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곳(SKT)은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서 문제이고, 다른 곳(KTF)은 너무 낮아서 문제다.’ 양대 모바일 게임 서비스 프로바이더(SP)인 SK텔레콤과 KTF의 상반된 게임 콘텐츠 론칭 전략이 논란을 빚고 있다.
최대 SP인 SKT는 철저한 사후 검수와 서비스 콘텐츠 제한으로 진입장벽이 더 높아져 많은 중소 콘텐츠개발업체(CP)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고, KTF는 무분별한 신규게임 론칭으로 전체적인 콘텐츠 라이프 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져 불만이다. 일각에선 SP 탓만 하지말고 CP들 스스로도 이제는 ‘양떼기’보다 질을 높이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SKT와 KTF의 대조적인(?) 게임 CP 선정 및 서비스 전략이 논란을 빚고 있는 근본 원인은 구조적으로 국내 모바일게임시장의 수급체계가 기형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는 SP는 SKT, KTF, LGT 등 3개로 국한돼 있는데 반해 게임을 개발해 공급하는 CP들은 무려 300곳을 웃돌고 있다. 올들어선 게임산업이 차세대 성장동력이자 고부가 유망산업이란 인식이 확산되면서 참여업체가 더욱 늘어 CP수가 거의 500곳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다보니, 업체간 경쟁은 낙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에 비유할만하다. 수 백편의 영화가 제작되는데 이를 걸어야할 극장은 고작 3곳에 불과한 셈이다. 굴지의 대기업인 SP들은 인프라 개선을 통해 ‘스크린’ 수를 늘리고, 선진화된 CP 운용체계를 통해 CP경쟁력을 높이고, 시장 파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힘써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불균형적 수급체계가 지속될 경우 전체적인 CP들의 매출 및 수익성이 하향 평준화돼 재투자 위축→콘텐츠 퀄리티 저하→유저 이탈 가속→시장 파이 축소→모바일게임산업 낙후 등 ‘빈곤의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 ‘SKT’
“다른 이통사에서 서비스해 어느정도 성공했는 데도 유독 SKT에선 검수통과조차 못했습니다. 정말 신생 개발사가 SKT에 들어가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SKT 사전 검수에서 탈락한 한 중소 CP사장의 푸념이다. 실제 신생 모바일게임 업계가 KTF나 LGT를 거치지 않고 바로 SKT 검수를 통과하면 이곳저곳에서 축하전화까지 받을 정도. 그만큼 SKT의 진입장벽은 높다.
최근엔 신규 게임들이 물밀듯이 쏟아지면서 이 장벽이 더욱 높아졌다. 유저수가 가장 많은 최대 시장이어서 CP들이 대개는 SKT를 타깃으로 게임을 만들지만,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 한 주에 서비스되는 신규 게임은 평균 6개에 불과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수 백개업체에서 게임을 쏟아내는데, SKT에서 실제 서비스될 확률을 5%도 안되는 것 같다”고 볼멘소리다. 더구나 SKT는 KTF나 LGT와 달리 개발된 게임을 놓고 검수를 한다. 이에따라 업계 일각에선 SKT 콘텐츠 론칭을 좌지우지하는 게임평가단을 ‘저승사자들’이라 부른다. 특히 모바일게임은 이통사별로 플랫폼이 달라 SKT 검수에서 탈락한 게임은 다른 이통사에 서비스하기 위해선 컨버젼 과정을 거쳐야한다.
상용 게임 개발 경험이 없는 CP들에겐 더욱 넘기 힘든 장벽이다. SKT가 ‘BP(비즈니스 파트너)’라는 시스템을 통해 매출기여도가 높은 BP들의 콘텐츠를 선구매하기 때문이다. CP 관계자들은 “이통사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SKT가 피아구분을 확실히하는 추세”라며 SKT 검수 통과가 많은 CP들의 생사를 좌우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 모바일게임의 무덤(?) ‘KTF’
신규 게임 론칭에 인색한 SKT에 비하면 KTF는 굉장히 후한 편이다. 이미 개발한 게임을 들고 생사여탈권을 가진 평가단의 검수를 통과해야 하는 SKT와 달리 KTF는 기획안으로 검수를 하기 때문에 부담도 훨씬 덜하다. 이에따라 KTF는 한때 모바일게임업체들에게 새로운 돌파구 인식돼왔다. SKT 검수 통과가 자신없는 CP들은 KTF에서 서비스에 성공한 후 SKT를 찾는 사례가 빈발했다. 아예 SKT를 포기하고 KTF에 주력하는 CP들도 많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생겼다. 너무 과하다는 점이다. 서비스 자체를 신규 게임에 의존하다 보니 SKT나 LGT에 비해 3배 가까운 게임이 첫선을 보인다. 자연히 CP들의 최소 수익 창출을 보장키 어려울 정도로 라이프 사이클이 짧아지고 있다. 실제 KTF가 지난달 발표한 상반기 게임 출시동향 자료에 따르면 KTF 게임매출 중 신규 게임의 비중이 60%를 넘는다. 갬블이나 일부 스테디셀러를 제외하고 KTF에 론칭되는 게임의 ‘생존기간’은 1달을 넘기 어렵다는게 중론이다.
KTF 협력 CP의 한 마케팅담당자는 “그동안 모바일게임의 평균 라이프 사이클이 계속 늘어왔으나 KTF는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 적지않은 게임이 1주를 버티기 어렵다. CP들 사이에선 KTF로 갔다가 자칫하면 빛도 못보고 죽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 메이저급 CP사장은 “신규 게임 중심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지다보니 마치 제조업의 자동생산라인처럼 대량의 게임을 찍어내는 곳만 유리하다”면서 “이러다보니 개발팀을 늘리기 위한 인력 빼가기가 기승을 부리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퍼블리셔만 늘어나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 갈길 잃은 ‘CP들’
모바일게임업계의 선두주자 컴투스는 얼마전 코스닥 입성을 노크하다 코스닥위원회 예비심사에서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그 이유중 하나가 매출 창출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 시장은 1500억원 규모에 불과하지만, 업체가 400개가 넘을 정도로 난립해 있고 이통사 정책에 따라 매출이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부분을 문제삼은 것이다. 날로 진입장벽을 높이고 있는 SKT, 완전 개방형 시스템을 도입한 KTF. 나름대로 머리를 짜는 정책이지만,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다수의 CP들이다.
CP들은 SKT로 가자니 검수 통과 리스크가 너무 크고, KTF로 가자니 개발비를 뽑는 것 조차 만만치 않아 고민이다. 특히 KTF는 단일 매뉴에서 수 십개 게임이 경쟁하다 보니 전반적인 CP당 다운로드수가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 한 신생 CP사장은 “최근 대박 타이틀은 지극히 한정돼 있어 고르게 팔리는 짧은 생명의 게임들이 무차별적으로 양산되고 있다”면서 “이는 CP들에게도 독이 되지만 결국 유저들의 로열티를 떨어뜨려 시장기반을 흔드는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CP들도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스러울 수 없다는 자조섞이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뜨는 장르다 싶으면 아류작들이 판을 치고, 창작 게임보다 라이선스를 선호하고, 퀄리티 보다는 캐리어(이통사)와의 관계를 더 중시한 결과란 얘기. 컴투스 박지영 사장은 “시장은 작은데 너무 많은 업체들이 파이를 나눠가지고 있어 문제”라고 했으며 게임빌 송병준 사장은 “아마도 대한민국 최고 창업 아이템은 모바일게임이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같은 기형적 구조가 계속 이어진다면 모바일게임산업이 뿌리째로 흔들릴 것”이라며 “이통사, 퍼블리셔, 개발사 등 모든 주체가 산업의 파이를 키우고, 유저를 먼저 생각하는데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