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전자상가 하면 두가지 이미지가 떠 오르게 된다. 하나는 각종 전자제품을 값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못하면 상인들에게 속아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용산 전자상가는 왠지 불법적인 거래가 은밀히 이뤄지고 변칙이 횡횡할 것 같은 느낌 이 강하게 든다. 게임도 마찮가지다. 수많은 업체들이 무자료 거래 덤핑, 게임기 개조 등 각종 편법을 동원하며 게임을 팔았고 지금도 그런 관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10년 넘게 용산 게임시장을 지켜 오면서 정직한 경영을 고집해온 사람이 있다. 혹독한 시련기였던 IMF도 버텨내고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임 패키지 유통 전문업체인 B&T의 김재원 사장. 그를 아는 사람들은 평가가 극단으로 갈린다. 일부에서는 그를 비난하지만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김재원 사장은 원래 제약회사 출신이다. 이곳에서 관리도 하고 마케팅도 해봤다. 그러다가 게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의 나이 40을 바라보던 00년으로 독립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여의치 않아 선배 소개로 들어가게 된 회사에서 게임사업에 손을 댄 것이다.
그는 게임사업을 잘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사장에게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전자산업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용산에 들어와 사무실을 얻고 시장을 뛰어다니며 오더를 따 냈다. 이렇게 휴일 없이 뛰기를 4년 만에 그가 맡은 게임사업부는 현재의 BNT 정도의 규모를 갖게 됐다. 당시로서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대 성공이었다.
# 제약회사에서 게임 유통으로
이곳에서 자신감을 얻은 김 사장은 결국 오래전 부터 계획해 왔던 자신만의 사업을 위해 회사를 떠난다.
“회사를 나올 때 그곳에서 받았던 명함은 단 한 장도 갖고 나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후임자에게 다 물려주었죠”
물론 명함은 놓고 나왔다고 해서 그동안 그와 긴밀하게 연관되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질 수는 없었다. 김 사장은 이렇게 새로운 출발을 했고 사업은 순조롭게 번창하는 듯 했다.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이 닥친 것은 바로 IMF였다. 당시에는 누구나가 어려웠지만 그는 특히 더 힘이 들었다. 함께 일하던 유통업체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쓰러져 나갔고 그도 아무런 할 일이 없었다.
“거래업체가 부도를 내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내가 떠 안아야 했어요. 뭘 해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무언가 돌파구를 찾아야 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지금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렇게 해서 그는 뒤 늦게 야간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다. 외국에도 나가 공부해 봤지만 여의치 않아 결국 연세대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학교에 찾아가 교수님을 만나니 나보고 이러시는 거예요. ‘공부가 힘들 텐데 좀 더 편한 곳을 찾아 보시지요’ 그래서 제가 미국에서 잠깐 공부했던 성적표를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나를 다시 보더라구요”
그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곳을 나니며 ‘인터넷이 한국 게임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이라는 졸업논문을 낼 수 있었다.
# 원칙을 고수하는 유통
김사장의 경영이념은 회사 이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B&T는 `Bird & Tree` 의 약자로 새와 나무가 상호공생 관계에 있는 것 처럼 기업과 기업, 그리고 기업과 소비자 간 모두의 이익을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고객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하고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90년 설립된 B&T는 전국에 700 여개의 소매점 및 양판·할인점과 외부 직영매장에 각종 패키지 게임을 공급하고 있다. 21세기 국경 없는 글로벌시대를 맞아 보다 경쟁력 있는 기업과 인간가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 사장이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 ‘게임21’은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한 사이트가 아니다. 소매업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단 한 장의 게임을 팔더라도 세금계산서를 발행한다.
“게임 유통이 제대로 정착을 해야 장기적으로 게임산업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은 게임시장이 온라인게임 중심으로 몰려 있지만 언젠가는 패키지 게임도 많은 영역을 확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 사장은 그래서 제대로 된 유통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려운 가운데에도 원칙만은 철저하기 지켜오고 있다. 그래서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최후까지 살아남은 것은 B&T가 거의 유일할 정도로 그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그는 유통 만이 아니라 자체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핸드폰에 탑재되는 임베디드 게임도 개발해 놓았다. 이 분야는 시장진입 장벽이 높아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김 사장은 원칙중심의 마케팅을 밀고 나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지금도 김 사장은 직원들 모르게 새벽 일찍 일어나 영어회화를 공부하러 다닌다. 바이어들과 좀더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박사학위까지 따 보겠다는 것이 김 사장의 욕심이다. 이처럼 자기 발전과 회사 발전을 위해 부지런히 뛰고 있는 그를 보고 있으면 마치 산을 지키고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처럼 듬직함이 느껴진다.
1975-1988년 대웅제약
1988-1990년 재미나
1990년 B&T 대표이사
1998년 한국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졸업
2004년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석사
<취재부장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