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연구단지 경계선이 끝나는 즈음 대덕밸리 인터체인지를 지나 대전시 유성구 송강동쪽으로 200m 가량 직진하면 도로 우측 편으로 대덕테크노밸리 건설 현장이 한 눈에 들어 온다.
대덕테크노밸리는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첨단 산업 중심의 자족형 복합 도시로 정부가 올 연말 지정 예정인 대덕R&D특구의 중심 축이기도 하다.
따가운 초가을 햇살 아래로 수십개의 거대한 아파트 타워 크레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시로 오고가는 레미콘 차량과 지게차들로 도로는 흙먼지가 된다.
가는 길을 재촉해 대덕테크노밸리의 성장 축인 첨단 산업단지를 찾는다. 송강동과 신탄진의 경계선인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 단지로 들어가는 이정표를 찾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테크노밸리임을 알려주는 이정표 하나 없다. 몇 번이나 지나쳤던 도로를 오고간 끝에 조금 전에 지나친 다리 옆 조그만 도로로 방향을 튼다.
휴대폰으로 수 차례 확인을 거친 후에야 IT·BT·NT 등 국내 최첨단 산업 관련 기업체들과 관련 지원 기관이 포진한 대덕테크노밸리에 닿을 수 있었다.
외부에서 진입하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단지 내부는 이미 구획별 정리를 끝내고 도로 조성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밖에서 찾기 힘들었던 도로 이정표도 단지 내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일부 건물들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분양을 마친 대다수의 부지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나대지 형태로 덩그러니 놓여 있다.
대덕테크노밸리의 사업 주체인 한화가 건설하는 IT 전용벤처빌딩 신축 공사장에는 흙먼지가 가득하다.
단지를 한 바퀴 돌아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광촉매 전문 기업으로 최근 국내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이앤비코리아.
윤기동 이사가 반갑게 기자를 맞는다.
“R&D 특구 말은 좋지요. 하지만 말 뿐인 특구가 돼서는 안 되겠지요.”
윤 이사는 향후 특구 지정이 대덕밸리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그는 “벤처기업들은 기술은 있어도 인력과 시설, 예산이 없어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연구 성과의 상업화에 초점을 맞춘 이상 기업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 제대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R&D를 위한 R&D가 돼서는 안된다”며 “기업 지원을 위한 공공성을 갖춘 연구센터를 설립,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만난 김현용 사장도 “지금 대덕밸리 기업들은 특구 지정에 별 관심이 없다”며 “기업 사정이 극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특구가 된다고 크게 바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현재 대덕밸리에는 구조조정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많은데다 일부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도움은 주지 않더라도 귀찮게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향후 특구 지정에 따른 정부의 간섭을 경계했다.
1시간 여 넘게 대화를 한 후 자리를 옮긴 곳은 대전시첨단산업진흥재단 소프트웨어사업단. 이앤비코리아 옆 블록에 위치한 대덕밸리테크노마트 3층에 둥지를 틀고 있다.
“예산만 제대로 반영된다면 특구는 어떻게든지 제 모습을 갖춰나가게 될 겁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렵지 않을까요.”
조태용 소프트웨어사업단장은 “특구가 지정되더라도 각종 사업을 이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특별 예산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러나 특별 기금 조성이 백지화된 현 상황에서는 단순히 연구단지 특별법 확대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고 허울뿐인 정부의 입법안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실체 없이 특구만 조성한다면 큰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계의 목소리도 낮추지 않았다.
그는 또 “특구 사업을 이끌고 가기 위해 정부가 ‘조삼모사’식으로 대덕밸리에 있는 기구들을 통합한다면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며 “연구소와 기업, 대학 등 대덕밸리 주체들이 함께 네트워킹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조 단장과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사무실에는 채경환 비즈넷21 사장과 김풍민 이머시스 사장이 잇따라 들어와 자연스러운 토론 자리가 마련됐다.
“표만 의식하는 정치인들 때문에 자칫 이번 R&D 특구 추진도 정치 논리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있습니다.”
최근 광주와 대구 지역 국회의원들의 특구 확대 지정 발언과 관련해 채경환 비즈넷 21사장은 “이들의 주장이 특구 사업 자체를 망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이럴 때 일수록 대전시의 조정 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대전시의 적극적인 여론 형성 움직임을 주문했다.
미니 토론회가 열리는 동안 좀처럼 입을 열지 않던 김풍민 이머시스 사장은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별로 할 말이 없다”며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음 날 기자단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만난 김충섭 한국화학연구소 원장도 특구 추진에 따른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김 원장은 “정부출연연구기관 때문에 만들어진 대덕R&D특구법이 당초 취지와 달리 왜곡·변질되고 있다”며 “특구는 분명 연구원이 중심이 돼야 하는데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원장은 “현재 벤처기업이나 학교에서 저마다 특별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며 “상업화를 운운하면서 특구 추진의 핵심을 왜곡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소의 연구성과가 잘 나오게 되면 상업화도 자연적으로 잘 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며 “기업들이 제시하고 있는 각종 벤처 펀드나 세제 지원 보다는 연구소들에 대한 지원이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최근 특구 지정 반대 의견을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과 민노당에 대해서도 “대덕 R&D 특구를 나눠먹기 식으로 추진해서는 곤란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런가 하면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합 노조인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역시 연구성과물의 상업화에 초점을 맞춘 R&D 특구 특별법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여전히 견지하고 있다.
이성우 과기노조 위원장은 “특구 지정이 자칫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국가의 기초 연구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강한 어조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위원장은 “한 차례 대포성 정책이 아닌 실제로 국가 및 지역 발전에 유용한 특구법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며 우수 인력 유치 및 연구 활동을 극대화하는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 연말로 예정된 대덕R&D특구 지정을 둘러싸고 대덕밸리는 특구 혁신 주체간 이견으로 한 차례 호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
◆인터뷰-염홍철 대전시장
“한국을 대표하는 연구 기능과 생산 기능이 결합된 세계적인 혁신 클러스터로 육성해 나가겠습니다.”
염홍철 대전시장(60)은 정부의 대덕R&D 특구 지정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올해 안에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노력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염 시장은 “대덕R&D 특구가 정부의 정책 과제로 정식 채택되기까지에는 지역 연구소와 연구원, 관련 전문가들과 기업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제 정부의 최종안이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만큼 끝까지 종합 육성 계획을 내실있게 준비 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정부가 입법 예고한 ‘대덕R&D 특구법’에 핵심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여론과 관련해서는 “현재 시점에서는 특별법의 마무리와 국회 통과가 급선무”라며 “특별법 통과 후 시행령 제정과 종합육성 계획 수립 과정에서 특구 성공을 위한 주요 사업들이 반영될 수 있도록 특구내 혁신 주체들의 지혜를 모아 중앙에 요청,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대구·광주 지역 의원들의 특구 지정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합리적인 주장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염 시장은 “대덕R&D 특구는 정부 차원의 국가혁신체계(NIS)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국책사업”이라며 ”대전이 정부출연연구원과 벤처기업들이 집중돼 있는 특성을 반영해 R&D 특구로 추진하려는 계획인데 반해 그렇지 않은 대구와 광주가 동일한 R&D 특구로 추진해 달라는 것은 분명 합리적인 주장이 아니다”고 못 박았다.
염 시장은 특히 R&D 특구가 대전이어야만 하는 당위성에 대해 말을 이어갔다.
그는 R&D 특구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R&D 인프라가 구축돼 있고 연구 개발 성과의 축적과 성공 경험이 있는 곳이어야만 추진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펼쳤다.
만약 대구와 광주에서 특구 지정을 고집한다면 새로운 R&D 인프라 구축에 따른 중복 투자우려는 물론 시기적으로도 20년 이상 소요돼 결과적으로 비효율적인 사업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측면에서 지난 30년간 연구 성과가 축적돼 있고 유능한 연구 인력과 혁신 생태계가 조성돼 있는 대덕연구단지가 R&D 특구의 최적지가 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염 시장은 대덕밸리 내부에서 일고 있는 일부 R&D 특구 반대 여론에 대해서는 “특별법에 도입하는 제도들이 경제 특구에 반영돼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며 “R&D 특구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 꼭 필요한 제도인 만큼 이견에 대해서는 민노당과 과기노조간 상호 협의를 통해 조정하고 이해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대전 시민과 혁신 주체간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작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22일 대전공청회를 열어 연구원과 기업인들이 참여해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내달 16일에는 대덕R&D특구 성공을 위한 대전시민 걷기 대회 등을 통해 시민의 관심과 역량을 결집해 나갈 방침이다.
염 시장은 향후 특구 조성시 “우선, 관련 주체별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초기에 성공적인 기틀을 마련해 나갈 수 있도록 해 나가겠다”며 “IT·BT·NT·RT·ET 등 5개 핵심 분야의 전문 클러스터를 육성, R&D 역량을 고도화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술상업화센터 설치 등 R&D상업화를 위한 강력한 추진 체계 구축과 지원 사업을 통해 연구 기능과 생산 기능이 조화를 이뤄나가도록 뒷받침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대전=신선미기자@전자신문, sm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