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산업이 일취월장 발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게임문화는 아직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문제는 게임방송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상파 방송에서는 10년 전부터 영화 정보프로그램이 자리잡았지만 게임방송은 이제 도입된지 3년 밖에 되지 않았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게임 정보 프로그램이 첫 도입된 것은 지난 2001년. SBS가 ‘게임쇼, 즐거운 세상’의 문을 열면서 첫 전파가 송출됐다. ‘게임쇼, 즐거운 세상’의 산파역을 맡은 문동열 SBSi 프로듀서(PD)를 만나 방송을 통해 본 우리 게임문화의 현주소에 대해 들어봤다.
“방송과 게임의 첫 만남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게임 방송이 기획되고 지상파 방송의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주위에서는 아이들 오락을 프로그램으로 편성하는 것은 전파 낭비라는 비판까지 있었죠. 결국 사장님을 모시고 프리젠테이션을 거친 후에야 늦은 새벽 시간이라도 편성될 수 있었습니다.”
게임산업이 무르익기 시작한 2000부터 국내에는 각종 게임 전시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SBS는 이런 게임전시회의 후원을 맡은 것을 계기로 게임의 가능성을 엿보고 프로그램 기획에 들어갔다. 문동열 PD는 2000년 하반기 SBSi에 합류하면서 ‘게임쇼, 즐거운 세상’의 기획에 들어갔다. 하지만 2001년 2월 첫 전파를 타기까지 기획이 끝나고서도 주변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수개월을 보내야 했다. 그만큼 게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부정적인 시기였다.
# 방송인과 게임인의 갈등
우여곡절 끝에 전파를 송출했지만 게임 프로그램 제작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방송 전문 인력들은 게임을 모르고 게임전문가들은 방송을 몰랐기 때문이다. 당연히 서로 의견충돌도 잦았다. 또 게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 조차 생소한 만큼 방송 대본 만드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게임전문가로 영입된 문 PD는 초기 대본을 일일이 검토하는 일까지 도맡아야 했다. 제작진부터 출연진까지 모두 게임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어느 것도 쉬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성과도 있었다. ‘게임쇼, 즐거운 세상’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MBC가 ‘줌인 게임천국’을, KBS가 ‘게임스테이션’을 잇따라 편성했다. 시청률에 죽고 사는 방송 풍토상 경쟁이 심해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게임 문화 활성화라는 외로운 싸움의 우군을 얻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게임 마니아에서 프로듀서로
문 PD는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유달리 좋아했다. ‘파이널 판타지’ ‘드래곤퀘스트’ 등 RPG 장르는 가리지 않고 체험하는 마니아. 아직도 그의 집에는 패미콤부터 메가드라이브, 3DO, 새턴 등 고전 게임기부터 플레이스테이션2, X박스 등 최신기기까지 전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게임기들이 갖춰져 있다.
게임이 좋아 대학 2학년 때는 친구들과 대학생 벤처기업인 ‘코디넷’을 만들기도 했다. 이곳에서 그는 인터넷웹진 ‘넷와이더’의 편집장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후 각종 PC잡지의 게임 필자로 활약하는가 하면 각종 통신의 게임동호회 시샵으로 활동할 만큼 그의 생활은 게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런 그가 SBSi와 인연을 맺은 건 2000년. ‘게임쇼, 즐거운 세상’의 기획을 위해 PD로 낙점되면서부터다.
# 게임문화 아직은 2% 부족
“게임산업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아직 문화기반은 크게 부족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게임 저변이 약한 것은 영화산업과는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죠.”
게임 방송이 지상파 전파를 탄 지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편성 시간대는 최악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프로그램이 주말 황금시간대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게임방송은 심야도 아닌 새벽시간에 겨우 자리를 할당받는 처지. 이런 얘기를 꺼내자 문 PD도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문을 연다.
“영화가 갖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 배우와 감독 등 제작자들의 이야기를 화제로 만드는 스타시스템, 여기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1년에 한번쯤 영화를 관람하는 구조까지 영화는 대중문화의 중심을 확고히 지키고 있습니다. 반면 게임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죠. 판타지 일색의 온라인 게임, 스타를 배출하지 못하는 풍토,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문PD는 게임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온라인 게임을 소개하면 자막으로 게임명을 넣지 않는 이상 너무 비슷해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반면 PC나 콘솔 게임은 그래픽이 화려해 전달효과는 높지만 아직 유저층이 엷어 반응이 시원찮다. 이런 이유로 한 코너, 한 코너를 기획하는 일도 쉽지 않은 실정.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자 기자는 그의 고충을 알면서도 언제쯤 영화 프로그램과 비슷한 시간에 게임방송이 편성될 수 있을 지 짓궂게 물어봤다.
“글쎄요. 아직도 4∼5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게임을 자발적으로 즐기는 동호회 모임을 활성화시키는 등 저변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할 듯합니다. 사회의 부정적 인식을 벗어나기 위한 게임업체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시간은 좀 걸리지 몰라도 디지털엔터테인먼트의 미래는 게임에 달려있다는 점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김태훈기자 김태훈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