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료방송의 핵심 모듈인 POD(Point Of Deployment·수신제한모듈) 시장에서 미국 벤처기업인 SCM이 국내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에 가격 인하를 조건으로 대규모 물량 개런티를 요구, 이 분야 시장 독점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유일한 POD 관련 개발·생산업체인 SCM은 최근 디지털전환중인 SO들을 대상으로 ‘가격 인하를 미끼로 한 대규모 물량 개런티’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디지털전환 초기 상태인 국내 SO들이 SCM의 물량 개런티를 받아들일 경우 향후 국내 POD모듈 개발업체가 개발·양산에 성공해도 시장이 없어 고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POD모듈은 케이블방송용 디지털셋톱에 삽입되는 별도의 카드로 수신제한시스템(CAS)업체의 스마트카드와 연동해 인증받은 사용자만 유료방송을 시청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적인 장치. 문제는 정보통신부가 올 초부터 케이블카드(POD모듈+스마트카드) 분리 장착를 의무화한 가운데, 현재 유일한 개발업체인 미국 SCM이 디지털전환중인 SO를 상대로 ‘가격 인하를 미끼로 한 대규모 물량 개런티’를 요구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전세계를 통틀어 현재 우리나라의 디지털케이블방송규격인 오픈케이블방식을 맞춰주는 POD모듈은 SCM이 유일하다”며 “모토로라의 케이블카드는 CAS업체이기도 한 모토로라가 국내 시장에서 CAS사업자로서 자리잡지 못해 대안이 못된다”고 설명했다.
◇현황=국내에서 디지털전환에 나선 SO는 씨앤앰커뮤니케이션·CJ케이블넷·큐릭스·KDMC(태광계열 포함)·제주케이블 등과 디지털미디어센터(DMC)사업자인 BSI 등이다.
현재 SCM과 계약한 업체는 BSI, CJ케이블넷, 미래온라인 등이다. 업체별로 협상 가격과 물량을 극비에 부치고 있으나 업계에선 BSI가 ‘10만대 이상 판매될 경우 24달러 이하’를 조건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케이블방송 시스템 구축업체인 미래온라인은 최근 제주케이블에 디지털방송을 구축키로 하며 지난달 SCM 측과 ‘10만대 이상 물량-25달러 이하’로 계약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SCM은 협상중인 씨앤앰과 큐릭스에는 ‘물량 개런티가 5만대 이하일 경우 28달러 이상이지만 20만대 이상일 경우 24달러 미만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SCM, “제2의 퀄컴 노린다”=POD모듈의 경우 국내 개발업체인 인터랙텍(대표 이병렬)이 세계 최대 CAS업체인 NDS와 손잡아 내년 2분기 양산을 목표로 삼고 개발중이다. 국내 디지털케이블방송 본격 상용화시기가 내년 1∼2분기이기 때문에 SCM의 물량 개런티 부분만 피해가면 경쟁구도가 확립될 수 있다. SCM은 그러나 SO별로 각 1∼2년치 수요에 해당하는 10만대 이상의 물량개런티를 요구하고 있다.
인터랙텍의 이병렬 사장은 “BSI측과 제휴를 맺어놓긴 했지만 현재로선 한 건의 판매 계약도 하지 못한 상태”라며 “선점업체인 SCM이 1∼2년치 수요를 모두 가져가면 인터랙텍으로선 시장없이 이 기간을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SCM과의 협상에서 가능하면 적은 물량에다 낮은 가격으로 계약하기를 원하지만 독점업체인 SCM의 요구를 마냥 거절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MSO의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쪽에서 구매수량을 확답하지 않으면 SCM 측이 판매가격조차 통보해주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 폐해 대책 마련해야=미국 SCM이 물량 개런티 정책을 통해 국내 시장내 경쟁업체 진입을 막고 독점을 굳힐 경우 향후 케이블방송 시장내 영향력이 막대해질 전망이다.
업계 한 사장은 “디지털케이블셋톱에 들어가는 모든 케이블카드가 독점이라면 향후 SO들이 가격 인하를 요구할 경우 먹힐 리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 전문가는 “POD모듈은 디지털케이블방송에서 신규 서비스의 론칭시기에 맞춰 원활히 업그레이드돼야 하는데 독점업체가 안 따라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즉 SCM은 미국 시장을 노리고 있으며 미국과 같은 오픈케이블방식인 국내 시장은 초기 시장 선점 및 레퍼런스에 불과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국내에서 미국에서 서비스하지 않는 신규 서비스를 원할 경우 이의 지원을 위해 별도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개연성이 높다.
성호철·권건호기자@전자신문, hcsung·wing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