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0년, 생전 처음 회사라는 것을 만들어 선봉장으로서 책임감과 정의감으로 활활 불타던 시절이었다. 당시 3인 이상 직장에서 반드시 산재보험을 들도록 법이 바뀌었다.
알다시피 직장인들은 월급에 비례해서 꼬박꼬박 의료·산재보험, 연금, 세금 등을 떼어간다. 자영업이나 의사, 변호사와 같은 고소득자들 중 불성실하게 신고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무척 억울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낸 세금이 제대로 쓰여지는 지도 의문이다. 매일 사회의 지도층들이 저질러 놓은 부실과 부패를 국민 세금으로 막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몇 년 전에는 국민연금이 자금 운영을 잘못해서 바닥이 난적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직장 산재보험의 성격은 이해하지만, 무턱대고 내라고 한다고 낼 수는 없고 해서 정확하게 확인을 해보기로 했다.
쥐꼬리만한 개인의 월급에서 자동 공제 되는 것도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아깝지만 회사를 하는 입장에서 회사에서 부담하는 금액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회사 초기단계에는 매출 없이 순전히 있는 자금으로 게임을 만들기 위해 지출만 하던 단계였기 때문에 스스로 택한 내핍과 자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나의 최대 관심사였다.
산재보험에 전화로 문의를 해서 산재보험의 목적, 용도, 혜택, 금액 산정에 대해 물어봤더니 산재보험의 업종별 분류를 보내 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소프트웨어 개발이 윤전기를 돌리는 인쇄업과 같은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사무실 책상 앞에서 자판기를 상대로 하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보기에도 위험한 윤전기를 돌리는 업종과 같은 등급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윤전기에 손가락이 끼여 사고가 날 수 있는 인쇄업의 사업장과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사무실에서 사고가 날 확률이 어떻게 같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산재보험 측에서 소프트웨어도 개발이라고 무슨 공장으로 인식 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말이다. 나는 산재 보험측에게 이런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등급분류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결국 내가 받은 답은 내년에 등급 분류할 때 한번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산재보험에서 강조한 것은 이런 보험의 성격을 ‘두레’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단 가입선택의 여부가 없는 ‘두레’인 것이다. 상부상조 성격의 두레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보험이 같은 개념이다.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내일 당장 문닫을 수도 있는 벤처 라는 회사 입장에서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보험 산정률이 터무니 없으면 말이다.
2004년 소프트웨어 개발이 어느 등급에 분류되어 있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또한 그들 주장대로 산재보험이 ‘두레’라면 국민 연금은 ‘계’인가. 요즘 심심치않게 연금 운영의 주식투자 비율 확대 기사를 보곤 한다.
‘계’에도 계를 관리하는 계주의 능력과 도덕성에 따라 깨지는 계도 많이 보아왔다. 정말 우리가 내는 세금과 공제액이 우리 실생활에 도움이 되어 필요할 때 되돌아 왔으면 좋겠다.
<이젠 대표 saralee@e-ze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