물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정보시대에는 말 그대로 디지털화된 정보가 넘쳐난다. 인터넷에서 클릭만 하면 어떤 분야에서건 세계 최고의 석학과 기술자들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디지털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지녔다. 아날로그 자료를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진다. 디지털만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한 디지털 정보가 아니라 내 개인과 내 가족, 우리집에 딱 맞는 신선한 디지털 정보가 필요해진다. 이것이 바로 미래의 IT(정보기술)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생활·문화 혁명의 본질이다. 웰빙, e스포츠, e러닝과 같은 우리 생활·문화의 신조류가 차세대 IT시장을 이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래 IT서비스는 결코 정보 그 자체만의 서비스가 아니다. 상황에 따라 필요한 행위까지도 사물이나 컴퓨터가 지능적으로 수행하고 사용자 욕구에 가장 근접한 신선한 정보를 제공하는 콘시어지(concierge)형 서비스가 주류를 이룬다.

실제로 영화관이나 슈퍼마켓에서는 현찰이나 신용카드 없이 ‘이동전화 지갑’을 통해 은행과 교신, 대금을 결제할 수 있다. 언론사의 해외 특파원은 시신경에 초소형 카메라를, 어깨에 초소형 이동전화를 이식해 취재원이 보고 말하는 그대로를 즉각 보도할 수 있게 된다.

휴대폰을 아직도 음성통화수단으로만 여긴다면 하루빨리 생각을 바꾸는 것이 좋다. 신세대들은 이미 휴대폰으로 텔레매틱스, 원격제어, 위치추적서비스(LBS), 모바일 방송, 영상전화 등 첨단 서비스를 만끽하고 있다. 휴대폰은 쇼핑·결제·금융거래 등 이른바 ‘모바일 커머스’의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가정용 비디오게임기도 더 이상 게임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게임기를 통해 인터넷 항해가 가능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쇼핑도 즐긴다. 물론 전자결제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기업의 마케팅 전략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장은 이미 소비자의 신상이나 소득, 직업과 같은 죽어 있는 정보가 아니라 위치, 건강, 학습 욕구 등 상황인식을 통해 획득한 신선한 정보를 토대로 한 새로운 마케팅을 요구한다. 휴대폰이 배가 고픈 주인에게 직접 맛있는 식당을 추천하는 날도 머지않았다.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도 생산이 아니라 정보의 가공과 유통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20세기초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가 석유의 유통망인 철도를 지배해 시장을 독점할 수 있었듯이 미래에는 인간 생활 속의 정보 유통망을 장악함으로써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

미래 정보기술(IT)은 우리에게 언제, 어디서나의 수준을 뛰어넘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한 기술 발전의 차원을 넘어 인류 문명사 전체를 바꾸는 혁명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첨단기술로 무엇을 만들고 어떤 문화를 일궈낼 것인지부터 결정해야 한다. 결국, 미래에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창조적인 사고를 통한 새로운 생활·문화 창조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주상돈기자@전자신문, sdjoo@

◆유비쿼터스

미국 오리건주 밀워키의 한적한 숲 속에 자리 잡은 첨단 휴양 시설 ‘엘리트 케어’. 이곳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작은 위치추적 배지를 달고 다닌다. 엘리트 케어 곳곳에 심어진 센서들은 노인의 배지를 계속 추적하며 특정 지역을 이탈하거나 의식상실과 같은 이상 증세가 나타나면 곧바로 간호사에게 알린다.

숙소 침대에는 몸무게 측정 센서가 내장돼 있다. 이 센서는 몸무게 변화뿐 아니라 수면중 몸부림까지도 감지해 보고한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손잡이에 장착된 센서는 혈압과 체온 상태를 체크한다. 변기를 통해서는 당뇨 등을 점검한다. 체크 결과는 곧바로 주치의의 단말기에 전달되고 주치의는 원격검진을 받아볼 것을 제안한다.

그래서 이곳 ‘엘리트 케어’ 노인들은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며 매일 자유롭게 생활하면 된다. 나머지는 칩과 센서, 그리고 네트워크와 컴퓨터가 알아서 처리해준다. 이처럼 컴퓨터로 무장한 사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직접 행동하는 것, 이것이 미래 정보기술(IT)이 가져다줄 생활·문화 혁명의 진수다.

이 같은 생활·문화 혁명이 가능한 것은 사람과 컴퓨터, 그리고 사물이 하나가 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덕분이다.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컵·화분·자동차·벽·교실 등은 물론이고 옷·안경·신발·시계 등 모든 사물에 다양한 기능을 갖는 컴퓨터 장치가 심어지고 이들이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그 사이를 정보가 자유롭게 흘러다니고 컴퓨터는 스스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이미 충전기가 부착된 전동 칫솔이 낯설지 않듯이 유비쿼터스 시대에는 무선인터넷 칩을 장착한 스마트 칫솔도 자연스러워진다. 스마트 칫솔은 충치를 발견하자마자 의사에게 연락하고 의사는 스마트 칫솔을 통해 환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치료한다. 말 그대로 사람과 컴퓨터, 그리고 사물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세상이 오면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도 서로 정보를 주고 받는다. 피자를 조리하는 스마트 전자레인지는 냉장고에 요리 재료가 충분한지를 물어본 후 냉동된 요리 재료를 녹여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돼지고기에 컴퓨터 칩이 심어지고 이 칩이 스스로 전자레인지의 온도와 시간을 조절해 최적의 상태로 요리를 한다. 사물 스스로 생각하고 직접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비쿼터스 기술이 가져올 생활혁명의 진수다.

물건을 구입하고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주부들은 쇼핑에 앞서 스마트 냉장고가 자신의 단말기에 전달한 부족한 식료품 목록과 필요한 양부터 먼저 파악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언어학습용 장난감 로봇도 내부에 장착된 음성인식 부품이 고장 났다는 정보를 보낸다.

모든 정보가 자유롭게 흘러다니는 유비쿼터스화가 진전될수록 더 많은 종류의 서비스와 산업이 등장한다. 사물과 환경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추적하는 특정 용도의 센서산업이나 특정 사물을 연결하는 센서네트워크 산업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수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는 곧 새로운 가치 창조의 기회를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IT가 모든 산업영역으로 확장되고 유비쿼터스를 기반으로 한 수많은 정보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미래의 IT산업 지도도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다.

세계 IT기업 대부분이 유비쿼터스 컴퓨팅을 미래 10년간의 새로운 비즈니스 목표로 삼아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이 같은 유비쿼터스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문명사적 혁명의 중심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은 유비쿼터스 패러다임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높은 정보화 수준이나 대륙과의 연계성, 그리고 국민적 응집력 등은 유비쿼터스화에 필수적인 환경이다. 고급 인적자원과 고밀도 도시국가, 다세대 주택 국가로서의 요소들도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현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유비쿼터스화에 성공한다면 전세계 국가로부터 성공모델 사이트로 주목받고 이로 인해 파생될 세계시장 지배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국내 기업의 입장에서도 유비쿼터스화를 통해 ‘향후 10년간 무얼 먹고 살 것인가’의 고민을 한순간에 해결할 수 있다. 주상돈기자@전자신문, sd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