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 전의 일이다. 2000억원 규모로 국내 IT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던 K사 프로젝트는 중단과 재가동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수장도 3번이나 바뀌는 ‘진기록’을 세웠다.
비록 실패한 특정 프로젝트를 든 사례지만 당시 국내 IT 품질관리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때와 비교하면 IT 품질관리에 대한 인식은 엄청나게 향상됐다. 시스템통합(SI) 기업들의 자구 노력은 물론이거니와 품질 관리를 위해 사용되는 자동화 툴 시장의 성장, 무엇보다 수요처의 인식이 과거에 비해 발전했다.
◇대기업 중심 IT 품질 관심 고조=2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SK텔레콤의 차세대마케팅(NGM) 시스템 프로젝트는 국내 IT 품질 관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만하다. SK텔레콤은 베어링포인트를 프로젝트 감리사로 선정했다. 물론 프로젝트 주관사인 한국IBM BCS에서는 SK텔레콤의 이런 노력과 무관하게 QA(Quality Assurance) 그린팀을 파견했다. SK텔레콤은 또 머큐리인터액티브의 ‘부하 성능 테스팅 솔루션(로드러너)’을 별도로 구입, 수 천여명의 동시 사용자 환경을 생성해 업무 과부하 여부에 대한 검증도 진행한다. SK텔레콤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품질 관리에 투자하는 비용은 전체 비용 중 3∼4% 달하는 1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국 SK텔레콤 과장(프로젝트 관리팀)은 “프로젝트가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선 SI나 컨설팅 경험이 있는 기업에게 감리를 맡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며 “이번 프로젝트 중요성을 고려할 때 품질 관리는 처음 기획 단계부터 별도의 예산을 책정할 정도로 중요한 업무 영역이었다”고 밝혔다.
비단 SK텔레콤뿐 아니다. 대규모 전사자원관리(ERP)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포스코는 오라클의 새로운 패치 적용 때마다 자동화 도구를 이용해 ‘회기시험’을 꼼꼼히 진행한다. 회귀시험은 특정 영역에서 문제를 발견, 해결했을 때 테스트 대상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며 자동화툴을 사용해 이에 따른 시간과 인력을 줄였다.
◇SI·솔루션 업체 품질 관리 영역 강화=IT 품질 관리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관련 솔루션 진영도 시장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검증에서 출발해 BTO 영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머큐리인터액티브는 지사 설립 4년 동안 50∼60%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만 SK텔레콤을 비롯한 포스코, 삼성테스코, 대우조선 등에 관련 솔루션을 공급했다. 메인프레임에 대한 품질 관리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는 컴퓨웨어나 라이업도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IBM도 인수한 래쇼널의 솔루션을 앞세워 케이스 도구나 테스팅 분야에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밖에 시스템관리 업체인 한국CA나 한국BMC소프트웨어도 서비스 품질과 성능 관리로 개념을 확대하면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올해 품질 관련 솔루션 시장이 400억원 정도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SI 업체의 노력도 강화되고 있다. SI 업체들은 일정 금액 이상의 프로젝트에 대해 사전 테스트는 물론 사후 점검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삼성SDS와 LG CNS, 포스데이타, 대우정보시스템 등 중대형 SI 업체들은 제안서 작성부터 시스템 구현까지 전 과정에서 테스트를 실시, 고객에게 제공하는 최종 제품의 결함률을 최소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품질 관리를 위한 전담팀을 두고 자체 개발한 방법론과 전문 테스팅 툴을 적용, 엄격한 기준을 두고 있다.
이들 업체는 나아가 프로젝트 개발 과정에서 결함률이 기준치를 넘을 경우 프로젝트 진행을 중단하는 한편 최종 개발된 시스템에 결함이 있을 경우 시스템을 고객에게 납품하지 않는다는 엄격한 내부 방침도 세워 놓고 있다. 또 프로젝트 완료 이후에도 고객을 대상으로 ‘시스템 만족도 조사’를 실시, 프로젝트 완성도에 대한 재평가도 병행·실시하고 있다.
◇품질관리 비용으로 책정하자=이 같은 긍정적인 변화에도 IT 분야에 품질 관리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한 선결 과제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도 수요처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품질 관리를 위한 별도의 비용을 책정하는 수준의 인식 변화와 여건이 마련되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머큐리인터액티브코리아의 관계자는 “본사에서는 품질 관리에 대해 ‘퀄러티 텍스’라는 표현을 일반적으로 사용한다”라고 설명했다. 즉 품질을 위해 세금을 낸다는 것은 결국 품질이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의미다.
IT 분야의 품질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관계자들의 모임인 한국정보기술품질협의회 이승우 부회장은 “대기업이나 일정 규모의 프로젝트에서 품질 관리가 거론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변화지만 아직도 수요처에서는 품질 관리를 위한 비용을 선뜻 부담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혜선기자@전자신문,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