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아파트·웰빙 금융상품·웰빙 와인….’
우리 생활 전반에 ‘웰빙’이 하나의 문화코드로 자리잡으면서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Well-being) 열풍이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산업계에 새로운 돌파구로 부상하고 있다. 스트레스와 바쁜 일상생활을 벗어나 여유롭고 풍요로운 생활을 추구하는 ‘웰빙족’이 강력한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들이 지갑을 쉽게 열지 않고 있으나, 웰빙족을 겨냥한 웰빙상품은 불황을 비껴가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다이어트와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올리브유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음료시장에도 웰빙바람이 불면서 몸에 좋다고 알려진 유산균 발효유, 이른바 기능성 요구르트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특히 올리브유는 대표적인 웰빙식품으로 각광받으면서 인기가 치솟아 올 상반기에만 380억원 어치가 판매됐다.
◇웰빙, 마케팅포인트=웰빙 바람은 일반인들의 일상 생활에도 적잖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그동안 일부 마니아를 중심으로 형성됐던 와인 동호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주류시장은 와인의 대중화 시대를 선언했다. 최근에는 반신욕을 위해 욕실을 새롭게 꾸미는 일반인, 휴양림·온천을 찾는 젊은이들도 부쩍 늘고 있다.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상가에는 최첨단 기기를 갖춘 대형 헬스클럽이 빠지지 않고 들어서고 있고, 각 방송사의 창업 컨설팅 프로그램에서는 웰빙이 소자본 창업자들에게 중요한 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등장한 웰빙은 이제 마케팅의 핵심개념으로 우뚝 서 있다. ‘복지·행복·안녕’으로 요약되는 웰빙은 몇 해 전 부르주아의 물질적 풍요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는 개념인 ‘보보스(bobos)’에 이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로 떠올랐다.
가전사들은 웰빙시대에 맞춰 건강과 실속을 최우선으로 하는 소비자를 위한 상품 개발에 골몰하고 있으며 생활가전 및 소형가전 업체들은 웰빙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산소발생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청풍이 고객평가단을 모집하고 타깃 마케팅에 나선 데 이어 웅진코웨이와 크린에어테크놀로지가 새로이 산소발생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소형가전 업체인 오성사는 아예 웰빙형 가전업체로 사업 방향을 전환했다. 오성사는 최근 공기청정기·건강 발효 기능이 지원되는 소형 가전 ‘웰빙 쿠커’를 출시한 데 이어 이달 안에 살균 가습과 건강 보조 기능이 부가된 ‘비타플러스 가습기’를 출시하고 공격 경영에 나서기로 했다.
웅진코웨이개발은 ‘웰빙’ 바람을 캠퍼스에도 정착시켜 향후 시장확대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의도에서 지난 8일 서울여대 도서관 1층에 54평 크기의 ‘북카페 룰루존(LooLoo Zone)’을 개관했다.
각 기업체 최고경영자(CEO)들도 감성경영을 내세우면서 직원들의 기를 살릴 수 있는 다양한 복지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계에는 공장시설이나 근무환경이 종업원들의 만족도와 기업의 생산성에 직결된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웰빙 공장·웰빙 사무실 꾸미기도 한창이다.
삼성전자, 웅진코웨이개발 등 가전사들이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한 데 이어 공기청정기, 가습기를 사무실에 속속 도입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웰빙 붐의 사회 문화적인 의미와 함께 향후 국내 산업계에 미칠 파장에 주목한다. 웰빙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분야에서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웰빙제품 대 비(Non)웰빙제품’, ‘웰빙회사 대 비웰빙회사’의 대결구도가 산업 전 분야로 확산되면서 웰빙이 제품의 수명은 물론 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기준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대중성 과시=사회적인 계급과 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누구나 웰빙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특징도 간과해선 안 될 대목이다.
웰빙 소비 트렌드는 30대 이상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명품소비, 10∼20대들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상품을 구입하는 정체성(Identity) 소비와 달리 나이와 연령, 계층을 떠나 확산되는 강력한 대중성에 기반한다.
중산층 이상의 명품족은 물론, 합리성보다는 감성적 만족을 주된 제품 선택 기준으로 삼는 감성(Emotional) 소비층, 개성 표현이 강하고 또래 소비 문화에 뒤지는 것을 터부시하는 10∼20대 신세대들에게도 웰빙 상품과 웰빙서비스는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대의 신세대들은 산뜻한 트레이닝 패션으로 웰빙을 표현할 수 있고, 주부들은 건강식 먹거리를 고르면서 가족 건강의 수호천사로서 웰빙족임에 만족할 것이다.
값 비싼 스포츠 클럽에서 최고급 스파를 즐기는 프리미엄 소비의 주체가 있을 것이고, 저녁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가볍게 뛰는 가족들 역시 전형적인 웰빙족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
주5일 근무제, 레저에 대한 관심 고조 및 웰빙 바람이 시너지 작용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에 이로운 것, 해로운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는 것도 웰빙이 한국 경제를 이끌어 나갈 ‘보이지 않은 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고령화의 전개, 환경의 위협에 따른 건강에 대한 관심은 웰빙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주요 배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각종 성인병의 만연, 전세계를 일시에 초식 동물 사회로 몰고 간 광우병, 조류 독감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질병(Global Epidemics) 등은 앞으로도 우리에게 건강하고 건전한 소비를 하게 만들 것이다.
◇기업의 흥망까지 좌우=웰빙족들의 선택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실제로 8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일본의 모 우유회사가 지난 2000년 7월 변질된 저지방 우유 공급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았다. 2차 대전 이후 최대 규모인 13만 명의 식중독 환자를 발생시킨 이 사건은 결국 소비자들의 신뢰 추락이 회사에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줬기 때문이다.
신선한 우유에 대한 웰빙 소비자들의 니즈에 경쟁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품질 관리를 무시한 결과였다. 이 사건은 웰빙족들의 기호에 맞은 제품을 생산하지 못할 경우, 시장에서 퇴출될 수 밖에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기업에게는 웰빙 열풍을 어떻게 마케팅 기법과 접목시켜 나가야 하느냐는 숙제가 던져지고 있다. 대표적인 웰빙 가전으로 등장한 공기청정기는 황사 바람을 타고 급격한 시장성장세를 구가했다. 웰빙 바람이 아니었다면 공기청정기 생산업체들은 ‘맑은 공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식의 통상적이고 개별적인 마케팅 메시지를 제시하는 데 그쳤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 오염의 심화, 글로벌 질병의 빈번한 발생, 고령화 사회의 진입 등 사회 변화는 시간이 갈수록 실질적인 소비 니즈로서 웰빙에 힘을 실어 줄 것”이라며 “이에 따라 향후 전개될 웰빙의 진화 모습에서 기업들이 어떤 마케팅 기법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갈수록 중요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석기자@전자신문, stone201@
◆대표적 웰빙가전 무엇이 있다
가전시장에도 웰빙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대표적인 웰빙 가전으로 떠오른 공기청정기는 올 초 황사현상, 조류독감 등 환경적 요인과 새집증후군의 영향으로 내수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를 기록했다.
주방가전 제품의 경우 주부들의 편의를 돕고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방향으로 제품 개발이 전환되는 추세다. 실제로 주부의 동선을 고려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부엌일을 할 수 있는 빌트인 주방가전 라인업이 늘고 있다. 기업들은 제품설계시 황토의 원적외선 기능을 적용하거나 항균 기능을 갖춘 은 나노 기술을 접목하는 등 건강을 감안한 제품까지 잇따라 개발, 웰빙 가전시대를 열고 있다.
주방가전 전문업체 쿠스한트는 전시장에서 냉장고, 식기세척기, 가스오븐레인지 등의 빌트인 가전 제품을 소비자들이 선택·구입할 수 있도록 전시·판매하고 있다.
LG전자의 공기청정 스페이스 디오스 냉장고는 기존 양문형 냉장고에 공기청정 기능을 더했다. 주방에서 나오는 요리냄새 등을 효과적으로 없애주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준다.
동양매직의 황토 오븐 레인지는 황토에서 나오는 원적외선 기술을 응용한 가스오븐레인지. 황토의 원적외선으로 요리를 맛있게 익힐 수 있고 요리 후 오븐을 청소한 뒤에도 항균, 탈취효과가 있다.
기존 제품보다 현저히 소음을 줄인 ‘저소음 가전’이 웰빙 시대를 맞아 새롭게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일렉트로룩스코리아 박갑정 사장은 “최근 웰빙 열풍과 함께 소비자들의 제품에 대한 선택기준이 더욱 까다로워짐에 따라 가전업계는 기본적인 성능 외에 소음, 무게와 같은 부가적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일렉트로룩스코리아는 자체 소비자 조사를 통해 기존 진공청소기의 소음을 8분의 1로 낮춘 ‘울트라 사일런서(Ultra Silencer)’를 통해 웰빙족 시장을 파고 들고 있다.
수면중에 사용하는 공기청정기 업체들도 소음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캐리어코리아는 소음을 14dB까지 낮춘 도시바 공기청정기를 선보였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20dB)보다도 조용해 거의 소음을 느낄 수 없는 수준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샤프전자도 정음 모드로 작동시킬 때 소음이 16dB인 ‘살균이온 공기청정기’를 선보이고 있다.
LG전자의 ‘녹색기술 디오스 냉장고’도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 이 제품은 이제까지 가정용 냉장고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돼 소음을 ‘리니어 압축기 기술’을 도입해 30% 이상 줄인 것이 특징이다. 김원석기자@전자신문, ston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