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의 천국, MIT 미디어랩/나카무라 이치야 지음/윤호식 옮김/청어람미디어 펴냄
‘입는 컴퓨터에서 노래하는 신발까지, 자유로운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곳.’
‘상상력의 천국, MIT 미디어랩’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와 천재들이 빚어내는 땀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IBM연구소 출신인 테드 셀커 교수는 자전거를 타고 등장했다. 페달을 밟으면 비누방울이 나오는 자전거이다.
“자동차에 부딪히더라도 거품을 불며 웃으면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만들었습니다”’ 63쪽, 피자와 아몬드
한쪽에는 레고 장난감, 그 건너에는 위성전화와 노트북 컴퓨터, 웹카메라가 연결된 무인 소형 자동차가 있는 모습이 바로 MIT 미디어랩 실험실의 풍경이다.
저자 나카무라 이치야는 미디어랩의 객원교수로 참여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미디어랩은 장남감 공장이고, 음악당이며, 디자인 갤러리, 파티를 여는 연회장인 동시에 치열한 전쟁터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이 책은 단순히 신기함과 재미만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미디어랩이 만들어낸 산학협동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미디어랩은 기초 연구가 주된 기저를 이루면서도 이곳에서 연구하고 개발한 기술이 상당 부분 상품화가 될 만큼 비즈니스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미디어랩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미디어랩은 100개가 넘는 기업과 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이들이 자금을 지원하는 이유는 무얼까? 미디어랩 스폰서에게는 미디어랩 지적 재산권의 이용이 허용된다. 특허나 프로그램 등 스폰서 기간 중에 개발된 성과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이다. 그 권리는 참가 컨소시엄에만 한정되지 않고 미디어랩 전체 생산분에 해당한다.
스폰서들은 4500만 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어진 연구 성과를 20만 달러에 사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500만 달러를 지급하면 랩에 직원을 상주시킬 수 있는 권리도 주어진다. 스폰서들의 공동 연구기관이 대학에 있는 셈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일한 모델일 것이다. 산업계와의 강한 연대야말로 미디어랩의 원동력이다.
스폰서와 미디어랩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1년에 두 번 정도 미디어랩 내에서 정례회의를 갖는다. 이 회의에 참가하는 회사는 통신, 전자, 가전기기, 출판, 광고 등 매우 다양하다. 이들은 딱딱한 회의공간이 아닌 근사한 저녁 파티를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한다. 바로 그 공간에서 살아 숨 쉬는 산학 협동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미디어랩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접하다 보면 미디어랩 사람들의 천재성에 놀랄 수도 있다. 허나 더 큰 점수를 주게 되는 것은 무한한 상상을 소멸시키지 않고 직접 시연해내는 미디어랩 사람들의 열정과 피땀 어린 노력일 것이다. 또한 그 일을 아주 즐겁게 해내는 그들의 태도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누구나 이공계의 위기를 논하고 있는 요즘. 이공계 교육의 전당이라 일컬어지는 MIT 미디어랩을 살짝 엿보면서 우리 이공계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이공계의 문제는 가깝게는 전공자들의 문제기도 하지만 앞으로 이공계를 지망할 청소년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디지털 미래에 관해 어려운 학술적 접근 대신 미디어랩의 일상을 통한 자연스러운 접근법을 제시함으로써 과학도의 꿈을 가진 청소년에게 길을 보여준다.
미디어랩의 이사장 네그로폰테는 “권위를 의심할 것. 어긋남을 존경할 것. 자리 잡기를 거부할 것. 자신을 계속 재창조해 나갈 것”이라는 말로 미디어랩의 정신을 설명하고 있다. 언제나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한곳에 머물지 않는 것. 그것이 항상 스스로를 파괴하고 성공 체험을 거부하는 미디어랩의 기본 정신이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