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를 다루는 방식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주변부에 있을 때 그들은 증오의 대상이다. 그들을 중심부로 옮겨 놓으면 인간적인 체취를 발산하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레옹’을 보라. 대부분의 킬러들은 우리들의 환상 속에 존재한다. 킬러에게서 환상을 제거하면 육체가 빠져나간 외투와 같다. 합법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킬러가 아니다.
킬러들은 어둠 속에서 활동한다. 킬러들에게 다른 직업인들과 똑같은 일상성을 부여한다면 킬러의 독특한 아우라는 사라져 버린다. 그들은 금기의 영역 속에 있다.
마이클 만 감독의 ‘콜래트롤’은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로스엔젤레스(LA)의 밤거리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시공간의 선택은 이 영화의 스타일에 독특한 자장을 부여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화면의 깊이가 부족해서 공간적 원근감이 살아나지 않고 평면적인 대신 해상도가 뛰어나다. 소위 때깔이 죽이는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80%가 찍힌 ‘콜래트롤’에 등장하는 LA의 밤풍경은 매혹적이다. 그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화면이다.
다인종 거대 복합도시 LA의 심야택시 기사 맥스(제이미 폭스 분)의 택시에 빈센트(톰 크루즈 분)라는 남자가 동승한다. 빈센트는 프로 킬러다. 그는 의뢰받은 5명을 처치하고 새벽에 공항으로 가야 한다.
그는 택시를 하루 밤 동안 전세 내기로 맥스와 합의한다. 물론 맥스는 빈센트가 킬러라는 것을 모른다. 단정한 슈트 차림에 회색빛 머리와 턱수염을 가진 이 남자는 지하철 내의 시체가 6시간 뒤에 발견됐다는 에피소드를 맥스에게 들려준다.
승객들은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옆에 있는 사람이 죽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LA라는 도시의 비정함을 표현한 것이지만 맥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그에게 뒷자리에 앉아 말을 거는 빈센트는 자신에게 돈을 지불하는 승객 이상이 아니다.
마이클 만의 의도는 명백하다. ‘택시 드라이버’의 트래비스, 로버트 드니로처럼 범거리의 쓰레기들을 청소하기 위해 총을 들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 빈센트는 그냥 직업적인 킬러다.
그를 변호하기 위해 화려한 수식어들을 동원하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않는다. 우연히 청부 살인사건에 휘말린 맥스를 통해 타자에 대해 무관심한 도시인들의 보편적인 이기심을 공격한다.
그러나 마이클 만 감독은 너무 스타일을 강조하고 있다. 화려한 시각적 포장 아래 주제의 깊이는 증발되고 인물들은 내면을 숨긴 채 사건에 휘말려 허둥대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사건의 마지막이다.
도입부에서부터 여러 번 반복돼 온 예언을 실천하기 위해 감독은 인물을 지하철로 이동시킨다. 캐릭터의 대립적 축이 선명하게 살아나면서 내면의 고통까지 드러났던 ‘히트’에 비해 너무 안일하게 사건을 끌고 가고 있다.
거대 도시라는 밀림 속에서 생존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고독한 내면을 드러내기에는 영화가 너무 장식적이다. 킬러에 대한 상투적 클리세가 반복되고 있고, 복선은 암시성을 벗어나 지나치게 지시적이다.
도입부에서 맥스가 태운 여검사가 사건 해결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지 연결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대중성은 그런 손쉬운 장치로 획득되는 게 아니다. 마이클 만 감독은 너무 쉽게 이 영화에 접근한 흔적이 있다.
다만 생애 최초로 악역을 맡았다는 킬러 역의 톰 크루즈는 역시 매력 있는 배우다. 그의 매력을 더욱 강조하려고 했다면 선악의 모호한 이중적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데 더 공을 들였어야 했다.
<영화 평론가·인하대 겸임교수 s2jazz@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