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를 겪으면서 국내의 많은 중소기업이 떴다 사라졌다.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지금 이 같은 현상은 또 다시 재현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중소·벤처기업들이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내수부진에 따른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다.
이처럼 어려운 가운데서도 지속적인 성장을 하며 ‘벤처 한국’을 견인하는 기업들이 있다. 남들이 눈길을 돌리지 않았을 때 독특한 아이템으로 시장을 선점했거나 우직하게 한 우물만을 파 전문업체로 성장한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이라고 어려움이 없었을까.
세계 셋톱박스 시장을 개척하며 벤처기업의 신화를 일궈낸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IMF를 겪으며 운용자금을 구하느라 금융기관을 전전했던 경험이 있고, 세계 MP3플레이어 시장을 석권한 양덕준 레인콤 사장도 경쟁업체들의 끊임없는 특허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이제는 각자의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입지를 바탕으로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레인콤은 4년 만에 MP3플레이어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확고히 굳혔다. 이 회사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 세계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매출의 10% 수준에 이르는 R&D비용과 양덕준 사장의 결단에 따른 결과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들은 해외시장 진출 초기에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을 선택하지만, 레인콤은 설립 초기부터 해외 현지법인을 육성해 1년 만에 자체 브랜드를 알리는 데 성공했다. 양 사장의 우직스런 고집도 한 몫 했다. MP3플레이어 특허와 관련한 지루한 공방을 계속하면서도 양 사장은 전혀 타협하지 않고 정공법으로 대응, MP3플레이어 업계 선발주자로서의 자부심을 지켰다.
휴맥스는 지난 96년 세계에서 세번째로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용 셋톱박스 개발에 성공하며, 유럽 셋톱박스 시장에 진출한 수출형 기업이다. 휴맥스 역시 낯설기만 한 유럽 시장을 개척하느라 초기에 고생도 많았지만 이제는 셋톱박스에서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디지털TV와 홈미디어 서버 등의 분야에 진출하며 디지털 가전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레인콤과 휴맥스가 첨단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 성공했다면 이레전자와 에이텍·쿠쿠홈시스·청풍·웅진코웨이개발 등은 한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개척해 성공한 사례다. 이레전자는 휴대폰 조립을 발판으로 삼아 디스플레이 부문에 진출, 디지털 TV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에이텍은 일체형 LCD PC인 ‘플래탑’으로 틈새시장을 개척해 국내 올인 원PC 시장에서 단독 1위를 달리고 있다.
쿠쿠홈시스는 ‘밥솥’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잇따른 압력밥솥 폭발 사고로 대기업들도 속속 밥솥사업 포기를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 회사는 미주·베트남·중국 등 23개국에 수출까지 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2년 8월 ‘밥솥 전문 회사’에서 종합생활가전업체로 발돋움하기 위해 쿠쿠홈시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생활가전 브랜드 ‘리오트’를 개발, 생활가전 시장에도 진출했다.
청풍은 ‘공기청정기’ 대표 주자다. 끊임없는 제품 개발과 고객 커뮤니티를 통한 마케팅으로 이제는 공기청정기하면 ‘청풍’을 떠올릴 정도가 됐으며, 청풍의 이러한 성공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이 공기청정기 시장에 앞다투어 뛰어들게 한 요인이 됐다.
박영하기자@전자신문, yh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