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태그 세부 표준안 `헛바퀴`

전자태그(RFID) 분야 주파수 대역은 확정됐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술 규격 등 세부 표준안이 원점에서 맴돌면서 산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표준안 지연으로 정부가 추진중인 시범 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해 자칫 이제 막 꽃을 피우는 내수 시장은 물론 수출에도 ‘찬바람’이 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이 팽배하다.

 ◇제자리 걸음하는 기술규격 표준안=정통부는 지난 7월 가까스로 UHF RFID 대역을 확정했다. 908.5M∼914㎒까지 5.5㎒대역을 할당키로 잠정 결정한 것. 이어 곧 바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기술기준 등 세부 표준을 위해 학계·산업계·ETRI와 TTA 등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900㎒ RFID 기술 기준 제정 연구반’을 구성하고 표준화에 시동을 걸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지금쯤 대략적인 표준안의 윤곽이 나오고 다음 달경에는 이를 기술기준으로 고시해 산업계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두 차례 회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산업계와 연구기관 사이에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연구기관은 좀처럼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 산업계는 협회 등 대표 단체를 통해 ‘장외 투쟁’까지 벌이는 상황이다. 협회 최성규 전무는 “표준안 작업이 진행중이지만 서로 견해 차가 워낙 뚜렷해 마땅한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양측이 평행선을 그어 협회에서도 공청회 등을 통해 이를 공론화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라고 말했다. 표준안이 지연되면서 해당 업체에서는 수출과 기술 개발이 모두 중단된 상황이며 전산원이 발주한 RFID 프로젝트도 불가피하게 차질을 빚고 있다. 전산원은 본원 주도로 지난 달 RFID 관련 5개 분야의 시범사업을 선정했지만 기술기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확정되지 않아 차일피일 계약을 미루다가 이번 주에서야 본 계약을 할 예정이다. 전산원 김현곤 단장은 “원래 일정보다 미뤄져 전체 사업도 불가피하게 조정이 필요하게 됐다”고 밝혔다.

 ◇왜 진척 안 되나=표준과 달리 기술기준은 강제성을 띠고 있다. 표준이야 시장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기술기준은 한 번 확정되면 사실상 이를 따라야만 한다. 이 때문에 산업계에서는 사활을 걸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가장 시각 차가 뚜렷한 분야가 RFID리더 분야의 주파수 전송 방식이다. 유럽식 ‘LBT(Listen Before Talk)’와 미국식 ‘주파수 호핑(FHSS)’을 두고 산업계와 ETRI 간 ‘핑퐁’ 게임이 진행중이다. ETRI는 LBT를, 산업계는 FHSS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LBT가 주파수 대역이 좁을 때는 효율 면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아직 표준화와 상용화가 안된 기술로 세계 시장보다는 유럽 대역에 국한된 협소한 방식”이라며 “이에 반해 FHSS는 미국 등 RFID 주파수를 넓게 할당한 국가에서 이미 상용화한 기술로 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국내 산업계 입장에서는 훨씬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LBT를 고집하는 쪽은 “국내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고 경쟁 우위를 갖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기술력이 필요하다”며 “국내 RFID업계가 FHSS 방식으로 제품화한 외국 기업들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LBT가 타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루가 급하다=전문가들은 시급하게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가 다른 선진국보다 RFID 분야가 뒤떨어진 상황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 시급한데 시간이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국내 RFID 시장은 말은 무성하지만 정작 이제 막 형성되는 걸음마 수준인데 규격안이 늦어질수록 경쟁력에 전혀 득 될 것 없다는 반응이다.

 정통부 이윤덕 PM은 “어느 쪽에도 가치 판단을 두지 않고 연구반의 최종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이른 시일 안에 기술기준을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강병준기자@전자신문, bj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