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인인증 유료화 정책이 실시된 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 파행 운용이 나타나고 있다. 정책의 기본인 일관성이 없는 상태에서 사용자는 혼란을 겪고 있으며 관련 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견된 파행 운용=정부의 공인인증 정책 파행 운용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공인인증 관련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는 애초 지난 6월 공인인증 유료화를 추진했지만 금감원과 행자부 등 유관 부처와의 반발로 정책 결정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공인인증 유료화는 부처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고 급기야 국무조정실이 나서서 정책 조정에 들어갔다. 국무조정회의는 8월 말 열렸고 정책 조율이 이뤄지자마자 공인인증 유료화 정책을 발표하고 지난 11일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상호연동용 공인인증 수수료 징수 시스템과 용도제한용 공인인증 발급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은 금융결제원과 증권전산은 유료화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통부는 금융결제원과 증권전산의 유료화 유예를 감수하면서도 유료화를 강행했다.
공인인증 관련 전문가들은 “정통부가 공인인증 유료화 관련 정책의 시행이 계속 늦춰지면서 부담을 느끼게 됐고 그 결과 성급한 정책 발표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통부 관계자 역시 “올해 초 공인인증 유료화 정책이 발표되면서 더 늦춰지면 오히려 국민의 혼란이 더해질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사용자는 혼선, 업계는 악영향=이처럼 공인인증 정책이 파행을 겪으면서 사용자는 혼란을 겪고 있다. 상당수의 공인인증 신규 발급 사용자는 유료와 무료 사이에서 혼선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유료로 상호연동용 공인인증을 발급받은 사용자는 똑같은 상호연동용 공인인증을 여전히 무료로 발급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소위 ‘본전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아울러 무료로 발급받았다 하더라도 11월 초에는 유료 전환을 하든지 아니면 무료인 용도제한용 공인인증서로 변환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유료로 공인인증을 받은 한 사용자는 “막상 돈을 내고 나서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누구는 돈을 내고 누구는 공짜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일관성이 없으면 정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꼬집었다.
관련 산업에 대한 악영향도 문제다. 유료화 이전에도 일부 공인인증기관의 독점으로 인한 폐단이 지적돼 왔는데 그나마 유료화 도입 이후에는 유료를 실시한 공인인증기관이 아예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대안은 없나=공인인증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은 간단치 않다. 전면 유료화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불가능하다. 그냥 유료와 무료를 병행하자니 파행 운용이 불가피하다. 아울러 정책 변경을 하기에는 1달 반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
따라서 유료화에 필요한 시스템 구축을 최대한 앞당기면서 유료 상호연동용 공인인증 사용자에 대한 적절한 보상 조치가 강구돼야 한다.
시스템 조기 구축에 대해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11월 초까지는 예정대로 시스템이 마련되겠지만 이를 앞당기는 것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무리하게 시스템 구축을 앞당길 경우 다른 문제점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료 상호연동용 공인인증 사용자에게는 11월 초까지 유료 유예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이미 유료로 발급받은 사용자에게는 환불 등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