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2년의 베테랑 개발자다.
게임이 좋아 직접 개발에 뛰어든 그는 어느새 한국 게임사의 산증인이 됐다. 12년의 세월동안 그가 개발한 12편의 게임은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트리거소프트 김문규(34) 사장. 한때 우리나라 대표 PC게임 개발자로 꼽혀온 그는 요즘 온라인게임 전도사로 탈바꿈했다. 그의 이름 값만큼 MMORPG 처녀작인 ‘로즈온라인’은 오픈 서비스를 시작한 지 한달여만에 동시접속자가 4만5000명을 넘어섰다.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 한 게임을 계속 개발하고 싶다는 그는 “한국 게임업체의 영원한 라이벌 블리자드의 아성을 꼭 깨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뚝배기보다 장맛’을 떠올리게 했다. 12년이나 한우물을 팠지만 그는 언제나 나서기보다 한발 물러서 있기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궤적을 밟아온 개발자들이 언론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며 스타 개발자로 주목받는 동안 그는 게임 개발 말고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트리거소프트와 그를 떠올리면 “제법 실력있는 개발사와 개발자”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특별히 강한 이미지가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개발 이력을 찬찬히 돌이켜보면 그의 진가는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92년 대학시절 학과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만든 게임개발사 ‘패밀리프로덕션’은 이듬해 액션게임 ‘피와 기티’로 이달의 우수게임을 수상했다.
96년 트리거소프트를 설립한 뒤 내놓은 ‘충무공전’은 국산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RTS) 게임의 새장을 열었다. 당시 ‘워크래프트’나 ‘듄’ 등 외산 게임이 주도해온 RTS시장이 ‘충무공전’의 등장으로 국산 대 외산의 구도로 차츰 바뀌는 계기가 됐다.
이후 ‘충무공전2’ ‘장보고전’ ‘태조 왕건’ 등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 RTS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역사소재 RTS에 관한한 대가로 꼽히기도 했다.
롤플레잉게임(RPG)에서도 그의 실험은 계속됐다. 98년 출시된 ‘퇴마전설’은 3만장이나 팔려 단번에 ‘대박’ 타이틀 반열에 올랐다.
“트리거소프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충무공전’과 ‘퇴마전설’이죠. 하지만 RTS나 RPG말고도 다양한 실험작이 있었어요. 96년 트리거소프트의 처녀작으로 내놓은 턴방식 전략게임 ‘라스트 레이버저’나, 99년 심의 불가 판정을 받으며 논란을 빚은 조폭 경영게임 ‘보스’가 대표적이죠.”
그는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연도별로 되새기면서 한껏 신이 났다.
# 온라인게임은 새내기?
그는 2001년 열번째 작품 ‘태조 왕건’을 끝으로 PC게임과 질긴 인연을 접었다. 그리고 2002년 게임포털 ‘한게임’을 통해 서비스 한 ‘라크무’로 온라인게임시장에 데뷔식을 치렀다. 시장환경이 급변하면서 PC게임 전문 개발사로서는 더이상 경쟁력을 갖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라크무’는 PC 패키지게임으로 개발하던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PC게임시장 자체가 사라진 마당에 패키지게임으로 발매한다는 것은 무리였죠. 부랴부랴 온라인 버전으로 컨버전했고, 결국 한게임을 통해 빛을 보게 된 거죠.”
그는 이 때문에 지난달 오픈한 ‘로즈온라인’이 온라인게임으로선 사실상 첫번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돌이켜보면 트리거소프트는 타이밍을 놓쳐버렸어요. 한참 온라인게임이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PC게임 개발을 고집했으니까요. 온라인게임의 선점효과가 이렇게 공고할 지는 몰랐어요.”
온라인게임에 관한한 새내기와 다름없다는 그는 “온라인게임을 서비스하면서 PC게임에서 경험하지 못한 서비스와 운영 노하우 때문에 종종 애를 먹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가는 법이다. ‘로즈온라인’은 처녀작이지만 비교적 높은 완성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달만에 동시접속자 4만5000명을 넘어선 것은 ‘뮤’나 ‘라그나로크’ 등 몇몇 ‘대박’ 게임의 초반 성적과 견줄만하다. 비록 온라인으로 옷을 갈아입었지만 숱한 PC게임 개발과정에서 쌓아올린 그의 실력과 감각은 여전히 ‘로즈온라인’에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 ‘르네상스’를 꿈꾼다
“‘로즈온라인’은 일단 그래픽이나 타격감이 색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처음 게임을 기획할 때 콘솔게임과 견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죠.”
밝은 동화풍의 그래픽이 돋보이는 ‘로즈온라인’은 7개 행성을 놓고 벌이는 종족간 전투가 기본 시나리오다. 현재 1개의 행성이 존재하지만 다음달 1개의 행성이 추가되고, 내년 하반기에는 7개의 행성이 모두 등장할 예정이다.
“다음주에는 기갑장비인 ‘캐슬기어’가 등장할 거에요.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캐릭터 이동시스템과 유사한 ‘비공정 시스템’이 조만간 구현되면 행성간 이동도 가능해요.”
그는 ‘로즈온라인’의 향후 업데이트 계획을 숨가쁘게 늘어놓았다.
“PC게임은 한번 만들면 끝인데 온라인게임은 개발이 끊임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점차 게임의 스케일이 커지면 배워야할 것도 많고, 새로운 경험도 많아 더욱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게임을 개발할 때 종종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느낀다는 그는 “요즘 트리거소프트의 부활에 한참 들떠있다”고 고백했다. 90년대 중·후반 게임개발사로서는 다섯손가락에 꼽혔던 ‘옛 영광’을 온라인게임시장에서도 기필코 재현하겠다는 것이다. 마침 도쿄게임쇼에 맞춰 일본시장에 진출한 ‘로즈온라인’이 보름만에 동시접속자 7000명 고지를 넘었다는 ‘승전보’도 전해진 마당이다.
12년간 한우물을 파온 그로선 이젠 승부수를 던질 때도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게임으로 승부를 던지겠다고 다짐했다. 비슷한 이력의 개발자처럼 언론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스타 개발자’가 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개발자는 게임으로 말하는 거잖아요. 트리거소프트는 그 원칙에 변함이 없어요.”
<장지영기자 장지영기자@전자신문>