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의 영화사냥]시크릿 윈도우

이제는 보통명사가 되어 버린 ‘미저리’는 케시 베이츠의 광기 어린 연기 덕분에 성공했다. 확실히 스티븐 킹은 작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에서 훨씬 더 감성적이다.

‘시크릿 윈도우’ 역시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고 헤진 잠옷을 입고 어슬렁거리는 모트 레이니라는 작가가 등장한다. 그가 폐인이 되어가는 이유를 우리는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혼을 준비하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뿐인가?

‘시크릿 윈도우’의 조니 뎁은 캐시 베이츠가 그랬던 것처럼 그 배우 아니면 그 영화를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좋은 배우다. ‘캐러비안의 해적’ 같은 블록버스터에서도 조금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하던 그는 ‘가위손’에서 보여주던 신선한 매력을 점점 더 심층적으로 파고 들어간다.

‘에드우드’나 ‘도니 브레스코’가 훨씬 어울리는 조니 뎁이지만 이상하게도 ‘나이트 메어’부터 시작해서 ‘프롬 헬’이라든가 ‘슬로피 할로우’처럼 음산한 영화를 많이 찍었다. 스티븐 킹의 중편소설 ‘포 패스트 미드나잇:시크릿 윈도우, 시크릿 가든’을 영화화 한 ‘시크릿 윈도우’의 작가 모트 역도 절대 밝고 긍정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문제는 모트에게 존 슈터라는 또 다른 작가가 등장하면서 발생한다. 존 슈터는 모트가 쓴 소설이 자기가 쓴 작품을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결말을 원래 자기가 썼던 대로 바꾸라고 요구한다. 모트는 사력을 다해 자기가 쓴 소설이 실린 잡지를 구해서 원작자가 자신이라고 증명하려고 하지만 일은 점점 비틀려간다.

엄청난 반전이 있다고 보도자료에는 돼있지만 그렇게 기가 막힌 반전은 아니다. 이런 영화 스타일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모트의 분열적 모습을 금방 확인할 것이고 존 슈터 역시 모트의 분열된 자아라는 것을 손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물론 마지막 신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이기는 하다.

그러나 비밀의 창과 비밀의 정원이 함께 들어 있는 원작 소설의 제목을 유심히 생각하면 그것도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조니 뎁의 엽기적인 표정 연기가 오래도록 우리를 소름끼치게 한다.

옥수수가 빽빽하게 가득 찬 정원에 어떤 비밀이 있을 것인가. 우리의 예상이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반전의 묘미에 승부를 걸지는 않는다. 그 기묘한 정조, 손으로 잡히지 않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분위기, 우리의 온 몸에 스물스물 기어오르는 낯선 이물질 같은 공포, 이런 것들이 살아나야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졸린 눈으로 게으르게 행동하는 조니 뎁이 아니라면 ‘시크릿 윈도우’는 매우 심심해졌을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숲 속의 별장, 그 앞의 호수라든가 벽난로 위를 비롯해서 집 안 곳곳에 설치된 거울은 결국 나 자신을 반사해주는 장치다. 나는 누구인가? 감독은 결국 우리에게 존재론적인 이 질문을 던지고 싶은 것이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