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투 게임의 독톡한 장르를 구축한 ‘모탈 컷뱃’은 잔인한 표현과 독특한 분위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예쁘거나 멋진 캐릭터로 점철된 게임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며 언더그라운드의 마니아층을 만들어 낸 게임으로 이름이 높다.
나이가 좀 먹은 유저라면 예전 오락실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던 인상적인 격투 게임 하나를 기억할 것이다. 사진을 잘라 붙인 듯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선혈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말 그대로 혈투를 벌이는 게임. 특히 플레이가 끝나는 순간, 특정한 스틱과 버튼 조합으로 낼 수 있는 ‘Fatality’ 기술은 필자를 포함해 당시의 수 많은 어린이들에게 놀라운 잔혹함이었다.
어떻게 이런 게임이, 어린이들이 대부분이었던 오락실에 버젓이 들어와 있었는지 놀라울 노릇이었다. 하지만 기존에 즐기던 예쁘장한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격투 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서양에서도 ‘폭발적!’ 이 세 음절의 단어로 그 분위기를 말할 수 있다.‘모탈 컴뱃’을 단 한 번이라도 플레이해 본 유저이라면 바로 느낄 수 있었던,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바로 ‘잔혹함’이다.
쓰러지기 직전의 상대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해 심장을 뽑아낸다든지, 척추를 온전히 뽑아 내는 등의 연출은 기존의 게임에서 볼 수 없는 충격적인 것이었고 단숨에 최대의 매력이 됐다.
국내에서는 연령에 제한 없이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북미에서 이 작품은 19세 이용가로 분류 받았다.이 핏빛 게임의 제작사는 미드웨이. 국내에 그다지 알려진 제작사는 아니지만 북미와 유럽의 게임 시장에서는 잘 알려진 게임 유통 겸 제작사다.
이 회사는 과거 윌리엄즈 엔터테인먼트라는 이름으로 ‘스매쉬 TV(Smash TV)’같은 뛰어난 명작들을 만들어내던 회사였다. ‘GTA’ 시리즈로 유명한 록스타 게임즈에게 성인물 최고의 자리를 넘겨준 것처럼 보이지만 ‘모탈 컴뱃’ 시리즈가 보여주는 것처럼 극도의 폭력성을 포함, 게임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성인용 냄새를 대놓고 드러내는 게임을 만들었다.
이런 작풍(作風)의 결실이 바로 ‘모탈 컴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은 3D 그래픽 분야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놀라울 정도의 멋진 그래픽을 보여주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그림 한 장, 한 장을 최대한 예쁘게 그려서 보여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이유로 일부 게임 제작사에서는 실제 배우의 사진을 찍어서 그것을 그대로 게임에 사용하는 기술이 유행했다.
최대한 현실에 가까운 화면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의 한 방향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모탈 컴뱃’은 그런 실제 사진과 함께 ‘잔인함’을 도입했다. 이 컨셉은 게임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덕분에 미드웨이도 당당히 게임계에 우뚝 설 수 있었다.엄밀히 말해 ‘모탈 컴뱃’의 게임성은 당시 오락실의 주류였던 격투 게임 장르의 다른 경쟁작보다 부족했다. 하지만 실제 배우의 움직임을 보는 듯한 독특한 느낌과 특유의 잔인함이 조화를 이뤄, 많은 유저들을 골수팬으로 만들어갔고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그럭저럭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영화 두 편과 TV 드라마 시리즈, 만화 등 게임이 아닌 다른 다양한 형태로도 만들어졌다.
아쉬운 점은 ‘모탈 컴뱃’의 성공 이후의 움직임이다. 이때부터 그들은 잔인함과 실사로 점철된 게임들만을 양산했다. 게임성이나 재미보다 그런 분위기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그 게임들은 잘 만들어진 좋은 게임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미드웨이는 천천히 ‘이상한 게임만을 만드는 이상한 회사’로 취급을 받았다. 단지, ‘모탈 컴뱃’의 후속작들만이 그들을 지탱해줄 수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를 극명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 2002년에 발매된 ‘모탈 컴뱃: 데들리 얼라이언스’다. 그들의 매력이었던 잔혹한 컨셉과 자사의 독특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채, 격투 게임으로서의 완성도를 신경을 쓰기 시작한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지금 다시 플레이해 봐도 전혀 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완성도를 자랑하며 이 작품은 전 플랫폼을 통틀어 통산 2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얼마 전 발매된 최근작 ‘모탈 컴뱃: 디셉션’ 역시 일주일 만에 100만장을 돌파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이 시리즈의 팬들은 자신들을 일컬어 ‘모탈리언’이라고 부른다. 그저 ‘모탈 컴뱃’ 시리즈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지만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름을 만들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또 이 게임을 즐기는 유저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모탈 컴뱃’은 컬트 영화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B급, 결코 일반적이지 않으며 독특한 매력이 있고 열광적인 팬들이 있다는 것도 그렇다.
모든 게임들이 모든 유저들가 좋아할 게임이 될 필요는 없다. 분명 게임계에는 일부 사람들만을 만족시키지만 적어도 소수 마니아들이 열광할 작품도 필요하며 여러 의미에서 게임계를 넓히고 살찌우는 역할을 한다. ‘모탈 컴뱃’ 시리즈는 이런 의미에서 더욱 그 무게를 가진다.
미드웨이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는 다른 어떤 대작 게임을 만든 프로듀서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더 값진 존재다. 한계를 가졌지만 더욱 값진 존재가 된다는 것. 게임 업계에서는 분명 가능한 이야기다.
<이광섭 월간플레이스테이션기자 dio@gamer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