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전시장을 바라보는 외산 가전사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 99년 수입선다변화 품목 해제를 기점으로 물밀듯이 밀려온 외산가전업체들은 한국시장을 자극해 최고의 기술과 제품의 대결장으로 키워 놓았다. 그 과정에서 한국시장은 어느새 세계 영상 및 백색가전을 주도하기 위해 살아남아 있어야 하는 바로미터를 제시하는 장이 됐다.
원천기술을 필요로 하는 디지털카메라·디지털캠코더 등 소형 디지털 기기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여전히 고전하고 있으나, 디지털TV·냉장고·드럼세탁기 시장은 이미 한국 기업들이 80% 이상의 점유율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80∼90년대 일본 여행객과 국내 주부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 가전브랜드인 코끼리 전기밥솥, GE·월풀의 양문여닫이냉장고 등은 언제부턴가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한국형 디자인과 초절전을 내세운 양문형냉장고 ‘지펠’ ‘디오스’가 출시되면서 외산은 틈새상품으로 전락했고 IH압력밥솥은 코끼리 밥솥을 주방에서 밀어낸 지 오래다.
한국 기업에 비해 높은 기술력과 품질력을 앞세운 외국계 기업들의 기술우위 마케팅의 위력이 갈수록 떨어지는 반면 한국 기업들의 스피드 경영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한국 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취해 왔던 외국계 기업들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일부 외국계 기업의 철수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러다 보니 그 동안 한국식 유통에 신경을 쓰지 않고 단순한 대리점역할에 만족했던 외산가전 업체들은 최근 유통채널 확보에 신경을 쓰면서 배수의 진을 치고 있다. ‘유통에서 무너지면 살아날 수 없다’는 절박한 심경의 한 단면이다.
외국계 가전업체들은 이제 세계적 수준에 오른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연계를 통한 시너지 효과창출과 유통의 포트폴리오 전략을 새롭게 설정해야 할 때이다. 한국 가전시장은 원천기술에 대한 노하우와 첨단 기술력을 갖고 있는 외산 기업들에는 분명히 ‘기회의 땅’이지만 현지화 및 스피드 경영에 실패할 경우 죽음의 땅이 될 수 있다. 0과 1로 대변되는 디지털 시대를 맞은 외산가전업체들의 새로운 변화와 제 2의 도약이 기대된다.
김원석기자@전자신문, stone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