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게임 시장의 공급 과잉과 이로 인한 후유증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시장 규모에 비해 참여 업체 수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는 약 1500억원대에 불과하지만, CP 수는 무려 500곳에 육박한다는 게 정설이다. 법인 형태가 아니라 퍼블리셔에 의존하는 팀 형태 개발사까지 포함하면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러다보니 이통사를 잡기 위한 물밑 경쟁은 치열해질 수 밖에 없으며 이통사 관계자들은 ‘수퍼갑’이란 닉네임까지 듣는다. 이통사 스스로도 물밀듯이 쏟아지는 콘텐츠중 서비스할 콘텐츠를 선택하는 부담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CP수가 이처럼 기형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모바일게임 시장이 장기적으로 사업성이 좋은 유망산업이란 점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면엔 PC, 온라인, 콘솔게임에 비해 모바일게임의 진입장벽이 극히 낮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쉽게 시장진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PC나 비디오게임기에 비해 휴대폰의 하드웨어 및 플랫폼 환경이 낮다보니, 그래픽·프로그래밍·사운드 등 게임의 완성도 보다는 기획력으로 게임의 성패가 갈리게되고, 이에따라 누구나 쉽게 모바일게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게임사업 진출을 추진하는 IT기업 A사 사장은 “게임이 뜬다는 인식이 확산되자 게임사업을 하고싶은데, 콘솔이나 온라인게임은 투자비가 커서 자연히 모바일쪽에 진출하는 기업이나 창업이 느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시장규모나 성장속도에 비해 공급업체가 지나치게 빨리 늘어나고 있는게 문제”라며 “이같은 나눠먹기 구조아래선 산업발전이 어려운 만큼 진입장벽을 높여서라도 수급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벤처캐피털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바일게임이 성장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선 동감하지만, 업계 1위업체의 매출이10억원도 채 안되는 현 구조아래선 선순환적 산업구조를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진입장벽을 높여 공급사를 줄이더라도 하루빨리 1, 2개라도 코스닥 스타기업을 배출해 성공 스토리를 만드는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SKT, KTF, LGT 등 3대 이통사가 폐쇄적으로 서비스를 독점하는 상황에서는 이통사들이 시장 파이를 키우기 위해 더 많은 투자와 배려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관련, CP관계자들은 “모바일게임이 이통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보니, 게임 자체 보다는 전화사용자를 늘리기 위한 부가 수단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무선망의 완전한 개방을 통해 서비스사업자를 대폭 확대하던 지, 이통사 스스로 장기적 안목에서 모바일게임 육성과 신규 시장 창출을 위한 정책적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통사 정책의 투명성을 더욱 높여 캐리어(이통사)-CP 공생관계를 더욱 확고히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CP들 스스로도 제살깎기식 물량 경쟁을 자제하고, 퀄리티를 지속적으로 높여 충성도 높은 파워 유저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금처럼 마치 공장에서 소비재를 찍어내는 듯한 사업구조에선 총체적 퀄리티 저하와 이로인한 유저이탈로 모바일게임 산업 성장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메이저급 CP 사장은 “현실적으로 론칭 자체에 대한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투자비를 더 늘려 완성도 높은 게임을 개발한다는게 쉽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고 퀄리티 게임이 많이 나와줘야 유저들을 끌어모으고, 그래야 궁극적으로 시장 파이가 커져 CP들의 매출단위가 커진다는 점을 CP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모바일게임 시장 파이를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무선망 개방이다. SKT, KTF, LGT 등 이통3사가 서비스망을 독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CP들의 경쟁이 격화되고 시장 성장에도 한계가 많다는 것이다. 명분도 있다. 경쟁국들이 대부분 단말기업체나 MCP(마스터CP) 중심의 개방형 제도인데다 정통부가 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같은 구조아래서 무선망의 완전 개방이 오히려 모바일게임 시장의 파이를 늘리는데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우선 망개방이 되면 CP들이 서비스사업자(SP)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지고, 다양한 서비스 주체(SP)들이 출현해 차별화된 마케팅을 통해 유저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지금처럼 어렵게 게임을 개발해 놓고도 이통사 검수를 거치지 못해 서비스를 못하는 CP들에게도 새로운 활로가 열릴 전망이다. 특히 사용자들의 입장에선 현재와 달리 게임 선택의 폭이 아주 넓어지게 된다.
그러나, 무선망 개방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CP들이 탄생할 것으로 보여 CP간 콘텐츠간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완전 무한경쟁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렇게되면 우선 가격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사실 모바일게임은 시장 규모는 작았지만, 유료화 모델이 잘 정비돼 어느정도 사업기반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망개방과 이로인해 완전 경쟁시대가 열리면, 가격인하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 CP 관계자는 “개발사-퍼블리셔-캐리어 등 모바일게임 서비스 주체간의 공생공존 관계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망개방이 이루어지면, 가격질서 붕괴 등 큰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지금같은 이통사 진입장벽 보다 더 놓은 시장의 보이지않은 장벽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망개방이 대세이긴 하지만, 이에 앞서 모바일게임 수급 시스템을 선진국형으로 재정비하고, 정부 정책의 방향을 시장파이 확대와 유저들에게 둘 수 있는 대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중배기자 이중배기자@전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