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게임기자 출신이다. 출판 매체를 두루 거쳤으며 유명 웹진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돌연 게임회사에 입사해 온라인 게임 해외 수출에 힘을 기울이더니 얼마지나지 않아 지사장으로 발령받아 일본으로 출국했다.
그때가 작년 10월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으나 급변하는 온라인 게임 분야에서는 꽤 긴 시간이기도 하다. 초창기 어려운 시절을 거치고 ‘이제 좀 할만하다’고 말하는 박기원 써니YNK 일본 지사장은 예전 모습 그대로 머나먼 이국 땅 일본에서도 당당하기만 하다.
지난 24일 ‘도쿄게임쇼 2004’가 열리는 도쿄 컨벤션 센터 앞에서 박기원 지사장을 만났다. 기자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 악수를 건네는 첫 마디가 “이렇게 바쁜 시간에 왜 만나자고 했어?”라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도쿄게임쇼 기간은 단순 전시회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바이어와 관계자들이 무수히 많은 미팅을 가진다. 또 기자 입장에서 취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기 때문에 하필 서로 숨가쁜 시간에 보자고 했냐는 소리다. 물론 농담이다. 화끈하고 뜨거운 열정을 가졌던 예전 기자 시절 그 모습 그대로였다.
# 한국 온라인 게임의 전도사로
기자에서 지사장으로의 변신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일반 회사원으로 근무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사실 이건 기자라면 누구나 같은 입장이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고민도 많이 했었고. 그런데 모든 일에는 이제 때가 되었구나 하는 시점이 있잖아요. 써니YNK에 입사할 때도 이제 기자는 그만 해야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렇게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씰 온라인’을 서비스하고 있다.
근 1년 동안 고생도 많이 했다. 처음에는 먹고 자고 싸는 문제부터 시작해 의식주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기본적인 것이 해결되자 이제는 사업이 문제였다. 일본어는 학생시절 어학연수를 한 경험으로 능통한 수준이었지만 홀로 모든 것을 풀어 나가야 했고 일본에서 온라인 게임 사업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콘솔 게임이 축이 돼 돌아가는 일본 게임 산업은 PC 게임이 낯선 곳이다. 게다가 PC 온라인 게임은 더욱 입지가 좁다. 한국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도 않아 통신망이 느리고 접속하기가 힘든 구조를 가지고 있다. 통신사업자가 많고 지역마다 망이 조금씩 달라 통일된 체계가 없는 것도 문제였다.
“처음 일본에 와 보니 막막하더라고요. 국내와 너무 다른 문화, 환경, 온라인 게임에 대한 인식 부족 등 직접 몸으로 헤쳐나가야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였죠.” 지금은 많이 안정화 돼 부하 직원도 13명으로 늘어났고 다양한 사업을 일본 업체들과 전개 중이다. 하지만 아직 공개할 단계가 아니라서 자세히 설명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 일본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
국내 온라인 게임이 폭발처럼 쏟아져 나오는 사이에 일본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뒤늦게 몇몇 게임업체가 온라인 게임 사업에 뛰어 들었으나 신통치 않았고 수준도 떨어졌다. 콘솔 게임에서는 세계를 휘어 잡고 온라인 게임도 콘솔 중심으로 개발하고 있으나 PC 온라인 게임은 여전히 겁을 내고 있다.
PC 게임 자체가 일본의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북미 개발사에 비하면 떨어지는 면이 많다. 하지만 단일 국가의 게임 유저로 보면 일본의 잠재 시장은 막대하다.
제대로 된 게임만 있으면 대박 칠 여지가 충분히 있으며 일본 유저들의 특성상 게임이 성공하면 캐릭터 상품, 애니메이션, 모바일 등 다양한 콘텐츠를 수집하고 일종의 문화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게임 회사로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이것은 국내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가 입증했다. 하지만 이는 매우 드문 케이스다.
박 지사장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국내 게임 회사들은 ‘라그나로크’ 성공사례만 보고 있는데 큰 코 다칩니다. 충분한 계획과 시장 조사, 일본 유저의 특성을 분석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하지 못하죠. 여기 인터넷 접속 이용료부터 알아야 할 거에요.”
그는 ‘씰 온라인’을 안정된 기반에 올려 놓기 위해 쉽지 않았다고 털어 놨다. 현재 일본 ‘씰 온라인’의 동시접속자수는 만명 정도지만 이 정도도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같은 게임이라도 일본에서는 온라인 게임 이용료가 매우 저렴합니다. 그 이유가 있는데 인터넷 회선 비용이 한국에 비해 비싸요. 그리고 별도로 들어가는 돈도 있고요. 결과적으로 아마 한국과 비슷할걸요. 하지만 서비스 업체는 한국보다 비싼 서버 이용료를 내야 하고 유저에게서 돌아오는 이익이 적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죠.”
# 이제부터가 시작일 뿐
하지만 박 지사장은 낙관론을 폈다. 일본 업체들도 대세가 온라인 게임으로 가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콘솔에 기반한 온라인 게임이냐 아니면 PC 온라인 게임이냐하는 것.
일본 게임 회사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품이 많기 때문에 콘텐츠는 풍부하지만 이를 어떻게 온라인으로 풀어 내느냐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할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온라인 게임에 대한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한국 업체가 일본에 진출한 이유이기도 하다는 설명이었다. 단순히 온라인 게임을 수출하고 수입하는 일은 발전적인 모델이 아니며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길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제 시작입니다. 써니YNK가 지금은 ‘씰 온라인’ 하나만 서비스하고 있지만 조만간 좋은 뉴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고위 관계자끼리 주고 받는 얘기에는 매우 획기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국 개발자들은 열심히 게임을 만들어 주세요. 좋은 게임은 결코 유저가 외면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김성진기자 김성진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