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게임산업진흥법의 허와 실

‘게임산업의진흥에관한법률안(게임산업진흥법안)’의 초안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게임업계의 숙원으로 꼽혀온 산업발전을 위한 법적 토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규제 중심의 ‘음반·비디오및게임에관한법률(음비게법)’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법체계를 갖춤으로써 게임산업은 태동 20여 년 만에 이륙을 위한 굳건한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이를 반영하듯 게임업계는 진흥법 초안이 발표되자 “게임산업 중흥의 밑그림이 그려졌다”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장관교체 등 여러가지 악재로 연내 제정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던 진흥법 제정이 급류를 타면서 한껏 고무된 분위기다.

그러나 진흥법 초안은 공개되자 마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초안은 외형적으로 산업진흥, 문화장려, 등급분류 등을 모두 망라하고 있지만 실제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누락된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등급분류에 관한 조항은 비교적 세세하게 정리된 반면 정작 산업진흥에 대한 내용은 미흡해 ‘무늬만 진흥법’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문화부가 연내 제정 방침을 밀어 붙이면서 졸속 제정에 대한 우려가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법안’은 게임산업 중흥을 위한 법적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음비게법’이라는 낡은 규제 법률에 발목이 잡혀있던 산업이 진흥을 기본 골격으로 한 독자적인 법체계를 통해 대대적인 정부지원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이와 함께 진흥법 제정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에도 주목하고 있다. 독자적인 진흥법체계가 마련된다는 것은 게임이 차세대 전략산업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영화, 방송 등 주요 콘텐츠산업의 경우 독자적인 진흥법이 마련돼 사회적 대우와 인식이 달라진 것에 고무돼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 유형오 부회장은 “‘게임산업진흥법’이 제정되면 정부가 게임산업 육성을 위한 대대적인 지원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틀이 될 것”이라며 “그동안 음지문화로 치부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진흥법 초안 무엇이 담겼나

‘게임산업진흥법안’에는 산업진흥, 문화장려, 등급분류 등 크게 3개 영역을 골격으로 구성됐다. 산업과 문화진흥은 물론 게임과 관련한 등급분류 부문까지 망라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게임산업진흥법으로 체계를 갖춘 셈이다.

특히 그동안 논란을 빚어온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 업무와 관련 제21조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게임물 등급분류기관을 지정하거나 취수 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독립된 등급분류기관 마련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또 기존 4등급 분류체계를 전체이용가와 청소년이용불가로 이원화(제20조 2항)함으로써 규제보다는 산업육성에 보다 무게가 실렸다는 평가다.

진흥법 초안 마련에 참여한 김형렬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이번 제정안은 민간자율 심의제 도입으로 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졌다”며 “등급분류기관 지정제도’를 신규 도입함으로써 정부와 민간의 힘이 균형을 이루는데 역점을 둬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e스포츠 활성화(제19조)를 처음으로 법에 명시함으로써 e스포츠 육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것도 이번 진흥법 초안에서 눈길을 끄는 점이다.

이와 함께 △전문인력 양성(제6조) △기술개발의 추진(제7조) △유통활성화(제10조) △국제협력 및 해외진출 지원 △세제지원(제14조) 등 그동안 문화부가 주축이 돼 추진해온 산업진흥 정책이 모두 법조항으로 명시돼 향후 산업육성책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알맹이가 없다

그러나 진흥법 초안이 공개되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빠진 졸속 제정안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초안에는 진흥법 추진기관이 아예 빠진데다 여러가지 진흥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재원확보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음으로써 진흥법이 선언적인 의미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 영화진흥법의 경우 제3장 영화진흥위원회와 제6장 영화진흥금고 항목을 별도로 마련해 진흥법의 추진기관과 재원확보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제6장 영화진흥금고에는 재원으로 문화산업진흥기금의 출연금, 문화예술진흥기금의 출연금 등을 명시해 국고와 별도로 출연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게임산업진흥법 초안에는 제12조 재원확보 2항에서 문화관광부장관이 게임산업의 진흥금고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만 짧막하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여러가지 진흥법 조항이 명시되더라도 정작 추진 주체와 재원이 없어 사문화될 수 있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진흥법 초안에는 60% 가량이 등급분류 및 처벌에 대한 내용이고, 정작 진흥과 관련된 내용은 30%에 지나지 않아 진흥법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라며 “더구나 추진기관이나 재원확보 등 핵심적인 내용이 빠짐으로써 법이 제정되더라도 정부 지원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같은 우려가 확산되자 문화부가 연내 법 제정 원칙만 내세워 졸속 입법을 밀어부치고 있다는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영등위와 갈등을 빚어온 등급분류 업무를 문화부를 이관하는 선에서 문화부의 실속만 챙기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문화부 관계자는 “추진기관이나 재원확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안을 놓고 검토했지만 입법과정에서 기획예산처나 정통부 등 다른 정부부처로부터 많은 이견이 예상돼 명시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번 진흥법은 처음 제정되는 만큼 다소 선언적인 형태에 그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향후 법 개정과 시행령을 보강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재원확보나 추진기관에 대해 명시하지 않는다면 진흥법은 유명무실한 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법에 명시돼 있지 않은 내용을 향후 시행령으로 보완할 때에는 강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지영기자 장지영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