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소프트웨어 업계 명분보다 실리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토종 소프트웨어업체들이 덩샤오핑 실용주의의 핵심인 ‘흑묘백묘’론을 배우기 시작했다. 유명 토종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제품의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외국 소프트웨어업체와 제휴를 맺고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아예 외국 소프트웨어업체의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에서는 ‘토종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을 버렸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지만 당사자인 토종 소프트웨어업체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이익이 되면 누구와도 협력한다=최근 하우리는 루마니아 백신업체인 소프트윈과 백신 엔진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제휴를 맺었다. 기존 하우리의 백신엔진과 함께 소프트윈의 백신 엔진까지 사용해 악성코드를 찾아내고 치료하는 성능을 높일 계획이다. 하우리는 앞으로 자사 백신의 성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국내외 기술을 막론하고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안철수연구소도 미국의 스팸메일 차단 소프트웨어업체인 클라우드마크와 제휴를 맺고 백신 기능 강화에 나섰다. 안철수연구소는 우선 서버용 백신에 클라우드마크의 스팸메일 차단 기술을 추가하고 다른 보안 제품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안철수연구소는 자사 백신 기술과 클라우드마크의 스팸메일 차단 소프트웨어 기술을 결합한 제품을 별도로 개발, 해외시장 공략을 모색할 계획이다.

 세중나모인터렉티브는 중국 소스텍소프트웨어가 개발한 플래시크리에이터를 최근 국내 출시했다. 이 제품은 매크로미디어의 플래시MX처럼 플래시 파일을 만들고 편집할 수 있는 반면 가격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출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세중나모인터렉티브는 이 제품을 연구해 플래시 관련 제품을 자체 개발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한글과컴퓨터 역시 외국 업체라도 부가가치를 낼 수 있다면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방침이다.

 백종진 한글과컴퓨터 사장은 “아래아한글을 비롯한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을 다변화할 수 있는 국내외 기술과 제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조치=이러한 토종 소프트웨어 업체의 행보에 대해 일부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익 때문에 자존심을 팽개쳤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토종 소프트웨어업체들의 입장은 다르다. 자체 기술 개발을 포기한 것이 아닌, 더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술 협력이기 때문에 오히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하면 가장 좋겠지만 이는 시간과 비용 측면에서 비합리적이라는 판단이다.

 권석철 하우리 사장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전문 업체끼리 기술 협력을 해야 한다”며 “구한말의 쇄국정책과 같은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면 지금과 같은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배 세중나모인터랙티브 사장 역시 “국내외를 막론하고 필요하면 어떤 기술이나 제품이라도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외국의 유명 소프트웨어업체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토종 소프트웨어업체들은 이제 명분보다는 실리를 찾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방향 선회가 해외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둘 경우 외국 기술과 제품의 도입이 모든 소프트웨어 분야로 확대될 전망이다.

 장동준기자@전자신문,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