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2’와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등 대작 온라인게임이 최근 대규모 업그레이드를 속속 단행했다. 고레벨 유저들이 학수고대 해 온 순간이다. 하지만 업데이트의 뚜껑을 열어본 유저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이번 업데이트로 게임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능력이 크게 상승, 사냥하기가 업그레이드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때문이다. 많은 유저들이 ‘하양패치다’, ‘너프가 심하다’, ‘이래서 어떻게 캐릭터를 키워갈지 암울하다’는 등의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심지어 ‘리니지2’를 즐겨온 일부 유저들은 이번 하향패치를 두고 “게임이 유저의 레벨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유저의 레벨업을 늦추기 위해 선택한 편법”라는 말까지 서슴치 않는다.
‘리니지2’의 경우 이번 업데이트를 통해 몬스터들의 인공지능과 능력치를 대폭 상향조정 했다. 유저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키워온 캐릭터의 능력치가 그만큼 낮아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 이번 업데이트 이후 동족의식을 지닌 몬스터들이 대폭 늘었다. 뿐만아니라 서로 다른 종족이라도 같은 지역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마치 파티라도 맺은 것처럼 유저들에게 합공을 가해 온다.
더구나 일반 몬스터에 비해 월등한 체력과 공격력을 지닌 엘리트 몬스터가 출몰해 사냥중인 파티를 전멸시키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대표적인 지역이 30레벨에서 45레벨 사이의 유저들이 주요 레벨업 장소로 활용해온 크루마탑과 30레벨 전후의 유저가 주로 찾는 잊혀진신전. 사냥을 하던 파티가 전멸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자 아예 기피 장소로 전락해 버렸다.
‘WOW’는 이번 업데이트 이후 사냥의 난이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우선 아이템의 성능을 변경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능력치를 2배 가까이 높게 올려 놓았지만 실제 효과면에서는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낮췄다. 방어구의 방어력이나 무기의 공격력, 악세서리의 옵션 등이 발휘하는 효과가 예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다.사실 ‘리니지2’는 아이템빨이 강한 게임이다. 유저들은 좋은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노가다’를 불사한다. 그런데 이처럼 느닷없이 몬스터들이 강해지면서 사냥을 하다가 죽을 확률이 높아지자 “사냥 가기가 겁난다”며 “게임을 계속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라는 유저가 늘어나는 분위기다. ‘리니지2’에서는 캐릭터가 죽으면 일정 확률로 지니고 있던 아이템을 떨군다.
몬스터가 강해진데다 파티형 몬스터가 늘어나면서 더이상 솔로잉이 불가능해 졌다는 불만도 많다. 더이상 혼자서는 자신과 비슷한 레벨의 몬스터조차 혼자 잡는 것이 힘들어져 게임을 지속할 의미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레벨업이 쉽지 않아진 상황에서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은 유저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열받은 유저들은 “게임하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동시에 아이템 현금거래를 부추기는 패치”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WOW’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아직 클로즈베타서비스 중인 게임인지라 어떤 변화도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그렇지만 처음에는 높아진 수치를 보고 ‘우와∼’하며 좋아하다가 실제 몹과의 전투를 치른 후에는 ‘왜이래?’하며 의아해할 정도로 아이템의 성능을 헷갈리게 변경한 것에 대해서는 블리자드 답지 않은 조치였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클베중인 게임인 만큼 있는 그대로 아이템에 대한 리밸런싱을 해도 그만인 것을 궂이 이처럼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유저들을 기만했어야 하느냐는 데에서 기인한 불만이다.하지만 이같은 유저들의 불만을 대하는 게임사의 반응은 아주 무덤덤하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리니지2’ 개발사인 엔씨소프트는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주는 문제”라며 대응하려는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블리자드의 경우는 아예 “‘WOW’는 이제 40% 밖에 개발이 안된 프로그램 덩어리지 게임이 아니다”며 밸런싱과 관련한 유저들의 불만조차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테스터들이 전하는 제안 정도로 치부한다.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모든 부분을 뜯어 고칠 수 있다는 의미다.
왜일까? 왜 게임사들은 유저들이 하향패치네 아니네 논란을 벌이며 게임사를 헐뜯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처럼 느긋한 반응을 보일까?
우선은 게임업체들 사이에 온라인게임은 원래 지속적인 밸런싱 작업을 거쳐 서서히 완성시켜 나가는 게임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저들에게는 심각한 ‘하향패치’ 논란이 게임사 입장에서는 한순간 스쳐지나가는 일시적인 불만사항에 불과하다.
이처럼 게임사들이 하향패치 논란에 무덤덤하게 된데는 유저들의 잘못도 크다. 사실 온라인게임 유저들은 누구나 자신이 육성하는 캐릭터가 최고의 능력을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키우는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약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유저의 캐릭터가 좋아 보이면 ‘사기 캐릭’ 운운하며 하향패치를 요구하는 유저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게임사 입장에서는 유저들 개개인의 불만에 일일히 응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에 겪었던 경험과 사례도 작용한다. ‘디아블로’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디아블로’는 통상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의 효시로 통한다. 하지만 이 게임이 국내 서비스 초기만해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한 배경에는 게임사가 주관없이 유저들의 요구를 너무나도 잘(?) 수용하다가 캐릭터의 밸런싱이 망가진 때문이었다. 게임사가 유저들의 요구를 일일히 들어주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그럼에도 온라인게임은 밸런싱을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게임의 실질적인 소비자인 유저들의 반응도 전혀 무시할 수 만은 없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어떻게 하면 전체적인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유저들 개개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밸런싱 조정 작업을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유저들이 하향패치를 싫어한다고 해서 항상 제자리 걸음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상향패치만 지속하자니 게임이 너무 쉬워지고 재미가 없어진다. 모든 캐릭터가 슈퍼맨이 된다면 무슨 재미로 게임을 할지 모르게 될 것이 뻔하다.
실제로 얼마전 한 온라인게임사는 유저들에게 ‘더이상의 하향패치는 없다’고 약속을 했다가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돼자 캐릭터는 그대로 놔둔채 상대해야할 몬스터들의 능력치를 대폭 높이는 패치를 하는 편법을 쓰기도 했다.
온라인게임의 ‘하향패치’에 대한 시각도 이같은 관점에서 봐야 할 것 같다. 무슨 일이든지 과하면 탈이 나는 법. 게임이 너무 어렵다면 상향패치가 필요하다. 반대로 너무 쉽게 느껴진다면 당현히 하향패치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최근 ‘리니지2’ 업데이트가 이루어진 후 “게임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지고 전략적인 공략이 필요해져 오히려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는 유저도 적지 않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김순기기자 김순기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