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시회 유치하자 스카우트 빗발
사진: 87년 일본에서 개최된 ‘세미콘 재팬 87’ 전시장을 찾은 필자(오른쪽)가 미국에서 온 미국반도체협회 관계자와 기념촬영을 했다.
일본에 간지 3일째, 한국에서 가져온 돈이 모두 바닥이 났다. 호텔에서 무상으로 주는 비스킷 두 조각과 녹차 몇 잔에 꼬박 3일을 보내고 나니 허기가 져서 거동이 힘들 정도였다.
금요일이 되니 행사가 마무리되고 SEMI 임원진과 일본 주최측 임원들이 같이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 친구들이 미안해서 저녁 한끼 사주고 보내려나’ 생각이 들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착잡한 마음이 앞섰으나, ‘그래도 허기진 배를 채울 수가 있겠구나’하는 마음에 초대에 응했다. 식사를 다 하고서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더니, 한국에서 계좌를 개설하라고 제안을 받았다. 속으로는 뛸 듯이 기뻤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히 일정을 협의했다.
일본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에 돌아와 세미콘코리아88 행사와 심포지엄을 성황리에 치렀다. 행사가 끝난 후, 여러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세계적인 국제행사를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치러 낸 능력을 높이 산 때문이었다.
나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생산관리와 자동화 솔루션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컨설팅을 제공하는 회사인 컨실리움사에 입사를 결심하게 됐다.
컨실리움 입사에는 조건이 있었다. 일 주일 간의 교육을 거친 후, 최종 입사 여부 및 연봉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교육에 참가한 사람들은 총 8개국에서 온 각 국의 지사장 후보들이었다. 그 중 비 영어권은 나를 포함하여 프랑스, 이태리, 대만에서 온 네 명의 후보들이었다.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으로 첫날부터 두통이 생겨서 아스피린을 3알씩 복용을 하게됐다.
이윽고 일주일이 지나서 시험을 보는데, 과제는 주어진 문제가 있고 발표 자료를 스스로 만들어 발표를 하는 것이었다. 시험 당일 프랑스와 이태리 친구는 포기하고 자기 나라로 가버렸다.
나와 같은 처지의 남은 사람은 대만에서 온 친구 왕(Wang). 왕은 나보다 먼저 발표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갑자기 이 친구가 중국말로 발표를 하는 게 아닌가. 모두가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그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 할 수가 있었다. 역시 중국인다운 배짱이었다. 많은 직원들이 박수를 치며 위로를 해줬다.
나는 밤새도록 발표 자료를 만들고 발표할 내용을 외워버렸다. 발표 후 이어지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절히 이해를 못해 난감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좋은 고과를 받고 비교적 좋은 연봉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후 계속해서 3주간의 솔루션 교육과 경영 및 영업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데 이때 내가 보낸 한 달이라는 시간은 지금까지 내가 비즈니스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값진 밑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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