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성장엔진의 주역들](31.끝)전망과 과제

 ‘지방시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고속철도 개통으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들어온 데다 참여정부의 국가 균형발전 정책 드라이브로 ‘지방’이 이웃만큼 가까운 곳으로 변하고 있다. 중앙의 권한과 사무가 대폭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되고 있고 세원들도 지자체로 이전할 전망이다. 여기에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추진은 지방경제 활성화를 가속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초 ‘지방분권특별법’ 제정으로 지방분권은 한층 더 탄력받고 있다. 특히 정부가 국가발전전략을 과학기술부 주도의 혁신주도형 연구·개발(R&D) 체계로 전환할 방침을 밝히면서 명실상부한 ‘지방시대’로의 진입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전국의 공단이 지역내 대학·연구소와 연계한 혁신 클러스터로 탈바꿈하고 있고 기업들이 중심이 된 ‘기업도시’를 만드는 방안도 현실화되고 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지방분권’과 ‘과학기술중심사회’를 구축하자는 프로젝트가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있다.

 특히 정부의 ‘IT839 전략’에 힘입어 지방이 미래 국가의 균형 성장의 발판으로 떠오를 날이 멀지 않아 보인다. 각 지자체들도 저마다 차세대 성장동력 엔진들을 앞세워 21세기 한국을 주도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준비하고 있다.

 ◇ R&D 기반이 탄탄한 충청권=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한 대전, 충남·북지역의 신성장동력 연구인력들은 다방면에 걸쳐 두터운 분포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R&D 축으로 학계에서는 IT와 BT·NT·ET 등의 분야 전문가들이 다양하게 포진해 있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꼽을 수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 IT의 메카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비롯한 BT분야의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RT(방사선)의 한국원자력연구소, ET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ST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이 성장동력엔진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IT의 씨앗을 뿌린 ETRI의 9대 성장동력 사업과 KAIST의 나노팹, 정문술빌딩의 IT·NT 등을 기반으로 한 BT연구는 국민소득 2만달러를 실현할 성장엔진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에 반해 업계는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것이 사실이다. 일부 업체는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계속되는 경기 하강에 따른 경영난과 수도권 고급인력의 근무지 기피로 인한 인력난 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탈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00∼2002년까지만 해도 벤처창업으로 산업화를 주도했다가 가라앉은 대덕연구단지 R&D인력의 상당수가 벤처창업으로 산업화를 주도한 경험을 살려 다시 한번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벤처 붐으로 쏟아져 나온 출연연의 고급인력들이 기업의 자금난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정부의 다각적인 벤처지원 방침에 힘입어 이들 인력의 재활용을 통해 국가적인 인력 낭비요인을 막기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자체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호남권=광주와 전남·북지역의 10대 미래성장 동력산업에 대한 전문가층은 대체로 엷은 편이다. 반도체와 디지털콘텐츠, 지능형 로봇·바이오 등을 제외하곤 5∼6명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수적 열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들이 성장동력 산업과 관련된 R&D사업을 적극 수주하고 있는데다 산·학·연 공동 사업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 국가균형발전의 견인차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호남지역은 10대 전략산업 중 디지털콘텐츠 산업 전문가가 가장 풍부하다. 특히 전통 문화예술 기반과 첨단기술을 융합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문광부가 추진중인 아시아중심도시 조성사업을 계기로 전문가들이 문화산업 육성에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전북과 전남도에서도 문화유산과 음식, 볼거리 등을 디지털콘텐츠화하기 위해 20여명의 산·학·연 전문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에 대한 연구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산자부의 나노기술집적센터 구축사업에 지역 반도체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중이다. 광주에서는 발광다이오드(LED) 및 레이저다이오드(LD) 등 광반도체, 전북에서는 반도체 물성 분야에 대한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와 함께 비록 인력은 적지만 전국적 명성을 떨치는 분야로는 디지털TV와 디스플레이, 디지털 홈네트워크 등을 둘 수 있다. 이 밖에 차세대 이동통신·지능형 로봇·생명기술(BT) 분야도 비록 다른 지역에 비해 열세지만 대학과 벤처지원기관, 기업체 소속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탄탄한 산·학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분야별로 고른 발전을 보이고 있는 경남권=부산·울산·경남지역은 수도권에 이은 최대 인력공급지로 인정받고 있다. 부산대와 창원대 등 국립대학들을 중심으로 한해에 수 만명에 달하는 차세대 성장엔진의 핵심 인력들이 배출되면서 IT분야는 물론 BT·CT 분야 발전 토양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지역의 기반 산업은 조선·해양. 따라서 IT산업도 조선·해양과 관련한 분야가 발전하고 있으며 전문인력들도 잘 갖춰져 있다. 부산대·부경대·해양대·동아대를 중심으로 조선·해양 IT인력들이 고르게 포진해 있으며 업계에도 조선기자재 관련 ERP·CAD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또 하나 부산은 게임·영상 등 디지털콘텐츠 산업이 부흥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동서대·동명정보대·경성대 등의 ‘신흥 세력’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기계산업의 뒷받침을 받는 경남지역은 차세대 홈네트워크와 지능형 로봇 분야에서 전국 어느 지역보다 앞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 차세대 홈네트워크는 ‘마산밸리’를 축으로 경남도가 기술과 서비스 개발 및 표준화를 추진해 수출전진기지는 물론 동북아 차세대 홈네트워크의 중심지로 나아간다는 계획이다. 지능형 로봇은 ‘경남로봇센터’가 중심이 돼 차세대 지능형 로봇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창원을 기반으로 양산과 김해·진주·사천을 기계 테크노벨트로 육성해나가는 가운데 메카트로닉스와 조선해양·항공우주·정밀기기 등 지식기반 기계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부산과 경남도가 중점 추진하는 사업으로는 BT도 빼놓을 수 없다. 동의대·신라대 등 대학과 테크노파크 등 지원기관, 기업 종사자들이 산·학·관 협력 시스템을 구축해 해양과 관련있는 BT산업의 특성화에 앞장서고 있다.

 ◇산·학 협력을 통한 발전전략의 경북권=대구·경북지역은 IT인력의 최대 산실인 경북대와 국내 최대의 과학두뇌 요람인 포항공대를 양대축으로 대학별 특화된 분야를 살려 다양한 연구를 펼치고 있다. 전문대학도 IT특성화대학인 영진전문대와 영남이공대학을 버팀목으로 교수들이 기업들과 인력공급·제품개발 등 다각도의 산학협력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인력 인프라를 바탕으로 대구·경북지역은 성장동력산업 중 모바일과 디스플레이, 반도체 분야에서 풍부한 전문인력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분야는 구미공단의 첨단디스플레이단지내 기업들과 전후방 중소협력업체들의 기술을 지원하기 위해 경북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요소기술들을 보유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의 휴대폰 생산공장이라는 국내 최대 모바일단지와 연계해 차세대 이동통신 및 홈네트워크, 임베디드, 모바일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관련 전문가들이 폭넓게 포진해 있다. 특히 경북 칠곡 동천동 일대는 30여개의 모바일 기업들이 지역 전문가들과 협력연구를 가지면서 신소프트웨어 개발의 메카로 급부상하고 있다.

 바이오분야도 포항공대와 경북대를 중심으로 핵심 인력이 두텁게 형성돼 있다. 특히 포항공대는 생명공학연구센터, 생물공학연구소, 차세대바이오환경기술연구터, 해양생명환경기술연구소 등 바이오와 관련된 연구소 및 세계적인 연구인력을 다수 보유함으로써 국내 바이오기술 연구의 메카로 부상하고 있다.

 대구의 경우 최근 지역진흥산업으로 선정된 나노(NT)분야와 문화클러스터로 지정된 문화콘텐츠(CT)분야에도 전문가들이 관련 산업의 꽃을 피우기 위해 연구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남은 과제들=지방이 미래 우리나라 과학기술 R&D 및 산업화의 축이 되기 위해서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중앙의 권한과 예산이 실질적으로 이양돼야 진짜 지방시대를 열 수 있다는 지적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자립형 지방화를 통해 선진국 수준의 지방분권을 실현한다는 정부의 비전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 이전을 놓고 벌이는 각 지자체들의 과열경쟁도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방시대를 공고히 다지기 위해서는 교육도 중요하다. 지방인력들의 수도권을 향한 수렴현상이 개선되지 않고는 지방화가 요원할 것이란 게 중론이다.

 지자체들도 지방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다양한 개발정책을 앞세워 민자와 외자 유치에 주력해야 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명실상부한 지방화가 추진되기 위해서는 서울중심의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늬만 지방인’으로는 지역 발전 기여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래 ‘지방시대’에 대한 신념과 지역발전에 대한 사명감, 지역에 대한 애정들을 주문하고 있다.

 <전국팀>

◆기고; 지방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이다

- 홍창선 국회의원(열린우리당) cshong@assembly.go.kr

 21세기를 맞아 지식기반사회로의 진전이 가속화되고 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노동과 자본에서 기술과 지식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다.

 그 결과 물리적인 국경의 개념은 갈수록 의미가 없어지고 있는 반면 지방의 특화된 경쟁력이 국가전체 경쟁력의 핵심요소가 되는 시대가 됐다.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전개되는 이른바 세방화(世方化,Glocalization)가 큰 추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정책들이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이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당위의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나라 경제를 위기로 진단하는 사람이 많다. 경제위기의 원인으로는 국내 경제요소의 양극화 현상이 자주 지적된다. 예컨대 수출호조와 내수침체, 대기업 매출증대와 중소기업 자금난 등 양극화 심화가 경제회복을 더디게 만드는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심화현상 또한 중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수도권 인구집중도가 1980년 35.5%, 1990년 46.3%, 2002년 47.2%, 지역내총생산(GRDP) 중 수도권의 생산규모가 1986년 43.1%, 1996년 45.6%, 2002년 47.8%로 인구와 생산의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화돼 왔음을 알 수 있다. 미래 성장잠재력에 영향을 미치는 연구개발에 있어서도 수도권 집중도가 높아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1999년에서 2002년 사이 수도권과 대전지역에의 연구개발 집중도를 보면 정부 연구개발투자는 69.9%에서 74.3%로, 연구개발인력은 59.7%에서 67.1%로, 연구개발조직은 40.4%에서 71.1%로 각각 높아졌다.

 이러한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 현상에 대해 정부의 전방위적인 처방이 시행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제정됐고 행정수도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 고속철도의 개통에 따른 전국 반나절 생활권 진입과 세계 최고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는 이러한 각종 대책들이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지방의 기술혁신, 연구개발 역량 강화 및 인재양성을 위해 혁신클러스터, 테크노파크 조성사업, 지역기술혁신센터 사업, 지방과학기술혁신사업, 지역대학지원사업 등 각 부처의 지원도 입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산·학·연이 유기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지역복합체로서 기업도시를 만드는 구상까지 구체적으로 진행중이다.

 특히 작년에 27% 수준에 머물던 정부 연구개발비의 지방 투자비율을 금년에 32%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시작으로 오는 2007년까지 40% 수준으로 제고하는 계획이 수립돼 지난 7월말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보고됐다. 이러한 연구개발 투자확대를 통해 지방 전통산업의 첨단산업화와 본격 추진될 신성장동력산업의 지방정착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서두에서 지적했듯이 균형발전을 위한 지방투자 확대의 목적이 국내 역량 활용의 극대화를 통해 국경 없는 무한경쟁체제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단순히 수치적인 형평이나 정치적인 배려로 투자를 분산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균형발전 시책의 최종적인 목적이 단순히 ‘파이’를 고르게 나누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생산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있음을 지방에서도 인식하고 중앙정부의 거시적인 정책추진에 적극 협조하는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