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함께 즐기는 부부는 많다. 게임으로 만나 백년가약을 맺은 커플도 종종 있다.
하지만 애니파크의 고영철-윤지향 커플은 좀 특이하다. 아예 같은 게임개발사 개발자로 취직해 화촉을 밝혔기 때문이다.
남편 고영철씨(29)는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하고도 게임이 좋아 고시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동갑내기 아내 윤지향씨는 게임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사랑하다 게임까지 사랑하게 됐다. 올해 1월, 7년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한 이들은 게임 개발을 위해 신혼을 중국에서 보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저희가 가장 바람직한 부부상이라고 농담을 걸어와요. 가정의 목표와 인생의 목표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이라나요. 사실 우리 부부에게 게임이란 일인 동시에 놀이이고, 공통의 관심사에요.”
고씨는 아내 윤씨와 직장이든 집에서 만나면 게임 이야기만 한다며 언제부터인가 게임이 삶의 전부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재수생시절 만난 두 사람은 7년간 친구처럼 사귀다 올해초 ‘웨딩마치’를 울렸다. 애니파크 게임개발팀의 첫번째 사내 커플(CC)이라 애니파크는 겹경사로 한동안 이야기 꽃이 활짝 폈다.
그도 그럴것이 게임개발자 커플의 결혼은 한편의 게임을 연상시킬 만큼 드라마틱하게 치러졌기 때문이다.
2004년 1월11일 오후 1시. 숫자 1 이 4개가 겹쳐지는 순간을 ‘D데이’로 삼은 것이나 결혼식을 마치자 마자 중국으로 건너가 신접살림을 차린 것은 두고두고 화제를 뿌렸다.
“약간 황당했어요. 결혼 전에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었거든요. 신혼여행을 다녀오자 남편이 갑자기 중국으로 가야한다고 하더라고요.”
윤씨는 온라인게임 ‘A3’ 기획자인 남편이 중국 파견근무자로 차출되자 ‘부창부수(夫唱婦隨)’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 닮은 꼴, 미묘한 입장차
현재 온라인게임 ‘A3’ 중국 현지화 작업에 한창인 이들은 호흡이 척척 맞는다.
기획자인 고씨가 중국 유저들의 성향을 파악해 현지화 방향을 정해가고, 윤씨는 남편의 일을 도와 자료수집이나 분석에 열성적이다. 처음 6개월은 아예 중국에서 살다시피 했고, 요즘은 중국과 한국을 수시로 오가는 처지지만 ‘A3’를 중국 최고 인기 온라인게임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들 부부는 일단 게임을 시작하면 하루 종일 매달린다.
“우리 부부는 게임을 할 때 몰입하는 편이라 몇 시간이라고 할 것 없이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계속 게임을 하는 편이에요.”
그러나 이들은 게임 플레이 방식이 확연하게 다르다.
“저는 살림불리기에 주로 관심이 있죠.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모한 인첸트에요. 반면 남편은 보스몬스터 사냥을 좋아해요. 저는 혈맹원들과 친분관계를 맺고 파티사냥을 즐기지만 남편은 수다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에요.”
이런 윤씨의 말에 고씨는 이렇게 대꾸한다. “장사하는데도 차이가 있어요. 저는 거래가격을 절대 먼저 부르지 않아요. 모 아니면 도식으로 장사를 하죠. 하지만 와이프는 굳이 한푼두푼 흥정해가며 장사를 해요. 그게 재미있다나요.”
# ‘겜생겜사’ 게임에 올인
고씨는 게임이 좋아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하고도 게임개발자로 나선 케이스다. 윤씨는 그런 고씨를 사랑하다 게임까지 사랑하게 됐다. 덕분에 두 사람은 소위 말하는 일류대인 서울대 학창생활까지 잠시 중단한 상태다. 고씨가 경영학과를, 윤씨는 중문대학원을 각각 휴학 중이다.
“부모님이 처음에는 엄청나게 반대하셨죠. 하지만 지금은 저의 결정을 존중하세요. 저도 돌이켜보면 정말 결정을 잘 한 것 같아요. 저는 체질상 일이 곧 놀이가 돼야 하거든요.”
게임을 하거나 ‘A3’를 기획할 때면 한없이 행복해진다는 고씨는 게임에 올인한 선택이 전혀 아쉽지 않다며 활짝 웃었다.
“중국 비즈니스는 현지화가 관건이에요. 국내에서 호응이 좋고 나쁘고는 기준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중국을 우리나라 70∼80년대의 발전상황으로 오해하는 것도 금물이고요. 대륙에서는 자만이 가장 큰 적이라고 할까요.”
엔씨소프트에서 게임마스터(GM)으로 활약하기도 한 윤씨는 중국 북경어언대에서 어학연수를 수료할 정도로 중국 비즈니스에 대해 관심이 많다.
게임 이야기로 부부싸움도 한번 안해 봤다는 이들은 앞으로 게임기획자와 게임마스터(GM)로 인생의 승부수를 걸어보고 싶다며 서로 두 손을 꼭 잡았다.
<장지영기자 장지영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