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올림픽’으로 불리는 ‘월드사이버게임즈(WCG) 2004’에서 한국이 참가국 가운데 가장 많은 메달을 따고도 준우승에 그쳐 2년 만의 정상 탈환에 실패했다.
그러나 대회 사상 처음으로 국내가 아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이번 대회는 전세계 주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명실상부한 ‘e스포츠 올림픽’으로서 발전 가능성을 한껏 높였다.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스타크래프트’에서 금·은메달을 휩쓸고 8개종목에서 59개 참가국 가운데 가장 많은 6개의 메달(금2 ,은3, 동1)을 획득했으나 금메달 수에서 앞선 네덜란드에 밀려 종합 2위에 머물렀다.
지난해 3위권 밖의 저조한 성적을 낸 네덜란드는 ‘프로젝트 고담 레이싱’ ‘언리얼 토너먼트’ ‘워크래프트3’ 등에서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따내 신흥 e스포츠 강국으로 떠올랐다. 이번 대회 개최지인 미국은 금메달 2개, 동메달 1개로 3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이로써 1회와 2회 대회에서 연속 우승한 뒤 3회(3위)와 4회 대회에서 연거푸 정상 자리를 내줘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자존심을 구겼다.
하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약세를 보여온 ‘카운터 스트라이크’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올해 처음 도입된 레이싱게임 ‘니드포어스피드’에서도 은메달을 따내는 등 전 종목에서 고른 성적을 보여 여전히 우승후보로서 강한 면모를 보였다.이번 대회는 WCG가 세계적인 e스포츠 대회로 도약하는 ‘터닝포인트’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해외에서 처음으로 대회가 치러져 ‘국내용’이라는 꼬리표를 뗐을 뿐 아니라 참가국이나 행사 규모에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 세계적인 게임대회로서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특히 뉴욕타임스가 라이프 섹션에서 2개면에 걸쳐 WCG 뉴스를 전한데 이어 CNN, ABC, AP, 로이터 등 세계 유수 언론이 WCG 관련 뉴스를 대서특필하면서 지금까지 대회와 완전히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했다. 대회에 참가한 외신 기자수는 250여명에 달했다.
참가국도 59개국으로 지난 대회보다 4개국이 늘어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쿠웨이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그동안 참여가 저조했던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선수들이 참가, 지구촌 축제로서 한발 더 다가섰다.
삼성전자가 전담하다시피한 대회 스폰서(2500만 달러 규모)에 엔비디아, 크리에이티브 등 해외 유수기업이 참가한 것도 고무적이다. 지난해까지 고작 80만달러에 불과해 ‘삼성 집안잔치’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해외기업 스폰서 규모는 올해 200만달러로 급증했다.
그러나 여전히 적은 관중과 미숙한 대회 운영은 ‘e스포츠 올림픽’이라는 구호를 무색케했다.
이번 대회기간 나흘 동안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4000여명에 불과, WCG가 여전히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개막식 직전까지 참가국 수가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는가 하면 미국 비자가 나오지 않아 페루, 이란, 베트남, 그루지아 선수들이 대거 불참하는 등 운영상 허점도 국제 대회와는 어울리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WCG를 주관하는 ICM 정흥섭 사장은 “세계 유수 언론이 일제히 WCG 뉴스를 전하면서 미디어를 통한 WCG 자체의 인지도를 높이는데는 성공했으나 일반인을 상대로 한 대회 프로모션은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다음 싱가포르 대회에서는 미디어와 관중,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장지영기자 장지영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