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다날 박성찬 사장(1)

<1>건설업서 이통분야로 전업 

다날을 창업한 이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전에 무슨 일을 했나?”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날을 97년에 창업했으니 나이로 보건데 그 이전 이력이 궁금하기도 할 법도 하다. 다날 창업 당시 필자의 나이가 서른 다섯이었지만 그 때 이미 사업경력은 10년을 넘어서고 있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82년, 학비를 위해 시작한 공사장 아르바이트가 내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되어 곧바로 내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 활황이던 건설경기는 나에게도 큰 부를 일구어 주었다. 직원이 수백여명에 이르는 사업체를 확장해 가며, 건설현장에서 뚝심을 키워갔다. 필자의 화끈함과 추진력은 그런 분위기에서 만들어졌다.

건설분야에서 나름대로 부를 축적했지만 끊임없이 필자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낯선 미지의 영역에 대한 도전의식에 불을 당겼다. 마침 무선호출기에 이어 휴대전화로 옮겨가던 이동통신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그 표적이 되었다.

처음에는 무선호출기에 숫자 키패드를 이용해 한글을 입력할 수 있는 ‘바로글’이라는 제품을 만들었다. 그 제품을 SK텔레콤에 납품하는게 가장 큰 과제였다. 이 때부터는 영업사원이 되어 일선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건설업을 하던 그대로 운전기사가 딸린 최고급 승용차로 임원진을 찾기도 했으나 이내 분위기를 바꿨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실무자 설득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을 설득하고 이동통신사의 문을 하나하나 열어가기까지 일단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치지 않는 특유의 근성을 십분 발휘해야 했다. 나중에야 들은 얘기지만 그런 필자를 두고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찐드기, 스토커라는 별명까지 나돌았다고 한다.

이동통신사로의 길은 뚫었으나 ‘바로글’만으로는 회사 성장이 가능할 리 없었다. 또한 당시는 휴대전화 보급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던 때였다. 그 때 준비한 것이 아직도 다날을 벨소리회사로 기억하게 만드는 벨소리 다운로드 서비스다.

다날은 700-5857이라는 인식번호로 뒤늦게 뛰어 든 셈이지만 2000년 1월 서비스 개시와 함께 과감하게 TV광고를 진행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하는 방식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뭔가 앞서도 차별화된 서비스를 위해 무선 인터넷이 앞서 있던 일본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당시 단음의 미디음이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이미 다중화음 벨소리가 보편화된 상황이었다. 로옴은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칩을 공급하고 있었다.

마침 운이 따랐는지 당시 다날이 위치한 구로동 사무실 바로 위층에 로옴전자코리아 사무실이 있었다. 자세한 정보를 알기 위해 만났던 담당자와의 오랜 미팅 끝에 오히려 로옴의 3폴리 칩보다는 야마하의 4폴리 칩이 국내에 더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때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일본에서 야마하 칩을 들어오면서 당시 SK텔레콤의 엔톱(N-top)팀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국내에도 화음벨소리 시대가 열려야 한다는 강한 당위성을 가지고 말이다. 결국 2000년 하반기부터 무선인터넷을 이용한 화음벨소리 서비스가 시작되었고 다날은 무선인터넷 벨소리 다운로드를 처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는 첫 성취감을 맛보았다. psc@dana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