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IMF구제금융을 받기 약 2개월 전, 국내 한 대기업이 영국의 웨일즈와 뉴캐슬 및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지역에 EU 시장 진출을 위한 반도체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을 때였다. 이 건으로 컨실리엄의 한국지사장이었던 나는 고객과 함께 영국을 방문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투숙하면서 나는 습관처럼 해당 지역뉴스와 월드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 BBC 방송과 미국 ABC 방송에서 온라인으로 한국에 대한 금융 위기를 전하며 전문가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먼 타국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절망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귀국하자마자 나는 다시 보따리를 챙겨 들고 국내가 아닌 해외 시장으로, 대만과 동남아 반도체 시장으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생각 할 여유가 없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우리의 현실을 수용했고,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발 빠르게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에 따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처음 시도하는 동남아 시장이니 만큼 여러 가지 시장 조사와 함께 무엇보다 현지인과의 교분을 돈독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철저하게 현지인들의 음식, 문화 및 습성에 대해 정서적으로 일치가 되도록 노력했고, 상대에 대한 예의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이때까지 나는 컨실리엄의 한국지사장 이었기에 내가 동남아에 직접 진출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었지만 나는 우리 직원들의 우수한 기술력을 무기로 해당국 고객들의 교육과 영업 지원에서부터 비즈니스를 시작했다. 고객과 함께 있는 자리라면 식사는 항상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전통 음식으로 함께 먹었고, 예절에 대한 간단한 인사는 현지어로 하도록 했다. 현지식사는 호텔이나 고급 식당이 아닌 주로 대중 음식점에서 했는데, 향료와 기름기가 입맛에 맞지 않아 현지 맥주에 의지해 음식을 삼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항상 웃는 미소로 맛있다는 말과 함께 좋은 음식을 소개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으며, 항상 그릇을 끝까지 비웠다. 가끔은 호텔에 돌아와 음식물을 토해 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현지인들과는 무척이나 가까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도움에 힘입어 우리는 7개월만에 프로젝트를 6건이나 수주를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나는 컨실리움의 아시아 지사장으로 발탁됐다. 넘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IMF로 인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게 된 우수한 인적 자원들을 컨실리움에 영입, 충원하자 마자 간단한 예절 및 업무교육을 거쳐 대만과 동남 아시아로 파견했다.
이때 나와 우리 직원들은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동안 미국본사에서 MES 및 자동화 솔루션을 가지고 와서 비즈니스를 했는데 앞으로는 별도의 조직과 팀을 구성, 우리 자체 기술로 만든 새로운 솔루션을 개발키로 한 것이다.
많은 투자 비용과 어려움이 따를 것을 예견했지만 순수한 우리기술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나가자는 포부아래, 직원 모두는 전력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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