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생산의 3대 요소는 토지·노동·자본이 아니다. 날로 거세지는 무한경쟁시대를 맞은 기업들은 이제 ‘지식’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효과를 얻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벤처들에 ‘4번째 생산요소’로 불리는 지식은 현재 전통적인 3대 생산요소를 앞서는 가장 가치 있는 요소이자 기업의 최고 경쟁무기인 기술로 체화할 수 있는 최대 무기다. 2000년 이후 닷컴거품의 붕괴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벤처신화의 잔해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꺼지지 않는 기술로 무장한 중견기업과 벤처기업들이 용틀임을 하고 있다.
◇중견기업, 진가 발휘=굴뚝기업에서 변신한 IT기업, 그리고 대기업에서 분사한 IT기업. 이들 중견 IT기업이 21세기 지식정보사회를 맞아 갈고 닦은 기술을 바탕으로 진가를 드러내고 있다.
굴뚝기업에서 변신한 기업들은 굴뚝을 단단히 틀어막고 있다. 더는 굴뚝기업으로 심어놓았던 이미지를 부각시키지 않기 위한 조치다. 과거 이미지에서 탈피, IT기업으로 탈바꿈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겠다는 의지다.
대기업에서 독립한 IT기업은 기존에 갖고 있던 경영노하우에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을 결합,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개척에 성공을 거두며 모기업으로의 의존에서 벗어나고 있다.
중견기업들은 그동안 투자에 열의를 다해 왔다. 학계와 연구계 그리고 국내외에서 이름을 높이고 있는 IT기업에서 대거 인력을 영입하고 또한 연구개발(R&D)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비록 대기업에 비해서는 자금력이 떨어졌지만 기술개발만이 곧 성공이라는 확신하에 개발에 매진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이 실적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특히 기대만큼의 시장이 열리지 않아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혹시 신시장이 아예 열리지 않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너무 빨리 문을 두드린 것은 아닐까’하면서….
많은 기업은 조바심에 빠졌다. 특히 벤처 붐이 일시에 꺼지면서 기업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또한 고급인력들이 대거 빠져나갈 때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전개되는 듯 했다.
더욱이 국내 대기업뿐만 아니라 막대한 자금으로 무장한 해외 선진기업에 맞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성공에 대한 불안감이 매우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중도에 포기한 기업도 적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분사한 모 중견기업 대표는 “벤처 붐이 일 때까지만 해도 확신을 해 과감히 사업 필요성을 주장했다”며 “하지만 시장이 열리지 않을 때는 모기업뿐만 아니라 나를 믿고 따라준 여러 직원에게 너무 미안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다. 확신을 갖고 신시장을 개척한다는 프런티어 정신으로 돌진한 결과, 이제는 성공이라는 언덕에 다다르고 있다. 굴뚝기업 그리고 대기업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을 이들 중견기업이 달성하고 있다.
◇벤처, ‘우리도 해냈다’=‘벤처기업’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업의 위험성은 높으나 성공하면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고위험 고수익 기업’으로 규정된다.
일반적으로 경제현장에서는 ‘높은 위험성(High Risk)에 고수익(High Return)이 보장되는 사업’으로 일컬어진다.
‘위험에 내던지지 않으면(No Risk) 건질 것 없는(No Return)사업’인 벤처는 닷컴벤처 붐 시점이었던 2000년이래 거품이 빠지면서 흔히 ‘높은 위험성’만을 떠올리는 대표적 부문으로 인식됐다.
최근 우리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벤처기업에 대해 더더욱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압축성장을 통해 오랜기간 안정적 성장세를 보여온 굴뚝기업의 성과를 제친 많은 벤처기업이 경제의 축을 굴려왔음을 간과할 수 없다.
다음커뮤니케이션·안철수연구소·레인콤·휴맥스 등은 성공한 벤처로서 우리경제의 한축을 굳건히 지탱해 주고 있다.
성공모델로 등장한 벤처기업은 2002년 말 기준으로 볼 때 매출 증가율은 21.7%로 대기업(0.8%)과 중소기업(3.4%)에 비해 크게 앞서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경상이익률 역시 벤처기업은 5.1%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0.6%, 2.2%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수치는 살아남은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들은 벤처 붐을 거치면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사업전환, 특화기술로 승부, 해외진출을 모색하며 위기상황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기술혁신에 매진해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마이크로소프트·IBM 등과 같은 벤처 성공신화를 한국에서 이어가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벤처를 하나의 학문적 영역으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존 네샤임 코넬대 교수는 ‘벤처(Venture)는 말 그대로 모험(Adventure)이다’는 말로 전세계의 벤처들에 격려와 자극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 모험에서 살아남은 진정한 벤처기업들은 오늘날 우리 경제의 든든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김준배기자@전자신문, joon@etnews.co.kr
<중견·벤처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중견·벤처기업들은 개발한 기술들을 즉각 상용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발빠르게 움직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법·제도적 개선이다. 업계는 상당수 기술들이 기존 법·제도적 한계 때문에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즉 기술의 변화를 법·제도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기업들의 의욕을 꺾는 동시에 외국기업들에는 기회를 주는 셈이어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정부가 국회의 도움을 얻는 데 적극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t커머스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모 업체의 대표는 “최근 기술은 한달이 멀다하고 변화하고 있다”며 “어렵게 개발한 기술들이 법·제도적 벽에 막혀 상용화를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법·제도 개선과 함께 새로운 산업이 형성될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요구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시장규모가 작은 나라의 경우 중견·벤처기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해 기업들의 신기술 상품의 시장을 창출하는 것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언호 정책연구본부장은 “기업들이 정부에 가장 바라는 것은 자금보다는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스닥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내 중견·벤처기업의 상당수는 거래소에 등록돼 있는 기업도 있지만 대부분이 코스닥 시장에 등록돼 있거나 코스닥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 코스닥 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어 이들 중견·벤처기업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코스닥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통해 일반인들이 다시 코스닥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코스닥 등록(IPO)요건이 강화됨으로써 코스닥의 경쟁력이 어느정도 확보됐다. 정부는 이를 충분히 알리고 많은 IT 중심의 중견·벤처기업들이 이 시장을 자금확보 루트로 활용할 수 있도록 코스닥 시장을 살리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모든 기업에 해당하지 않겠지만 중견·벤처기업들이 대기업 또는 중소기업들과 협력해 윈윈할 수 있도록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21세기 무한경쟁시대에서 하나의 기업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중견·벤처기업들이 완성품에 들어가는 부품 하나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다. 이들 기업이 대기업과 손을 잡고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또는 대기업의 고급인력과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