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방문지는 맨해턴 아래 쪽에 위치한 뉴욕대. 상호작용 통신 프로그램(ITP·Interactive Telecommunications Program) 대학원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ITP는 1979년 조지 스토니와 레드 번즈에 의해 설립된 대체 미디어, 상호작용이 가능한 미디어에 대한 연구를 하기 위해 만든 대학원 과정이다. 이곳에서는 MIT 미디어 랩과 유사하게 기술자, 이론가, 디자이너 및 예술가들이 실제 세계 및 디지털 세계에서의 상호작용 가능성을 극대화시키는 다양한 실험을 추구한다. 학생수도 230명에 이른다. 시설 규모는 약 450평. 각종 PC 및 컴퓨팅 기기와 프로토타이핑을 위한 공작실, 펌웨어 프로그래밍 스테이션, 무선 네트워크 등이 설치되어 있다.
ITP의 연구의 핵심은 상호작용이다. 학생과 교수진들은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컴퓨터 매체, 임베디드 컴퓨팅에 대한 연구와 설계를 수행한다. 연구분야는 컴퓨터 기술의 사회적 응용, 물리적 컴퓨팅, 인터랙티브 게임, 멀티미디어 예술 등 하이테크와 예술의 접목이라는 점에서 실용성보다는 인간이 추후 건축 공간 내에서 어떻게 다양한 지능형 장치들과 상호작용을 하게 될지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예를 들어, 카메라로 사람의 영상을 획득하고 영상의 전후좌우 측면 등 다양하게 각도를 바꿀 수 있는 기술을 전구와 나무판자를 이용해 예술품처럼 만들기도 한다. TV 화면에 나오는 멀쩡하던 빌딩이 TV에 충격을 가하면 무너진다던지, 앉아 있던 새가 TV를 손으로 툭 치면 날아간다든지 하는 방식의 작품들도 보인다. 그러고 보니 전시된 모든 제품들이 관람자 동작이나 위치 신호 변화에 따라 상황이 다양하게 변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들은 가정 내에서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거주공간의 가전기기들이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기계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계와 기계간의 네트워크 연결로 끝난 홈네트워크가 아니라 기계와 인간의 교류가 어떻게 일어나고, 이를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주거공간, 삶의 공간으로서의 디지털 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어야만 가능한 세계다.
이곳의 졸업생은 주로 인터랙티브 아트, 방송국, 웹 디자이너, 전면 디스플레이가 되는 건물 외형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다고 한다. MIT 미디어 랩과 비교해 기술적인 면을 강조하기보다는 아이디어의 참신성 등이 돋보인다. 미디어 랩과 달리 스폰서십이 아닌 자비로 이러한 작업들을 진행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일주일 간 둘러본 미국의 홈네트워크 기술은 상당히 실용적이었다.
엔지니어가 기술개발을 주도해 이를 사용자에게 ‘살포’하는 방식이 아닌 사용자가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가를 찾아 서비스를 만드는 ‘사용자 중심’, 바로 그것이었다. 미국의 홈네트워크 연구는 공학 전공자 뿐만 아니라 인문학, 예술가 등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공간이었다. 거주하는 사람의 집안 환경이 거주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거주공간 자체를 역동적으로 바꾸려는 이들의 사고는 진정한 의미의 스마트 홈을 추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